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선 도로 옆에 성벽과 초원이라니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제가 다음으로 향한 도시는 사마르칸트입니다.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사이에는 2011년부터 고속철도가 개통해 운행 중에 있습니다. 300km 넘는 거리를 두 시간 안에 주파하죠. 옛 소련권에서는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개통한 고속철도입니다.
물론 저도 이 고속철도를 이용해 사마르칸트로 향했습니다. 열차는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을 벗어납니다. 곧 중앙아시아 여행에서 기대했던 풍경이 펼쳐집니다. 시야 끝까지 펼쳐진 넓은 초원과 그 사이를 유유히 걸어다니는 소와 말. 창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함이 없는 기차 여행입니다.
▲ ‘아프로시옵’ 고속열차. 철도 궤간은 러시아와 같고, 열차는 스페인에서 수입해 왔다. |
ⓒ Widerstand |
사마르칸트는 현존하는 중앙아시아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오아시스 도시로 그 역사는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기록에서도 사마르칸트는 번성한 도시로 등장합니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핵심이 되는 도시로, 실크로드 무역의 부를 거머쥔 도시이기도 했죠.
▲ 구약의 예언자 다니엘이 묻힌 영묘. 티무르 집권기 사마르칸트로 이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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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소련 시대에는 타슈켄트가 우즈벡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마르칸트는 여전히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입니다. 도시 광역권 전체로 따지면 100만에 가까운 인구를 가지고 있죠. 타슈켄트에서 시작된 고속철도가 사마르칸트로 연결되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 도심 한복판의 초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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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마르칸트의 인구 상당수는 우즈벡인이 아닌 타지크인입니다. 물론 공개적으로 스스로를 타지크인이라 칭하는 경우는 적죠. 하지만 <중앙아시아 연구>(Central Asian Survey)지 등에서는 사마르칸트 인구의 최대 70%가 타지크어를 모어로 하고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 사마르칸트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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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경을 획정한 소련 공산당 중앙아시아국 특별영토위원회에는 각 민족별로 대표자가 참여했습니다. 카자흐인은 5명, 우즈벡인은 4명이 참석했죠. 키르기즈인과 투르크멘인도 1명씩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타지크인은 한 명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 레기스탄의 야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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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시의 역사는 그렇게 갇혀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분쟁은 천 년도 더 지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순간도 마침표 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 이슬람 카리모프 영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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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 년 전의 유대인부터, 오늘의 독재자까지. 이 사람들이 살았던 모든 시대에 걸쳐,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의 상징이었습니다. 과거사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현대사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무덤 사이를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사마르칸트라는 도시의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이 도시 어딘가에는 이들이 예배를 드린 모스크가, 이들이 살았던 집이, 이들이 걸었던 골목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우리의 시간이 과거의 역사와 연결된 일직선 위에 있다는 것을 문득 생각했습니다. 사마르칸트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역사의 흔적이 짙게 남은 이 도시에서는 조금 더 눈에 띄었을 뿐이겠죠. 도시의 흔적은, 사람이 있는 한 마침표 없이 끝내 이어진다는 사실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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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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