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억 마리 사라져... 꿀벌농민이 말하는 꿀벌실종의 진실
[노광준 기자]
▲ 지난 8일 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국적으로 약 50%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
ⓒ 픽사베이 |
최근 급속하게 늘어난 꿀벌 실종 사건에 대해, '정부에서는 꿀벌 농민들이 농약을 잘못 사용한 측면도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약 자체가 없어요. 그동안 개발되지 않은 거죠."
30년 간 양봉업을 해온 권혁주씨의 말이다. 그는 자기 소개를 해달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냥 자신은 '꿀벌을 돌보는 사람'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양봉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좋아 시작한 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최근 들어 꿀벌들이 너무 많이 죽다보니 어디가서 자신이 양봉한다는 말을 부끄러워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벌을 돌본 지 30년 가까이 됐는데요, (요즘에는) 어디가서 얘기하기가 부끄럽죠. 왜냐하면 요 근래 꿀벌을 많이...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런 마음이 있어서 그냥 (벌을) 키운 지 얼마 안 된다고 얘기하죠."
권씨는 봄이 되면 아카시아 꽃을 따라 전남 보성부터 대구를 지나 연천 비무장지대 근처까지, 1톤 트럭에 벌통을 가득 싣고 다니며 벌들과 함께 꿀을 모은다. 그런데 전에는 없던 현상이 생겨 당혹스럽다. 겨울이면 벌통 안에서 무리(봉군)지어 탄탄하게 겨울을 나던 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정말 어디에 있는지 사체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라지는 실종 사건을 벌써 햇수로 2년 째 겪고 있는 것이다.
겨울 지나며 꿀벌 250통 중 220통 사라져
"초겨울 10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꿀벌들이 그냥 실종됩니다. 전에는 없던 일이에요. 저희들로서는 황당한데 원인이 (지금도) 확실하지 않아요."
그는 꿀벌 250통을 키웠는데 겨울을 지나며 220통이 사라졌다. 벌 통 하나에 꿀벌 1만5천마리에서 2만 마리가 산다고 할 때 꿀벌 최소 330만 마리가 실종된 것이다. 피해는 올해 들어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2022년 봄 일부 지역에 집중되던 것이 올해 봄(2023년)에는 전국적으로 일반화됐다.
지난 8일 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국적으로 약 50%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농가 1만8826곳, 122만4000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졌으니 벌 통 1개 당 1만7000마리씩만 잡아도 208억마리가 사라진 셈이다. 이는 지난해 전국 39만517개 벌통에서 60억마리가 없어진 피해규모보다 3배 이상 커진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에는 더 심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 피해는 양봉농가들에서 그치지 않는다. 벌을 구하기 어렵다보니 딸기나 참외 등 꿀벌들의 꽃가루 수분 활동을 통해 수정을 하던 과채류 농가들도 수정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벌 매매되는 가격이 원래 15만 원에서 20만 원이었는데 그게 두 배 이상, 40~45만 원에 거래됩니다. 그러다보니 딸기나 참외 하우스 안에 수정용으로 벌이 들어갔는데, 거기도 벌이 모자라니까 거기도 (한 통에) 15만 원 들어가던 것이 30만 원으로 높아진거죠."
▲ 30년차 꿀벌농민 권혁주님의 OBS <오늘의 기후> 인터뷰 장면 갈무리 출처 : 2023년 5월29일 OBS 라디오 공식 유튜브 채널 |
ⓒ OBS |
권혁주 농민은 우선 '꿀벌응애'로 불리는 진드기 피해를 꼽았다.
"꿀벌들이 진드기한테 영양분을 많이 빼았겨요. 몸이 약해지는거죠. 그러니 오래 살지 못하고 여러가지 질병에 노출되는거죠."
지난 2월 농식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농가들이 방제적기에 방제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고 방제제 사용법을 준수하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웠다고 밝혔다. 농민들이 방제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권씨는 약재 자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할 일은 방제수칙 권고가 아니라 '약재개발'이라는 뜻이다.
"저희들이 쓸 수 있는 약재가 많지가 않아요. 중국에서 수입하는 약재를 쓰는데 그냥 쉽게 쓸 수 있는 약을 쓰다보니 똑같은 약을 되풀이해서 쓰게되고, 그러다보니 들리는 말로는 (내성을 가진) 슈퍼 진드기가 생겨났다. 잘 죽지 않는거죠. 내성이 생겨서... 약재개발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부가 신경을 써줬으면 해요."
또 다른 문제는 기후변화였다.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기후변화 이야기를 들어보자.
"꽃이 피는 기간이 짧아졌어요. 전에는 아카시아 꽃의 경우 5월초부터 6월초... 남부지방부터 시작해서 경기 북부지역까지 가면 (꽃 핀 기간이) 한 달이었는데, 지금은 (고개를 절레절레) 한 20일 정도로 짧아졌어요."
더구나 올해같은 경우에는 냉해 피해, 즉 꽃이 일찍 핀 상태에서 밤과 낮의 기온차이가 심해지면서 꽃 대가 나왔을 때 꿀 분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꿀 수확량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오히려 '열섬현상'으로 더워진 도시 근교에서 꿀 따기가 더 수월해졌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꿀벌 농민이 지금 이 순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꿀벌들이 가장 왕성할 때가 밖에서 꿀이나 꽃가루가 들어올 때거든요. 꽃이 많아야하는거죠. 철따라. 그런 밀원수를 정부에서 많이 심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진드기 약재 개발 외에도 꿀을 딸 수 있는 밀원식물의 확보, 그리고 농약 피해로부터의 보호이다. 셋 다 모두 정부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 긴 시간을 들여 체계적으로 가꿔야할 문제들이다.
"꿀벌들이 농약에 상당히 약하거든요. 치명적인 농약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다보면 어떤 경우 벌들이 분봉이라고 해서 여왕벌이 후계자를 만들어놓고 세력을 나눠주는데, 그 많은 세력들이 바깥으로 막 나왔다가 어떤 과수나무에 붙었는데 다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 나무에 약을 친 거죠. 며칠 전에 쳤는데도 농약 성분이 나무에 남아있으니까 벌들이 그곳에 붙는 것 만으로도 다 죽어버리더라고요. 가슴아픈 일입니다."
농민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 생방송 문자가 쏟아졌다. 이러다 봉침 가격도 올라갈 것 같다는 위기의식부터 꿀벌의 품종개량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저 분 잘못이 아닌데...' 하는 문자였다. 꿀벌실종사건에 관한 인터뷰는 다음달에도 계속된다(OBS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방송됩니다).
[참고자료]
- 최경호, '꿀벌 실종' 재앙 현실화…"벌통에 100억 썼다" 농가 비명 (중앙일보, 2023년 5월9일)
- 보도자료 '대대적 응애방제로 양봉산업 기반 유지 추진' (농림축산식품부, 2023년 2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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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뷰는 2023년 5월29일 (월) OBS 라디오의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매일 오전 11시~12시)를 통해 이뤄졌으며 방송 내용 다시보기는 OBS 라디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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