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면 강해지는 게임… ‘사행성의 늪’ 이젠 벗어나야
‘코인 게이트’ 논란이 확산하며 게임 산업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싸늘하다. 한 국회의원이 게임사가 발행한 가상화폐를 수십억원어치 보유한 게 발단이다. 이를 계기로 가상화폐가 들어간 P2E(play to earn, 돈 버는 게임)에 대한 업계 안팎의 불신이 극심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P2E는 게임 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꼽혔다. 게임사 입장에서 가상화폐를 게임 내 재화와 연결하면 수익 모델을 다양하게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내에 현금화 가능한 가상화폐가 유통되면 게임의 본질인 재미보다 돈을 좇게 되고, 결국 사행성이 극심해질 거란 우려도 적잖게 제기됐다.
국내 게임 산업계는 십수년간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수익 모델에 치중하며 사행성 논란을 키워왔다. 때문에 이번 P2E 불신 사태와 엮여 사행성을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게이머뿐 아니라 게임사들 사이에서도 다수 나오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사행성 확산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 이용자가 재화나 노력을 투입하면 게임 회사가 정한 확률에 따라 아이템을 얻는 구조를 의미한다. 문제는 아이템 획득 확률이 십만분의 일 수준으로 현저히 낮거나 확률 정보가 불투명하다는 의혹이 연거푸 제기되며 게이머들의 불신을 쌓아왔다는 점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015년부터 자율규제 차원에서 국내 출시한 게임의 아이템 확률 정보 공개 여부를 단속하고 있다. 회원사 기준 92.6% 수준의 준수율이라고 협회 측은 밝히고 있으나 실제 확률 일치 여부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게이머들은 마차 시위 등의 집단 행동을 통해 게임사에 대한 불신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반발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하며 급기야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시 의무화를 담은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한 수익 구조는 되레 심화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전형적인 비즈니스 모델(BM)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1년 국내 게임 산업에서 모바일 게임의 비중은 전체 57.9%다. 26.8%인 PC와 5.0%인 콘솔과 비교해 확연히 높다. 게임 이용자의 분야별 이용률도 모바일 게임이 84.2%로 가장 높고 PC(54.2%), 콘솔(17.9%), 아케이드 게임(9.4%)이 그 뒤를 이었다. 콘솔 및 PC 게임의 경우 대개 패키지를 출시하고, 이후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 수익을 내는 구조다.
해외에선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2017년 EA의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는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전 세계적으로 불쏘시개가 됐다. 기존에는 캐릭터 의상 등 게임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이템이 주를 이뤘는데, 어느 순간 이 게임은 ‘Pay to Win’ 구조를 택했다. 돈을 쓸수록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방식이다. 벨기에 게임위원회는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이며 유럽에서 이러한 형태의 판매가 추방돼야 한다”는 비판을 했고 현지 게이머들도 매우 거센 반발에 나섰다.
사행성 문제 외에 대다수 게임사들이 ‘돈이 되는’ 게임에 집중하면서 장르의 다양성을 점차 잃어가는 점도 문제다. 국내에서도 ‘Pay to Win’ 구조를 갖춘 MMORPG가 계속 양산되고 있다. 캐릭터 육성이 메인 콘텐츠인 RPG 특성상 장비 강화, 능력 향상에 과금을 유도하면 고스란히 큰 매출로 연결된다. 실제 지난 29일 기준 구글 플레이 스토어 매출 ‘톱10’ 중 7개는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RPG 장르로 확인됐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사행성 논란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므로 돈을 쓰는 만큼 얼마나 이용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를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10년 동안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는데 사회적인 현상으로 시각을 넓혀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닌텐도는 다양한 BM을 채택해 수익 구조 다변화를 노렸다. 인기 지식재산권(IP)를 이용해 부가적인 이익을 얻는 ‘포켓몬 GO’, 게임을 유료로 판매하는 ‘슈퍼 마리오 런’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확률형 아이템의 대안으로 ‘배틀패스’를 도입했다. 이용자가 일정 금액을 결제하면 특정 기간에 레벨업이나 임무를 완수하고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다. 게임사 블리자드는 오버워치2의 패키지형 모델에서 배틀패스로 사업구조를 바꿨다.
정의준 건국대 교수는 “확률은 게임 내에서 중요한 요소지만 게임 흐름 전체를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커지면 원래 게임 목적을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게임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게임은 재미나 성취를 얻기 위해 수고를 들이는 행위다. 아케이드 게임처럼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순수한 목적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솔 인턴기자 so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또래女 살해한 20대 범행동기 ‘미궁’…과외앱서 만났다
- ‘에덴’ 출연 양호석, 유흥업소 종업원 강간미수로 실형
- ‘이 우유’ 집에 있으면…“유통기한 확인 후 반품하세요”
- 게임템 사려고… 70대 잔혹 살해한 중2, 15년형 확정
- 4시간 택시, 경찰 출동했어도… 사라진 ‘먹튀 스님’
- “길가다 횡사할 뻔”…학교 외벽 잔해, 시민 가격해
- 대장암 4기 전여옥 “조민·조국 비난한 탓이라고 악플”
- ‘김남국 비판’ 대학생위원장 조사? 민주당 “개인적 만남”
- 하태경 “日욱일기와 화해할 때 됐다…세계가 용인”
- [단독] ‘내일부터 이벤트합니다’ 스벅, 한밤 직원 통보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