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수척한 모습으로 돌아온 ‘야야’… 냉랭한 미·중 관계 보는 듯

권지혜 2023. 5. 31.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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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판다 ‘야야’가 29일 중국 베이징 동물원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야야는 2003년 우호의 상징으로 미국으로 보내졌다가 20년 대여 기간 종료로 최근 반환됐다. AP뉴시스

2003년 ‘우호의 상징’ 美에 대여
기간 끝나 20년 만에 베이징 귀환
시민들 “돌아와 감격… 행복하길”

中, 귀여운 외모·순한 이미지로
각국과의 ‘판다 외교’ 적극 활용
“권위주의·인권탄압 가린다” 비판

중국에선 요즘 20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온 자이언트 판다 ‘야야’가 화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30일 상하이에서 한 달간 격리 생활을 한 야야가 전날 새벽 전세기를 타고 베이징 동물원에 도착했다며 사진과 영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네티즌들은 “이전의 고통을 잊고 고향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응원했다.

야야는 우호의 상징으로 미국에 보내졌다가 대여 기간이 종료되면서 중국에 돌아왔지만 귀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정치 경제 국방 첨단기술 등 전방위에 걸쳐 악화한 미·중 관계가 판다 외교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2000년 8월 베이징 동물원에서 태어난 암컷 판다 야야는 충칭에서 태어난 수컷 판다 ‘러러’와 함께 2003년 4월 연구 목적으로 미국에 대여돼 테네시주 멤피스 동물원에서 지냈다. 올해 4월로 대여 기간이 만료되면서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을 떠나 상하이에 도착했다. 이후 코로나19 감염 확인 등의 문제로 상하이 동물원에 격리돼 있다가 한 달 만에 나고 자란 베이징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러러는 지난 2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후 혼자 남은 야야의 수척한 모습이 공개되자 중국인들 사이에서 공분이 일었다. 당장 중국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미국 내 반중 감정, 냉랭해진 미·중 관계를 보여준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중국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에서 “피부병으로 인한 털 빠짐 외에 야야의 전반적인 상태는 양호하다”며 “가장 빠른 속도로 안전하게 데려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일로 각국에 퍼져 있는 중국인들은 판다가 있는 동물원을 찾아가 사육 환경 등을 확인하고 이를 SNS에 공개하는 ‘판다 지키기 캠페인’을 벌였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러시아 모스크바 동물원과 함께 한국 에버랜드가 판다 관리를 잘하는 곳으로 꼽혔다고 전했다.

상하이에서 한 달간 격리 생활을 마친 야야가 지난 28일 우리에 실려 전세기편으로 베이징에 도착한 모습. 신화뉴시스


야야는 아직 관람객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미 최고 스타다. 야야가 대나무와 죽순에 둘러싸여 한가롭게 노는 모습은 각종 SNS에 공유됐고 라이브 방송은 한때 2만8000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 네티즌은 “야야가 신선한 대나무를 먹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동물원은 사람으로 치면 할머니가 된 야야를 위한 특별 공간을 마련했고 24시간 돌볼 베테랑 사육사와 수의사를 투입했다. 이와 함께 야야의 일상과 건강 상태를 SNS 계정에 공개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판다의 위상은 국보급 이상이다. 중국은 192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판다 사냥이 유행해 개체 수가 줄어들자 쓰촨성 등 곳곳에 보호 구역과 연구 기지를 설치하는 등 번식에 공을 들였다. 동시에 귀엽고 순한 이미지로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판다를 공공 외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국민당 장제스가 미국의 지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판다 한 쌍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1972년 리처드 닉스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이 판다 2마리를 선물하면서 ‘판다 외교’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같은 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도 판다 한 쌍을 선물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선 판다 붐이 일었다. 일본에서 국민 판다로 불렸던 ‘샹샹’이 지난 2월 중국으로 돌아왔을 때 중국 외교부는 “샹샹이 중·일 양국 국민의 우호 증진에 특별한 기여를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미국 일본 외에도 북한 러시아 독일 프랑스 싱가포르 등에도 중국 판다가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징징’,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빙둔둔’ 등 국가 행사에서도 판다 마스코트는 빠지지 않는다.

중국은 1980년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워싱턴협약·CITES)에 가입한 뒤 판다를 대여 형식으로만 해외에 보냈다. 판다를 대여한 국가는 번식 기금 명목으로 매년 약 100만 달러(13억원)를 중국에 내고 새끼를 낳으면 40만 달러(5억원)를 추가로 낸다. 새끼 판다 소유권은 중국이 갖고 새끼가 서너 살이 되면 번식을 위해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 한국에서 ‘용인 푸씨’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은 아기 판다 ‘푸바오’가 내년 7월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판다 외교는 중국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대만 홍콩 신장위구르자치구 등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귀여운 외모로 중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미 공화당의 낸시 메이스 하원의원은 지난해 새끼 판다 반환 합의를 파기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면서 “미국인 수백만명이 판다의 체류 이면에 감춰진 음모를 알지 못한 채 판다를 즐기고 있다. 눈속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우정의 상징이라며 보냈던 판다를 관계가 틀어지면 소환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의 회담을 결정하자 중국 정부는 미국에서 태어난 새끼 판다 두 마리를 강제로 귀환시켰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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