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두 번의 국경을 넘어 온 도시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밤 9시를 넘어, 비슈케크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밤새 달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로 향하는 버스입니다. 이 버스를 타고 두 번이나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우선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갔다가, 한참을 달려 우즈베키스탄으로 또 국경을 넘습니다.
▲ 타슈켄트의 아침 |
ⓒ Widerstand |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모스크입니다. 이제까지는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타슈켄트에서는 벌써 모스크를 여럿 보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히잡을 쓴 사람도 다른 도시보다 많이 보입니다.
도시의 규모도 분명 다릅니다. 도심의 면적도 넓고, 높은 빌딩도 곳곳에 보입니다.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니까요. 네 개 노선으로 구성된 지하철도 운영 중입니다. 도심지의 웬만한 곳은 지하철만으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까지 타슈켄트는 유일하게 지하철을 가진 중앙아시아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 이스티크랄 광장 |
ⓒ Widerstand |
소련 시절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 역시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근과 숙청이 이어졌습니다. 그나마 2차대전 이후에 식량사정이 개선되고, 산업기지가 유치되며 타슈켄트는 큰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 독립 광장 |
ⓒ Widerstand |
이슬람 카리모프는 물론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임기를 연장해 가며 2000년, 2007년, 2015년까지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물론 선거가 투명하게 치러졌을 리 없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여러 야당 지도자가 체포당했죠. 외신의 선거 취재도 금지됐습니다.
이슬람 카리모프는 곧 중앙아시아의 독재자의 전형으로 떠올랐습니다. 2005년에는 안디잔(Andijan) 시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대를 군경이 학살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정부 집계로만 최소 187명의 시민이 사망했죠. 이 사건으로 우즈베키스탄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기도 합니다.
▲ 이슬람 카리모프의 동상 |
ⓒ Widerstand |
같은 정권 안에서 사람만 바뀐, 독재정의 승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르지요예프 아래에서 우즈베키스탄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여러 정치범이 석방되었고, 국민의 거주 이전의 자유도 상당 부분 보장되었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만들었던 경범죄 처벌 조항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 우즈베키스탄 국립대학교 |
ⓒ Widerstand |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두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2017년 외환 자유화 조치와 함께 암시장 환율과 공식 환율의 차이는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암환전상들도 보기 어려웠습니다. 2018년부터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도 허가되었죠. 간간이 만난 제복 입은 사람들은 친절하기만 했습니다.
▲ 우즈베키스탄 국립대학교 |
ⓒ Widerstand |
그렇게 찾아온 도시이기 때문일까요. 하룻밤에 두 번의 국경을 넘으며 버스 안에서 잠을 설쳤지만, 도시를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어쩐지 오늘의 타슈켄트는 더 번화하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웃음바다 된 장례식장... 우아하게 늙는 법 알게 해준 사람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85.4% 반대... 조사한 우리도 놀랐다"
- 왜 욱일기를 못 알아보느냐... 일본의 호통
- "낙화놀이 불꽃 대신 함안군 향한 분노의 불꽃이 남았다"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언론농장
- 비혼 1인 가구를 위한 김밥학개론
- 3일 간 외박한 남편, 돌아와 장모에게 던진 말
- '바이든-날리면' 보도 MBC 기자 압수수색... "보복·과잉수사"
- 국회 윤리특위, 김남국 부른다... "거부하면 징계수위 높아져"
- '욱일기'를 '욱일기'라 쓰지 못하는 한국 언론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