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명랑 뉴스를 찾습니다

이상언 입력 2023. 5. 31. 00:57 수정 2023. 5. 31.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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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

“봉투 두 개씩을 선물로 드립니다. 각기 500달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졸업생 여러분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게 꼭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나 기관에 전하세요.”

지난 26일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대(UMass Boston) 졸업식장에서 사업가 롭 헤일(56)의 말에 환호성이 터졌다. CNN의 현장 영상에 서로 얼굴을 보며 기뻐하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헤일은 졸업식 축사에서 “여러분은 어려운 시기를 관통해 살아남았고 성장했다.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겪은 학창 시절의 어려움을 위로한 것이었다. 기부용 500달러에 대해서는 졸업식 뒤에 “기부에는 중독성이 있다. 이번을 시작으로 학생들이 이런 일을 자주 하리라고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졸업생이 2500명이었으니 헤일이 학생들에게 건넨 돈은 250만 달러(약 33억원)다.

「 유쾌함 만발한 미국 졸업식 보도
어두운 소식 도배된 우리와 비교
갈등 일상화 사회의 우울한 단면

헤일은 기존 전화선을 활용해 기업에 안전한 내부 연결망을 제공하는 사업을 일으켜 부자가 됐다. 포브스지 집계로 세계에서 551번째 부자다. 그는 미국프로농구(NBA) 구단 보스턴 셀틱스의 공동 소유주인데, 이 팀의 가치가 크게 커지면서 대부호 반열에 올랐다. 그는 축사에서 “여러분은 지금 파산해 10억 달러를 날린 사람을 보고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큰 루저(실패자)일 것이다”라는 농담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20여 년 전 미국에서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그가 처음 만든 통신업체가 망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그때의 나에 비하면 여러분은 아주 앞선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헤일이 두 개의 봉투에 500달러씩 나눠 담아 1000달러를 졸업생에게 선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퀸시칼리지 졸업식에서도 축사를 하며 똑같은 선물을 나눠줬다. 헤일은 자선 행위로 미국에서 유명하다. 2년 전 자신의 모교인 코네티컷 칼리지에 3000만 달러를 희사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그가 총 5200만 달러(690억원)를 여러 곳에 기부했다.

같은 날 하버드대 졸업식장에서도 웃음꽃이 만발했다. 축사를 한 배우 톰 행크스가 자신이 이날 이 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것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처럼 공부하고 도서관에 간 것도 아니고, 그저 교수 역할을 하면서 잘 살았는데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공정하지 않죠? 그래도 너무 씁쓸해하지 마세요. 얘들아(Kids), 세상은 이럴 때도 있는 거야.” 행크스는 ‘다빈치 코드’ 등 3개의 영화에서 하버드대 교수로 연기했다.

행크스는 축사에서 진실(truth)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경험적 사실, 과학적 수치, 상식이 무시되고 선동과 후안무치(bald-faced)의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에 대한 경계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진실을 왜곡하는 자에게 저항하라”고 당부했다. 행크스는 2020년 3월 팬데믹 초기에 부인과 함께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 병이 낫자 치료제 개발에 쓰라며 혈장과 혈액을 기부해 주목받았다. 그가 졸업식 축사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갈 때 하버드대 총장이 ‘윌슨의 동반자, 버즈의 친구, 라이언의 구원자’라고 그를 칭하며 멈춰세운 뒤 하버드대 로고를 새긴 배구공을 건넸다. 학생들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 행크스가 함께 무인도에 상륙한 배구공 ‘윌슨’을 친구로 삼았던 장면을 떠올리며 활짝 웃었다.

이날 미국 방송에 두 사람 모습이 계속 등장했다. 유쾌한 어른이 주인공인 즐거운 뉴스에 마음이 조금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각 우리 뉴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아빠 찬스’ 취업 의혹, 김남국 의원 잠적, 정치권 인사들의 날 선 발언들로 도배돼 있었다. 이날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 언론이 어두운 소식을 지나치게 부각하고, 즐겁고 밝은 소식을 전하는 데 인색해서 이렇게 됐다면 차라리 다행인데, 의미 있는 명랑 뉴스 자체가 드물긴 하다. 갈등의 일상화와 자극적 보도 중 과연 어느 쪽이 닭일까.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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