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로 먹고살기 힘든 시대... "토종벼 막걸리 승산 있다"
[월간 옥이네 박누리]
▲ "토종쌀로 막걸리를 만든다면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종자주권, 식량주권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겠지요." |
ⓒ 월간 옥이네 |
0.00001%. 376만 톤 가운데 약 30톤. 지난해 전체 쌀 생산량 중 토종쌀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절멸 위기라고 불러도 이상치 않은 숫자이지만 '이만큼이라도' 지켜낸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다.
북흑조, 돼지찰, 귀도, 한양조, 쇠머리지장, 화도, 흰베... 개량종에 밀려 잊힌 토종벼를 심고, 학교와 유치원에 논을 만들어 어린이들이 토종벼를 만나게 하고, 이 토종벼로 밥을 짓고 술을 빚으며 우리 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4월 18일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 토종벼 단지 내에서 열린 2023 전국토종벼농부대회다.
올해 여덟 번째를 맞는 이번 대회는 1부 토종벼 심포지엄 '토종쌀과 막걸리', 2부 토종쌀 막걸리 시음회로 나뉘어 진행됐다. 특히 토종쌀의 적정 가격을 보장하고 이를 막걸리로 상품화해 토종쌀의 재배 확대와 소비 증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동네정미소 김동규 대표가 사회를 맡은 1부 토종벼 심포지엄에서는 ▲농부와 토종벼, 그리고 막걸리(전국토종벼농부들 대표 이근이) ▲1910년 전후 해방기까지 주조법의 변천과 농업경영 실태로 본 술과 쌀(전 우리술문화원장 이화선) ▲해방 이후 술 재료의 변천과 전통주 술쌀의 현주소(<응답하라 우리술> 저자 김승호) ▲토종벼 10품종의 술쌀 가능성(국립농업과학원 식생활영양과 이승은)이 발표됐고 이어 북흑조, 멧돼지찰, 귀도, 자광도 등 토종쌀 막걸리를 주조한 사례(C막걸리 대표 최영은, 양수리양조장 대표 김광영)도 소개됐다.
<월간 옥이네>는 전국토종벼농부들 이근이 대표의 '농부와 토종벼, 그리고 막걸리' 주제 발표를 중심으로 현장 이야기를 담는다.
▲ 전국토종벼농부들 이근이 대표 |
ⓒ 월간 옥이네 |
"'토종'은 우리 토양에 적응해 그 성질이 고정돼 지금까지 이어져온 종자입니다. 중국에서 왔든 필리핀에서 왔든, 또 그것이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이 땅에 뿌리 내렸다면 '토종'입니다. 씨앗이 적응할 수 있도록 선택하고 가꿔온 것이 우리 농민이고, 그런 점에서 토종은 우리 선조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우리 땅에 적응해왔기에 변화무쌍한 기후 앞에서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 정의와 함께 기후위기 속 종자 주권으로서 토종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국토종벼농부들 대표이자 현재 우보농장을 운영하며 토종벼 보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근이씨. 그는 현재 우리가 먹는 쌀 품종의 개량 과정상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삼광, 주남, 해뜨미 등 시중에 판매되는 우리 쌀 품종 대부분이 일본 원종의 개량종이라는 것.
그는 소로리볍씨, 가와지볍씨 등 한반도 벼의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개량종 벼 계보에서 토종벼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실을 짚으며 '토종벼'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근이씨는 이어 ▲테이스팅 워크숍(미각 체험 및 교육)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 ▲프리미엄 쌀 시장 개척 등 다양한 사례를 들며 토종벼 확산의 가능성을 전망했다. 2017년 한미정상회담 만찬에 올라간 '북흑조'와 '자광도'·'충북흑미', 화장품 원료로 사용된 '아가벼', 초콜릿에 활용된 자광도 현미, '한양조'·'검은깨쌀벼'로 만든 현미볼떡과 '궐나도'를 쓴 젤라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재배 농민의 생존권 보장. 이근이씨는 "우리 쌀 가공품이 불티나게 팔려도, 원재료가 되는 쌀이 농협 수매가(kg당 1000원~1500원)에 머문다면 농민 입장에서는 특별히 이익이 없다"고 지적하며 "우리 쌀을 활용한 가공산업에서 농민이 함께 살려면 토종이든 아니든 kg당 5천 원은 보장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쌀 농가를 돕기 위해 '밥 한 공기 다 먹어라'는 말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죠. 이제는 가공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실제로 한 연예인이 개발한 소주로 강원도 원주 쌀의 대부분이 소비돼요. 하지만 농협이 수매하다 보니 수매가가 높지 않고 농민 입장에선 딱히 좋을 게 없습니다. kg당 1~2천 원 받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건 대농뿐이에요. 수매가 기준대로라면 쌀 1천 평 지어봐야 1년에 100~200만 원 겨우 손에 쥐는 거거든요. 소농은 절대 이런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합리적이지 않은 쌀 가격 시장에서 이근이씨가 토종벼 소비 확대의 열쇠로 주장하는 것은 바로 '막걸리'. 제각각의 색과 맛, 특성을 가진 토종쌀로 막걸리를 빚어 경쟁력을 확보하고 일제강점기 사라진 가양주 문화를 회복하자는 내용이다.
"1918년에는 자가양조 제조면허자(주막)가 37만 명이 넘었다고 해요. 이 말은 37만 가지 맛의 막걸리가 존재했다는 겁니다. 현재 우리 토종쌀 생산량이 전체 쌀의 0.00001%인데, 이마저도 소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토종쌀로 막걸리를 만든다면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종자주권, 식량주권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겠지요. 나아가 다양한 우리 술의 맛을 회복하고 전통주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450종의 토종벼를 활용해 막걸리를 만드는 게 일단 우리의 목표입니다. 토종쌀과 막걸리가 만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 지난 4월 18일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 토종벼 단지 내에서 2023 전국토종벼농부대회가 열렸다. 이날 토종쌀의 적정 가격을 보장하고 이를 막걸리로 상품화해 토종쌀의 재배 확대와 소비 증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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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001%. 376만 톤 가운데 약 30톤. 지난해 전체 쌀 생산량 중 토종쌀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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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적이지 않은 쌀 가격 시장에서 이근이씨가 토종벼 소비 확대의 열쇠로 주장하는 것은 바로 '막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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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통권 71호 (2023년 5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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