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 bhc에 '징벌적 배상금' 받아낸 점주 "1억? 섭섭했어요"
[권성훈 기자]
▲ bhc치킨 한 매장 |
ⓒ bhc |
<'본사 비판' 가맹점 쫓아낸 bhc...법원 "1억여원 징벌적 배상" 첫 판결>
지난 22일, '한국일보'가 보도한 이 기사는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 중 하나인 bhc가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산업 역사상 최초로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판결은 다수의 기사로 보도된 것은 물론 참여연대, 민변, 경실련 등의 공익단체들이 합동 논평을 내는 등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22년 매출 1조 달성 대기업, 언제나 최고의 모델을 기용한 광고, 남녀노소 모두가 선호하는 외식 브랜드 등의 긍정적 타이틀을 가진 bhc. 이처럼 업계 최고의 기업이 가맹점들에 도대체 어떤 갑질을 했기에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일 수밖에 없는 '업계 최초의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을까?
먼저 2017년 10월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37조 2항)'이란 제도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사건의 경위로 들어가는 것이 순서일 듯싶다. '징벌적 손해배상'에는 제조물 책임이나 고의적 불법행위 등 여러 범주가 있다. 그중 '고의적 불법행위'는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인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그 손해액 이상의 금액을 불법 행위자에 부가 징벌함으로써 불법행위 당사자는 물론 장래에 다른 이가 저지를 수 있는 유사한 불법행위의 반복을 막기 위한 제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을 간단하게 줄이면 '매우 큰 배상금으로 일벌백계하여 세상에 경종을 울리다'라는 뜻이 되겠다. 그러니까 이번에 사법부가 bhc를 일벌백계하여 프랜차이즈 업계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최고의 브랜드가 보여준 최악의 갑질
울산에서 bhc 가맹점을 운영하는 진정호씨는 동료 점주들과 함께 그동안 겪었던 본사의 부당행위, 즉 ▲점포환경개선 강요 ▲시중가보다 비싼 원부자재(닭고기, 식용유 등) 구매 강제 ▲점주 보복 ▲광고비 집행 내역 미공개 등을 공정위에 불공정거래 행위로 신고했다.
그러자 본사는 가맹점주단체 회장인 진정호 사장과 임원으로 활동하던 동료 점주들을 상대로 보란듯이 가맹 해지를 통보했다. 이 때문에 진정호 사장 점포는 100여 일 동안 물류가 끊겼고 본사로부터 10억 원의 민사 소송과 형사 고발까지 당했다. 그러니까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갑질을 모두 겪은 것이다.
이번 판결의 주인공 진정호 사장은 암울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정말 힘들었죠. 오늘 판결이 있기 전까지 이미 기사로 여러 번 소개되었지만, 본사로부터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10억 원이라는 거액의 민사 소송에, 형사 고발까지 당했습니다. 더군다나 본사가 물류를 끊어 가게 영업이 중단되니 가족의 생계유지까지 위태로워져 대출을 받아 연명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에서 같이 활동하던 동료 점주들도 줄줄이 강제 폐점되어 여기저기서 원망하는 소리도 들리고, 거의 공황상태였죠. 정말 어떻게 견뎠는지...
이번 판결이 당연히 기쁘죠. 하지만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2019년 공정위 신고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우리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과는 늦어지고 그 과정에서 점주들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본 뒤에 나온 결과라 반갑지만 씁쓸한 감정은 지울 수가 없네요.
더군다나 5억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1억여 원으로 결정된 것은 솔직히 섭섭하더라고요. 안 겪어보신 분들은 모를 겁니다. 금전적 손해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정신적 고통이란 걸요. 그런데 이 부분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2년여 동안 본사의 직간접적인 겁박에 제 개인은 물론 가족까지 심리적 고통 속에서 살았고요. 결국, 먹고살기 어려워지니 동료 점주끼리도 서로를 힐난하게 되더군요. 전 그렇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망도 잃게 되었죠. 밤마다 정신적 고통에 술 먹고 혼자 운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번 일을 치르면서 알게 된 건데 징벌적 손해배상이 배상 금액의 3배로 제한되어있더라고요. 이것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결정된 1억여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액은 제 가게 영업 손실금 8천여만 원만 인정하여 거기에 1.3배 한 금액입니다. 1조짜리 기업에 1억이면 0.01%입니다. 이러면 '징벌적'이란 의미가 퇴색되는 거잖아요.
기업에 당신들이 잘못하면 이렇게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런 수준이면 오히려 역효과 아닐까요? 거슬리는 점주들 괴롭혀도 이렇게 무의미한 액수의 벌금이라면 본사들은 그걸 감수하고 오히려 가맹점주들에 '일벌백계'의 의미로 갑질을 또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3배까지가 아니라 '징벌적'이란 단어답게 3배부터 10배까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 보통 수십억에서 수백억이라고 하던데, 이런 규모의 기업에는 그 정도가 유의미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닐까 합니다."
반갑지만 정말 아쉬운 현실
진정호 사장의 인터뷰는 정말 많은 것을 시사했다. 먼저 그는 이번 판결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지적했다. 사건이 터지고 4년여의 세월 속에서 진정호 사장을 포함한 동료 점주들이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회자 되었었다. 이 문장은 라틴어 법 격언 중에 'LEX DILATIONES ABHORRET', 즉 "지연된 재판은 정의가 아니다"라는 문장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지연된 법 절차는 실질적인 정의를 이루지 못하거나 그 의미를 희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진정호 사장의 안타까움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판결 앞에 붙은 자랑스러운(?) '최초' 수식어에 '지연된'이란 뜻이 숨어 있음을 본 것이다. '최초'가 나오기까지 흘러간 긴 시간 속에서 속절없이 쓸려간 수많은 가맹점주가 있음을 그도 알기 때문이다.
bhc는 이번 징벌적 손해배상과 판결을 받기 2년 전인 2021년 5월에 공정위로부터 5억의 과징금을 받았다. 진정호 사장은 이 과징금의 불합리함도 지적했다. 국가가 상당한 과징금을 징수하면서도 실제 피해자인 가맹점주들에게는 어떠한 명분의(피해 보상금 또는 생존 지원금) 비용도 지급하지 않는 건 제도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진정호 사장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아쉬운 심경을 토로했다.
"가령 길에서 사람이 쓰러지면 주변에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나 구급대원이 응급조치하잖아요. 일단 살려 놓고 이후 병원에서 정상적인 진료를 받고 치료를 하죠. 지금 이런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쓰러진 점주들을 살려 놔야죠. 그러려면 과징금에서 점주들의 피해 비용 일부라도 지급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그 과징금은 국가가 가져가고 정작 피해자들은 나중에 민사 소송으로 받으라고 하면 본사의 압박에 피폐해진 점주가 무슨 여력으로 소송을 하나요?"
진정호 사장은 인터뷰 말미 이번 소송은 1심 판결이었으며 확실하지는 않지만, 본사가 항소를 준비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터널 속에서 앞쪽에 보이는 희미한 빛에 희망을 걸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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