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사회혁신 없이 더 큰 나라 될 수 없다

입력 2023. 5. 31. 00:59 수정 2023. 5. 31.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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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현직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압축성장 시대(1960~80년대)에 유행하던 인허가 부정비리부터 대장동 개발 비리, 전당대회 돈 봉투 비리, 코인 비리, 선관위 자녀 특혜 채용 비리 등등 각종 부정부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개인적 이득을 노리고 권력을 남용하거나, 특혜를 주고 뇌물을 받는 고질적 비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정 당국에 적발되어 비리가 대대적으로 보도돼도 정치공작으로 돌리는 경우도 하나둘이 아니다.

「 국회의원 등 공직자들 잇단 비리
부패는 개인·국가 공멸 부를 수도
부정 사슬 끊어야 더 큰 경제 가능
규칙 이탈자 단호하게 대처해야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38개국 중 22위로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경제적 위상에 비추면 우리나라의 청렴지표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각종 비리가 만연하고 심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부패와 비리가 연일 매스컴을 강타해도 그것이 국가 경제의 양적 성장을 가로막고 질적 발전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국민의 부패 불감증이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1759)에서 도덕감정을 타락시키는 가장 보편적인 원인은 세상 사람들이 부자와 권세가를 거의 숭배하는 반면, 빈자와 하위계층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성향에 있다고 보고 ‘대중의 감탄을 값싸게 얻고 있는’ 권세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많은 정부에서 최고의 지위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초법적으로 행동한다. 이들은 야심이 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이를 위해 활용한 수단에 대해서 해명을 요구받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종종 음모와 술수를 동원하고 야비한 상투적 수법인 사기와 거짓말뿐만 아니라, 때로는… 살인과 암살, 반란과 내전에 의해 권세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반대하거나 맞서는 모든 사람을 대체하거나 제거하려고 한다. 그들은 성공할 때보다는 실패할 때가 훨씬 많으며, 보통은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불명예스러운 형벌 외에는 얻는 것이 없다. 그들이 설령 그렇게 갈망하던 권세를 얻는다고 해도 그 지위에서 향유할 것으로 기대했던 행복에 대해서는 가장 비참하게 실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광수 교수 번역본)

이 가르침은 제1차 산업혁명 직전 영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정치적 부패를 개탄한 것이지만, 2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요즘 드러나는 부정과 부패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이 구조가 더불어 살기보다는 끼리끼리 뭉치게 하고, 약자를 위해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강한 자를 위해 불의에 눈 감게 한다. ‘부패(corruption)’는 라틴어 ‘함께(con)’와 ‘무너지다(rumpō)’가 더해진 말로 공멸을 뜻한다. 정치 지도자의 사리사욕에서 비롯된 이기적 행동은 결국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의 기강을 무너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한국은 국내외적 난관과 역경을 이겨내며 큰 경제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저성장과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마당에 각종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자 국민의 실망과 상실감이 보통이 아니다. 오죽하면 국회만 폐쇄되어도 나라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잘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어쨌든 부정부패의 구조를 척결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더 큰 나라가 될 수 없다.

어떤 건축업자가 제대로 된 견적서를 정부에 제출했는데, 정부 발주 공사는 담당 공무원에게 퇴직 후 고액 연봉을 약속한 건축업자에게 돌아간다면 기업가들은 의욕을 잃고, 사회 전반에 부패의 음습함이 가득해진다. 부패로 인해 개인의 이기심이 공정하게 발현될 구조를 잃으면 그 사회는 성장 동력을 상실한다. 반면에 부정부패가 근절되면 개인의 이기심과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에 따라 “이제는 배경이 없어도 내 아이디어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창업을 하고 투자를 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겠구나!”라는 자유롭고 공정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만들어진다. 나아가 국민은 진정으로 화합할 수 있으며, 사회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정부패의 구조를 말소할 것인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도자는 먼저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큰 그림, 즉 비전을 명확히 보여주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규칙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또한 합의를 위반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자는 단호하게 엄벌하여, 규칙에서 이탈하는 것이 결코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강한 교훈을 심어줌으로써 규칙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한국이 장기적으로 지금보다 더 큰 나라가 되려면 사회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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