공공요금 인상, 반대만이 능사 아니다 [소셜 코리아]

남종석 2023. 5. 3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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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노동자·시민 책임 부정하는 노조... 국가책임 강화하려면 시민이 더 부담해야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남종석]

 한국전력은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1분기까지 누적적자 규모가 44조 6천억 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52조 원의 적자 누적이 예상된다고 한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15일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인상되었다. 한국전력은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1분기까지 누적적자 규모가 44조 6천억 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52조 원의 적자 누적이 예상된다고 한다. 가스공사의 경우도 지난해 '미수금'으로 기록된 손실분 8조 6천억 원을 감안하면 6조 2천억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인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및 공기업노조, 기후파업집행위원회, 노동자연대 등 진보적 사회단체들이 일제히 공공요금 인상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과 대중적인 거리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는 요금 인상이 아니라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라 늘어난 민간 발전회사 수익 억제(궁극적으로 발전 부문 재공공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국가의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 부담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고 공공요금 인상으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은 에너지 공급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다. 전량 수입하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은 국내에서 통제할 수 없고, 인상된 비용을 누군가는 치러야 한다. 국가가 공기업인 한전과 가스공사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설득력이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의 재정이 운용되기 때문에 공공요금 정부 부담은 결국 국민 부담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으로부터 세금(법인세)을 더 받거나 민간발전사(천연가스 발전)의 수익성을 줄여 일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필자 역시 민주노총이나 전국공공운수노조 집행부, 기타 진보진영의 주장처럼, 윤석열 정부에서 법인세를 인하하거나 종부세를 인하하는 정책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러나 법인세를 큰 폭으로 상승시키기도 어렵거니와 민간발전사의 수익을 통제해도 현재의 한전 적자는 메울 수 없다. 결국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은 기업이든, 노동자·시민 가구이든 누군가는 더 내야 한다.

 
  주요국 가정용 전기요금(2021)
ⓒ KOSIS
 
위 그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가정용 전기요금을 비교한 그래프다. 한국은 가정용 전기요금이 가장 싼 국가군에 속한다. OECD 국가의 가정용 전기요금 평균은 메가와트(MWh) 당 196달러이지만 한국은 104달러 수준이다. 노르웨이와 튀르키예 다음으로 낮다. 한국 가정이 그만큼 낮은 가격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석유나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국가들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주요국 산업용 전기요금(2021)
ⓒ KOSIS
 
이번엔 산업용 전기요금 비교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메가와트(MWh) 당 94.3달러이고 OECD 평균은 109.2달러이다. 한국의 경우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싸지만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정용 전기요금의 차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가정용 전기요금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한전 적자를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만으로 메워야 한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OECD 국가들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크게 높이지 못하는 이유는 전기요금 인상이 비용 인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도 적자 기업이 많으며 경쟁 압력으로 인해 비용을 높일 수 있는 공공요금 정책을 꺼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유지되어야 일자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개인소득세 낮지만 법인세 낮지 않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빈곤사회연대, 정의당, 진보당, 노동중심 사회대전환 실천모임 관계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자 발전사 손실 보전 결정 철회와 전기요금 인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023.5.18
ⓒ 유성호
 
이번엔 OECD 국가별 GDP 대비 개인소득세 및 기업 이윤 몫에 부과되는 세(법인세) 비중을 살펴보자. 2021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은 6.1%로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칠레,  튀르키예, 체코, 슬로바키아 다음으로 낮다. 한국 진보 진영이 늘 좋은 사례로 드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12%가 넘는다.

GDP 대비 기업 이윤 몫에 부과되는 세금 비중은 노르웨이가 9.7%로 압도적으로 높다. 그 외 높은 국가들은 뉴질랜드,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일본 등으로 4%대로 나타나며 한국은 3.8%로 여덟 번째이다. 스웨덴(3%), 스페인(2.7%), 영국(2.6%), 프랑스(2.5%), 독일(2.4%), 이탈리아(1.9%), 미국(1.6%) 등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오히려 한국보다 낮다. 개인소득세 비중에서 한국은 라틴아메리카나 동유럽 국가 수준인 반면 법인세는 다른 선진국에 비교해서 결코 낮지 않은 것이다.

한국 가계의 경우 중위소득 이하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있으며, 누진세율 적용에서도 다른 주요국들보다 한국의 세율 비중이 적다. 한국은 용역 및 제품 소비세 비중도 6.9%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만큼 낮다. 부가가치세도 그렇게 높지 않다. 개인들이 세금을 적게 낸다는 의미다. 부자도 적게 내고 저소득층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과 전국공공운수노조에서 주장하듯이 전기요금, 가스요금의 국가 책임성을 강화하려면 GDP 대비 세금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누가 더 세금을 낼 것인가? 민주노총이나 전국공공운수노조 집행부는 당연히 기업 몫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법인세 비중 말이다.

필자 역시 법인세를 높이는 것에 반대하지 않지만 이를 무한정 높일 수 없다.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 수준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책임을 높이기 위해 세금을 누군가 더 많이 내야 한다면 그것은 개인들, 즉 시민이자 노동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개인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총연맹이나 제1노조(전국공공운수노조)쯤 되면, 국가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맥락 속에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요구 투쟁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제1노조는 여전히 요구 투쟁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시민의 책임은 부정하고 오로지 국가와 자본의 역할만 강조한다.

전기요금 국가책임만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시민이 지불해야 할 것은 지불해야 한다. 더불어 복지든 뭐든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려면 노동자·시민이 세금도 더 많이 내야 한다. '노동자·시민의 책임 없는 요구'는 공허할 뿐이다. 그런 주장은 무책임하며, 총연맹과 제1노조의 위상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요구다.

 
 남종석 /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남종석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남종석 박사는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이며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한국 제조업 산업생태계, 지역불균등 발전, 제조업의 탈탄소화와 그린뉴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이 글의 내용은 전국공공연구노조의 입장이 아니라 필자의 개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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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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