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사법부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하는가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문은영]
▲ 지난 1월 26일 산재, 재난 유가족, 피해자, 종교, 인권,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재계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훈 작가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세월호참사 피해자 최순화씨 등이 참석했다. |
ⓒ 유성호 |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두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지난해 4월 7일 일산의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숨진 사고에 대해 원청인 온유파트너스 대표에게 중재대해처벌법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1호 사건). 또 지난해 4월 26일 방열판에 깔려 하청노동자가 숨진 사고에 대해 원청인 한국제강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이 선고됐고 대표이사는 법정구속됐다(2호 사건).
이 두 건의 중대재해처법 위반 사건 판결 결과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아래 경총)가 지난 8일 전문가 분석 결과를 보도자료로 내놨다. 경총은 두 건의 판결 모두 '사업주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 인과관계가 불분명함에도 피고인이 자백을 하는 바람에 유죄 선고가 내려지고 선고된 형량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총의 문제 지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
두 사건 모두 피고인이 범죄혐의를 인정해 사업주의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 인과관계 성립 여부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총은 1호, 2호 사건 모두 피고인인 대표이사가 검찰의 공소사실을 재판에서 모두 인정(자백)했기 때문에 사업주의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의 인과관계 성립여부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내려진 판결이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다른 사건에 시사하는 점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는 명확한 근거없이 사법부의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지적으로 부적절하다. 두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수사단계에서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자백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변호사의 조력을 통해 법률검토 끝에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해 하청노동자의 사망이 발생한 사실을 인정하고 자백한 것이지 법률에 무지해서 또는 외압에 의해 자백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법원은 피고인이 자백했다고 해서 무조건 유죄를 선고하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제출된 증거자료를 통해 법리적 판단을 한 것이다.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데 피고인이 자백했다고 법원이 유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
경총의 주장대로라면 법원이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적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인데 판결문에는 사고경위, 피고인의 의무사항 및 의무를 위반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판결문에 대표이사들의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위반과 사망사고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만한 근거나 논리를 찾을 수 없다?
경총은 보도자료에서 두 판결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위반과 사망사고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만한 근거나 논리를 찾을 수 없다'면서 '법원은 유죄라고 결론을 내려놓고 이것에 꿰맞추기 위해 논리를 전개했다는 느낌이 확연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이 '느낌'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판결문에는 분명 유죄로 인정한 근거와 논리가 모두 드러나 있음에도 경총은 법원이 유죄로 인정할 수 없는 사건을 의도적으로 유죄 판결을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판결문엔 사고경위와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위반해 사망사고에 이르렀다는 점이 '명확히' 나와 있다.
1호 사건은 병원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재해노동자가 건물 5층 높이에서 약 95kg의 중량물을 건물 6층에 설치된 도르래를 이용해 개구부를 통해 인양하는 작업을 하던 중 고정앵글이 슬링 벨트를 이탈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반동으로 16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다.
원·하청 사업주는 추락위험이 있는 중량물 취급 작업에서 개구부에 안전난간을 설치하고 작업의 필요상 임시로 안전난간을 해체할 경우 추락방호망을 설치하고, 그 설치가 곤란할 경우 근로자에게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하고 안전대를 걸어 사용할 수 있는 부착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철근 운반시 두 군데 이상을 묶어 수평으로 운반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원·하청 사업자들은 이러한 안전조치들은 하기 위한 사전점검도 작업계획서도 전혀 하지 않았다. 원청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하야 하며 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고 안전보건관리책임자들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위험요인 제거 등을 위한 매뉴얼 마련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원청 경영책임자는 관련 평가기준도 마련하지 않고 현장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현장의 위험을 평가하고 담당자들이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작업계획 수립 및 안전대 지급, 부착설비 등을 설치하는 등 사고 예방을 위한 업무를 하도록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재해노동자가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작업 도중 추락해 사망했다.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의무위반과 사고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총은 보도자료에서 1호 사건에서 '하청근로자에게 안전대 지급 등의 이행의무 주체가 하청업체이고 원청 대표이사는 업무매뉴얼 작성할 의무가 있을 뿐임에도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해 원청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의무이행의 범위를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판결문 어디에도 원청 경영책임자가 안전대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한 사실이 없을 뿐더러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매뉴얼 작성에 불과하다는 이해 역시 문제다. 판결문을 다시 꼼꼼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2호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결과, 하청노동자의 사망으로 이어진 것이 인정됐다. 원청 경영책임자는 오랜기간 하청근로자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방열판 보수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1.2톤의 중량물을 섬유벨트에 걸어 들어올린 뒤 보수 작업을 할 때 근로자가 작업 도중 중량물의 추락·낙하·전도·협착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대책을 포함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계획에 따라 작업을 하도록 하고 중량물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안전한 샤클(섬유벨트나 크레인과 방열판 고리를 연결하는 쇠고랑) 등의 용구를 마련해 점검, 작업시 안전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등 사고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잘 알고 있는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중량물 취급 작업에 관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또한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현장에서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평가 및 점검하는 등 안전보관리체계를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음에도 안전조치를 하지 아니했다.
그 결과, 피해자가 중량물인 방열판을 뒤집는 과정에서 안전성이 결여된 섬유벨트를 샤클 없이 표면이 날카로운 고리에 직접 연결한 후 방열판을 들어올린 뒤 섬유벨트가 끊어지면서 피해자를 덮쳐 협착으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경영책임자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의무위반이 인정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두 사건 모두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작업계획서 작성,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평가기준 마련 및 점검 등을 통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고 조치를 취했더라면 하청노동자들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 확인됐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경영책임자가 책임지고 사고를 예방하도록 하고 법원은 경영책임자가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발생한 재해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책임이 있다고 봐 판결한 것은 정당하다.
과도한 처벌규정으로 중한 형량이 선고될 우려가 크다?
경총은 이번 두 판결 모두 책임에 비해 과도한 형량이란 점에서 비판적이고 형량을 낮추기 위해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과거 중대재해처벌법 재정 이전 산업안전보건법과 업무상 과실치사상이 적용됐던 사건들보다 피고인들에게 내려진 형량이 특별히 높다고 볼 수 없고 다만 과거와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책임자가 처벌된다는 점이 큰 차이다. 경영책임자가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면, 그 노동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에 대해 무거운 형량이 내려지는 것은 적정하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형사처벌 가능성이 증대됐다?
경총은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게 중한 처벌이 부과되는 것에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판결에 따른 분석내용으로 부적절하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안전보건관리의무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조력하여 안전관리 역량을 높여 중대산업재해를 줄여야 하는 문제이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시 참작사유가 되어서는 현실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치며
작업과정에서 존재하는 위험은 경영책임자가 관리해야 할 위험이고 책임져야 하는 위험이다. 위험을 관리하지 않는 결과 기업이 치르는 대가를 무겁게 한 것은 위험을 철저히 관리하라는 뜻이다.
이제 기업은 이윤을 달성하기 위해 재해 발생을 감당할 수 있는 비용 관점으로 보는 기존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결국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생명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경영책임자의 법적 책임이 이 사회에 자리잡은 것을 경영책임자들이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경총의 보도자료는 판결에 제대로 된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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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문은영씨는 김용균재단 감사이자, 민변 노동위 노동자건강권팀 팀장입니다. 법률사무소 문율 소속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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