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구의역 9-4

이경원 2023. 5. 3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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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강변역 방면)에 놓였던 옛 은성PSD(플랫폼 스크린도어) 비정규직 정비원 김군의 7주기 추모물은 29일 오후 모두 철거됐다.

"아무도 일하다 다치지 않았으면" "생명이 이윤보다 존중받는 사회". 추모 기간 많은 시민과 국회의원, 구청장이 찾아와 남긴 포스트잇 글귀들이 스크린도어에서 떼어졌다.

임선재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PSD지회장은 "30분 안에 조치하지 못하면 하도급업체가 페널티(벌칙)를 물던 계약조건이었다. 비정규직인 김군은 재고용 문제도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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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이슈&탐사팀장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강변역 방면)에 놓였던 옛 은성PSD(플랫폼 스크린도어) 비정규직 정비원 김군의 7주기 추모물은 29일 오후 모두 철거됐다. “아무도 일하다 다치지 않았으면” “생명이 이윤보다 존중받는 사회”…. 추모 기간 많은 시민과 국회의원, 구청장이 찾아와 남긴 포스트잇 글귀들이 스크린도어에서 떼어졌다. 한 30대 남성이 투명해진 스크린도어 앞에 다가와 “내년에도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돌아갔다.

김군 가방에서 발견됐고 올해도 승강장에 놓여 있던 육개장 사발면도 옮겨졌다. 뚜껑에 ‘천천히 먹어’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은, 컵라면과 수저를 가방에 넣어 다니고 ‘2인1조’마저 사치였던 청년 앞에 순진한 소리다. 임선재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PSD지회장은 “30분 안에 조치하지 못하면 하도급업체가 페널티(벌칙)를 물던 계약조건이었다. 비정규직인 김군은 재고용 문제도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이후 PSD 노동자들이 직영화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이들의 일터 모습도 달라졌다. 김군이 거부하지 못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노동자들은 이제 “위험합니다” “야간에 열차 운행이 종료되면 하겠습니다”고 말한다. 2018년에도 공사가 “이것은 주간에도 가능하다”고 했다가 노조 거부로 취소된 일이 있었다. 열차와 정차 정위치 간 거리값을 측정, 기관사에게 ‘양호’ ‘미달’ ‘초과’ 정차 여부를 전광판으로 보이는 센서 장애를 낮에도 해결하라는 주문이었다. 이 센서는 선로 안에 있었다.

공사 측은 어차피 열차가 정비 위치 앞에서 멈추니 선로에 들어가 일해도 치일 염려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는 무정차 통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기관사가 실수로 인력을 못 본 채 출발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하도급업체 재선정 문제나 시간제한 페널티가 있었다면 어려웠을 거부였다. 임 지회장은 “변화는 신분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해고 위험, 재고용 두려움이 없어지자 안전을 말할 수 있게 됐단 얘기다.

인력 문제는 남아 있다. PSD 노동은 신호·전자 등 타 직종에 비해 잦은 장애에 시달리며,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다. 서울 지하철 1~4호선 121개 역사를 관리하는 PSD 관리소는 신대방 옥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선릉 4곳에 있다. 다른 직종들의 거점 관리소는 8곳가량이다. 30~31개 역사를 담당하는 1곳 관리소의 하루 평균 출동명령은 20건 안팎이다. 시청에서 정비하는 이가 ‘신도림역 장애 발생’ 알림을 받는 때도 있다. “가는 데만 20분….” 승객이 다칠 상황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손길이 바빠진다.

노조가 김군 동생에 대한 장학금 전달을 고민했으나 유족은 거절했었다. 그의 어머니는 “잊히길 바란다”는 입장으로, 추모제에 온 적이 없으며 김군의 이름 공개도 막았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김군의 동료들이 그를 잊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구의역을 지날 수 없다며 5~8호선으로의 전보를 신청한 이도 있다. 동료들은 “김군 같은 노동자가 아직 많다. 우리가 사회적 책무를 해야 한다”는 말을 서로 나눈다고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여유로워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위험을 맡기고 남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 반대로 살아가야 할 사람도 여전히 있다. 김군 어머니의 바람은 언제 이뤄질까.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2223명이다. 2020년(2062명) 2021년(2080명)보다 늘었다. 오늘도 천천히 먹을 수 없는 많은 이들이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고령노동의 이름으로 각자의 구의역 9-4에 서 있다.

이경원 이슈&탐사팀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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