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이 8명 돌봄"... '엄마 투병' 뒤 알게 된 돌봄노동의 현실
[윤일희 기자]
▲ '처우개선! 민영화 저지!' 돌봄노동자 행진 지난해 10월 12일 민주노총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주변에서 돌봄노동자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민영화 저지를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코로나를 겪으며 한국 사회에서는 돌봄 노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가 급히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고 말 일이 아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돌봄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모두 아프고 늙을 것인데,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관련 기사: 돌봄노동, 제값 치르지 않으면 죗값 치른다 https://omn.kr/1x17m ).
엄마의 건강 악화 뒤 마주한 '돌봄'... 책을 붙들고 겨우 버텼다
과거 엄마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면서 내게도 난국이 찾아왔었다. 당장 엄마의 먹고 자고 씻고 배설하기를 딸인 내가 돌봐야했기 때문이다. 당시 요양 등급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고, 코로나 시국이어서 더 더디기만 했다. 매일매일 닫힌 문 앞에 서서 '거기 누구 없나요'를 외치는 느낌이었다. 물론 한 방에 찾아오는 '구원' 같은 것은 없었다. 요양 등급을 받고 1년여 만에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말이다.
당시 파주에서 인천까지 오가며 엄마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피로하고 지쳐갔다. 가능하면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보고 오는 날엔 어김없이 여기서 더 나빠지면 엄마를 어떡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울곤 했다.
그때 만난 책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만이 위로를 주었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가족을 돌본 지인도 이 책을 읽고 겨우겨우 버텼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여성에게 돌봄이라는 성 역할의 혹독함은, 거의 누구나 겪지만 아무에게나 토로할 수 없는 곤경을 만들고는 한다. 오죽했으면 사람이 아닌 책을 붙들고 울며불며 곤경의 강을 건너겠는가.
내 상황을 알게 된 요양원을 운영하는 지인이 아무 걱정 말고 엄마를 모시고 오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울증을 오래 앓고 계셨던 엄마에게 낯선 곳과 낯선 사람과의 접촉은 극단적으로 고통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엄마의 심정을 모를 리 없는 나로서는 요양원은 최악의 카드였고 도래하는 것이 두려운 극단의 상황이었다. 당시 엄마는 재가 요양으로 집에 드나드는 요양사와도 관계 맺기를 어려워했다. 나를 볼 때마다 "저 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럴 수 없었던 나는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매일 시달렸다. 한국의 딸들이라면 거의 마주하는 환경일 것이다.
내 난관은 엄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끝이 났다. 이후 나는 돌봄의 '압박'에서 벗어났지만,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그때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돌보는 자에서 돌봄 받는 자가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자각했다.
경기 고양 지역에서 '직업으로서의 돌봄'이라는 돌봄 관련 집담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선뜻 참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의 영향일 것이다. 지난 24일 저녁, '모두를 위한 서로돌봄' 주최로 한 요양원에서 요양 보호사로 10년 이상 일했던 A 선생님과 현재 요양보호사로 일하시고 있는 B 선생님 두 분을 모시고 돌봄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두 분 모두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나누어 주어 좋았다. 좋은 기획에 비해 많은 시민이 참석하지 않은 것이 유감이었다. 이 시급한 일이 아직도 남의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은 아닐까.
▲ 2022년 1월 19일,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서비스연맹, 보건의료노조, 민주일반연맹, 정보경제연맹 소속 돌봄노동자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돌봄의 국가책임강화와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두 분에게서 들은 노동 환경의 문제점과 어려움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집담회에서 나온, 요양 보호사 1인이 8명 노인을 돌본다는 말에 참석자 모두 기함했다. 그럼에도 두 분이 돌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명감 혹은 직업의식은 미안할 지경으로 진심이었다. 늙고 아픈 사람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좋은 돌봄은 불가능하다. <사랑의 노동>을 쓴 매들린 번팅이 돌봄 노동을 '보이지 않는 심장'이라고 부른 이유다.
우선 1인이 8인을, 그것도 아픈 8인을 돌봐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부터 생각해 보자. 이게 가능한 일일까? "돌봄은 아픈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들어주는 행위"다. 그런데 이렇게 가혹한 시스템 아래서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을 돌보는 것조차 얼마나 큰일인지는 돌봐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1인이 8인을 돌보도록 설계한 자들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이 시스템 안에 자신은 절대 편입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한, 기득권이 고안해낸 하층계급에 대한 학대다. 어떤 경우라도 비윤리적이다.
이렇게 혹독히 일하면서 급여는 겨우 최저시급 수준이다. 그러니 누가 이 고된 일을 하겠는가. 이 일은 체력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현장엔 젊은 사람이 없다. A 선생님은 52세에 처음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 2023년 현장에서는 50대 노동자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노동자 자체가 고령화되었다고 전했다. 그는 젊은이가 이 돈을 받고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B 선생님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비인간적이고 비가시화된 요양원의 현실에 탄식하기도 했다.
나는 A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하지만, 돌봄 노동 현장에 비교적 젊은 노동인력이 사라지는 이유에는 낮은 임금 외에도, 이들을 '똥이나 닦는 이들'로 폄하하는 뿌리 깊은 천시도 깊게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의 똥을 치우는 일만큼 거룩한 노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 돌봄을 폄하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똥 묻힐 일도 치울 일도 없다고 믿고 살겠지만, 배변의 의존은 피해 갈 수 없는 노화의 수순이다. 자신의 똥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죽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문제는 똥이 아니라, 그런 현실 자체를 '존엄의 훼손'으로 보는 바로 그 혐오다.
집담회 증언에 따르면, 대부분이 여성인 돌봄 노동자들이 겪는 또 다른 곤경은 성폭력이라고 했다. 성폭력 피해는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지만, 놀랍게도 이에 대처하는 별도 매뉴얼은 없다고 한다. 여성 요양 보호사들은 이 참담함을 그저 인내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요양원 측이나 지자체나 정부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어떤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아픈 노인이어도 남성의 성욕구는 자연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닌가? 이날 A 선생님은, 어떤 이들에겐 성폭력 가능성이 돌봄 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돌봄 노동은 어느 나라건 극심하게 젠더화되어 있지만, 한국 사회는 유독 더한 것처럼 보인다. 현장에선 남성 돌봄 노동자도 필요하건만, 실제 남성 노동자는 극히 드물다. 지원자가 없기도 하지만, 사측이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부릴 수 있는 여성 노동자를 사용자가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남 요양 보호사 간 가시화된 차별은 없다지만, A 선생님 말씀으로는 자신이 일하던 요양원에서 남자 요양보호사에겐 '가장 수당'이라는 것을 더 지급했다고 한다. 그 말에 집담회에 참석했던 모두에게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남성 요양보호사에 지급됐다는 '가장 수당'... 탄식이 터져나왔다
B 선생님은 돌봄 노동에 사전 교육 없이 노동력이 투입되는 것도 노동의 효율을 급속히 떨어뜨린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자체에 사전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제안했지만, 관심을 보이는 정치인이 없다고 한다. 그는 집담회 내내 "돌봄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가족을 요양원에 둔 경우 현장을 자주 살펴보고 꾸준히 모니터링할 것도 당부했다.
B 선생님은 이날 집담회가 마무리될 즈음, 몇 년 전 요양보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 조사 중 '당신이 일하는 시설에 돌봄 수혜자로 입소할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관해 언급했다. 그 조사에서 어떤 대답이 나왔을지는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지 않는가. '아니다'라는 답변이 더 많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현실은 부모님과 친구, 동료, 이웃이 살고 있고 그리고 언젠가 내가 살아갈 공간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집담회는, 내가 받고 싶은 돌봄을 앞으로 한국 사회 돌봄의 표준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지켜질 존엄 같은 것도 없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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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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