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 주민규, 생애 첫 태극마크 달까?

이준목 2023. 5. 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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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고 압도적인 활약이 장점... 나이 등 극복하고 기회 잡을지 주목

[이준목 기자]

▲ 주민규 포효 28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1 울산 현대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에서 울산 주민규가 3대3 동점을 만든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3시즌 현재 K리그1에서 가장 핫한 공격수는 단연 주민규(울산 현대)다. 올시즌 벌써 8골을 터뜨리며 나상호(서울)와 함께 득점 공동 선두에 올라있다. 소속팀 울산도 주민규의 활약에 힘입어 12승 2무 1패(승점 38)로 2위권과 11점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는 독주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굳이 올시즌만이 아니라 주민규는 최근 몇 년간 K리그에서 누구보다 꾸준하고도 위협적인 공격수였다. 제주 소속이던 2021시즌엔 외국인 선수들을 제치고 생애 첫 득점왕(22골)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지난 2022시즌에도 17골로 득점 숫자로는 공동 1위였으나 출전 경기수가 적었던 조규성(전북 현대)에게 아쉽게 득점왕 타이틀을 내줬다.

최근 2시즌 연속 K리그1 베스트11 공격수 타이틀도 주민규의 몫이었다. K리그1에서 뛴 8시즌 동안 주민규는 통산 156경기에서 무려 73골을 뽑아냈다. 이동국(은퇴)과 김신욱(홍콩 킷치) 이후 사실상 K리그1을 대표하는 최고의 토종 공격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K리그1 가장 핫한 공격수 주민규

이처럼 훌륭한 클럽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는 주민규에게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바로 태극마크였다. 놀랍게도 주민규는 데뷔 이래 성인대표팀은 물론이고 각급 연령대별 대표팀에도 뽑힌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는 '대기만성'에 가까웠던 주민규의 커리어 변천사 및 플레이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주민규는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주목받던 선수와는 거리가 있었다. 대신고와 한양대를 거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2013년에는 K리그 드래프트에서 1부 구단들로부터 지명받는 데 실패하며 번외지명으로 지금은 사라진 K리그2의 고양Hi FC에 입단하여 어렵게 선수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이후 주민규는 서울 이랜드에서 공격수로 포지션 전향에 성공하며 정착했고, 1부리그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상주 상무(현 김천) 시절인 2017시즌부터로 당시 벌써 20대 중반이었다. 번외 지명을 통해 K리그에 입성하고도 포지션 전환으로 득점왕까지 차지한 주민규의 축구인생은 K리그 역사상 가장 빛나는 인간 승리의 사례로도 꼽힌다.

주민규가 처음 국가대표팀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은 2010년대 중반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부터다. 하지만 주민규는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동아시안컵 예비엔트리에만 두 차례 포함되었으나 모두 최종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며 태극마크를 다는 데 실패했다.

그 뒤를 이은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에는 이미 주민규가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올라선 상황이었음에도 외면받았다. 벤투 감독은 카타르월드컵까지 함께한 황의조와 조규성을 비롯하여 김신욱, 지동원, 오현규 등 여러 선수들을 테스트했으나 유독 주민규만큼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슈틸리케와 벤투는 모두 외국인 감독이자 점유율 축구 스타일을 선호하는 지도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민규는 뛰어난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몸싸움, 위치선정, 볼 키핑, 포스트플레이 등에 강점이 있지만, 스피드가 떨어지고 활동반경과 수비가담에 대한 약점도 뚜렷하다. 현대축구에서 원톱에게 연계능력과 포지션 스위칭을 강조하는 추세와 달리, 고전적인 성향의 정통 스트라이커에 가까웠던 주민규는 대표팀에서 쓰임새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K리그 최고의 공격수를 활용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생애 첫 태극마크 달 수 있을까?

 
▲ 다시 동점 만든 주민규 28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1 울산 현대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에서 울산 주민규가 3대3 동점을 만드는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K리그에서 정상급 활약을 펼치던 선수들도 정작 대표팀에서 외면받는 현상은 주민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K리그 득점왕 경력의 이기근-윤상철-김현석-신태용-유병수 등은 모두 대표팀에서는 그다지 중용되지 못했고 월드컵 무대는 단 한 번도 밟지 못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2000년대 이후로 대표팀 공격진은 주로 유럽파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파 공격수들은 외면받는 상황이 늘어나며 '차별'에 대한 비판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K리그 역대 최다골 기록의 주인공 이동국은 A매치에서 센츄리클럽(100경기) 가입자이자 월드컵도 두 번이나 나서기는 했지만, 정작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제2의 전성기를 보내던 30대 전북 시절에는 대표팀에서 번번이 외면받았다. 주민규는 플레이스타일이나 대표팀 활용도의 장단점 면에서 이동국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최근 벤투 감독의 뒤를 이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새롭게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주민규에게도 새로운 기회로서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공격수 출신의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대표팀에서도 '공격축구'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고, 주민규의 활약상에도 호평을 보내며 전임 벤투 감독과는 성향의 차이를 드러냈다.

클린스만호는 내년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주민규 역시 울산 이적 이후 약점으로 꼽히던 활동반경을 개선하고 패싱플레이로 연계능력을 보완하면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6월 엘살바도르-페루와의 A매치 2연전을 대비하여 대표팀 선수명단 발표를 앞두고 있다. 데뷔전이었던 3월 A매치(콜롬비아-우루과이)에서는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 나섰던 벤투호 멤버들 위주로 구성되었다면, 이번에는 클린스만 감독이 직접 자신의 색깔과 평가를 반영한 첫 선수명단이라는 데 주목할 만하다. 30대를 넘긴 주민규에게는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벤투호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던 황의조와 조규성이 최근 K리그에서도 그리 인상적인 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주민규의 발탁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유럽에서 뛰던 황의조는 올시즌 FC서울 유니폼을 입고 K리그로 복귀했으나 14경기에서 고작 2골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K리그 득점왕 조규성도 올시즌에는 PK로 1골밖에 넣지 못했다. 같은 K리그에서 뛰면서 두 선수보다 꾸준하고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준 주민규를 뽑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클린스만 감독에게는 황의조와 조규성 외에도 유럽파 '영건' 오현규(셀틱)라는 대안이 있고, 손흥민, 황희찬, 나상호의 최전방 기용같은 다양한 옵션이 있다.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노장을 향해가는 나이도 차기 월드컵을 대비한 세대교체 측면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과연 클린스만 감독은 주민규에게 생애 첫 태극마크 승선의 기회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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