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수사대상' 된 라덕연 투자자…"원금보장 약속은 무효"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發)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주범인 라덕연(42·구속기소)씨로부터 투자 손실 보상조로 거액의 금품을 받은 투자자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검찰은 라씨가 특정 투자자들에게 주가 폭락 후 법인 명의의 재산과 범죄수익을 건넨 것으로 보고 최근 일부 투자자로부터 십수억원에 이르는 금품을 압수하는 등 라씨가 흩뿌린 재산을 추적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 단성한)는 지난 23일 라씨 일당을 통해 거액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뒤 라씨에게서 페라리·롤스로이스 등 리스 외제차 3대를 받은 A(42)씨로부터 해당 차량의 보증금 7억4000만원을 압수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9일 A씨의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파텍필립·바쉐론콘스탄틴·롤렉스 등 합계 수억원에 이르는 명품시계 3점을 확보했다. 리스 차량의 경우 A씨가 이미 차량 3대에 대한 보증금을 받아 챙긴 걸 확인하고 이를 압수한 것이다.
당초 A씨는 한 법무법인을 통해 라씨 일당을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등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해 왔던 거액 투자자 중 한 명이다. 검찰은 사기 피해 여부와는 별개로 A씨가 라씨에게 “원금을 보장해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취지로 요구해 받은 금품은 사법적으로 무효라고 판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위해 검찰은 대법원이 2001년 증권사를 상대로 한 투자자의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증권사가 고객의 증권 거래에 관해 발생한 손실을 보전해 주기로 한 약속은 무효라고 본 판례를 근거로 내세워 법원으로부터 압수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한다.
당시 대법원은 “증권사 등의 손실보전 약속이나 행위는 위험관리에 의해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증권시장의 본질을 훼손하고 안이한 투자 판단을 초래해 가격 형성의 공정을 왜곡하는 행위”라며 “이는 증권 투자에 있어서 자기책임원칙에 반(反)하는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없는 손실보전 약속 또는 그 실행 행위 역시 사회질서에 위반돼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 판례에 따르면, 라씨가 일부 투자자에게 손실보전을 명목으로 건넨 금품은 정당한 피해 회복으로 볼 수 없어 무효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법조인은 “예금과 증권 투자의 본질적인 차이는 원금 보장 여부”라며 “증권의 경우 원금 손실의 위험성을 안고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금 보장 약정을 했더라도 무효”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합수1팀(팀장 이승학)은 라씨 일당과 친분 등을 활용해 이들이 소유한 법인 명의 재산으로 투자 손실을 회복한 거액 투자자가 더 있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은 최근 라씨 등의 수수료 세탁 창구로 활용된 데이비드 호크니, 알렉스 카츠, 에텔아드난, 김창열 등 유명 화가의 그림 22점과 라씨 회사 관계자가 보관하던 에르메스 체스판, 루이비통 시계장·테이블 등도 압수했다. 압수된 사치품은 법원이 라씨 등에 대한 유죄를 확정하면 국고로 귀속된다. 검찰은 라씨 등이 통정매매 등 시세조종 행위로 약 7305억원의 부당이득을 거둔 뒤 이 중 약 1944억원을 수수료로 받아 챙긴 것(자본시장법·범죄수익은닉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지난 17일까지 추징보전한 라씨 측 소유 재산은 152억원 상당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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