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두 번의 국경을 넘어 온 도시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입력 2023. 5. 3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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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번화하고 자유로운 오늘의 타슈켄트

[김찬호 기자]

밤 9시를 넘어, 비슈케크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밤새 달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로 향하는 버스입니다. 이 버스를 타고 두 번이나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우선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갔다가, 한참을 달려 우즈베키스탄으로 또 국경을 넘습니다.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을 경유하는 편이 거리도 짧고 도로 사정도 낫습니다. 덕분에 하룻밤에 두 번의 국경을 넘는 버스 노선이 탄생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넘어왔을 때에는 벌써 동이 튼 다음입니다.
 
 타슈켄트의 아침
ⓒ Widerstand
 아침이 밝고 버스는 타슈켄트 시내에 접어듭니다. 도시 외곽부터 알마티나 비슈케크와는 다른 점이 눈에 띕니다. 같은 중앙아시아에 있으니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모스크입니다. 이제까지는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타슈켄트에서는 벌써 모스크를 여럿 보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히잡을 쓴 사람도 다른 도시보다 많이 보입니다.

도시의 규모도 분명 다릅니다. 도심의 면적도 넓고, 높은 빌딩도 곳곳에 보입니다.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니까요. 네 개 노선으로 구성된 지하철도 운영 중입니다. 도심지의 웬만한 곳은 지하철만으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까지 타슈켄트는 유일하게 지하철을 가진 중앙아시아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도시에 들어와 별로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이 도시가 누렸던 번영의 시절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지역이었으니까요.
 
 이스티크랄 광장
ⓒ Widerstand
우즈벡인이 이 지역에 정착한 것은 16세기의 일입니다. 이 지역에 여러 국가를 세웠죠. 초기에는 페르시아와 경쟁했고, 19세기부터는 러시아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곧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소련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소련 시절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 역시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근과 숙청이 이어졌습니다. 그나마 2차대전 이후에 식량사정이 개선되고, 산업기지가 유치되며 타슈켄트는 큰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부유하고 거대한 도시가 될수록, 소련의 탄압도 거셌습니다. 스탈린 사후 일부 해금조치가 이루어졌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탄압은 여전했습니다.
 
 독립 광장
ⓒ Widerstand
독립한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즈벡 민족에 대한 탄압은 사라졌지만, 경색된 정치는 변하지 않았죠. 소련 해체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를 대통령에 선출했습니다. 이미 1989년부터 우즈벡 공산당 서기장을 맡고 있던 인물이었죠. 결국 정치 지도자는 바뀌지 않은 셈이었습니다. 
이슬람 카리모프는 물론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임기를 연장해 가며 2000년, 2007년, 2015년까지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물론 선거가 투명하게 치러졌을 리 없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여러 야당 지도자가 체포당했죠. 외신의 선거 취재도 금지됐습니다.

이슬람 카리모프는 곧 중앙아시아의 독재자의 전형으로 떠올랐습니다. 2005년에는 안디잔(Andijan) 시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대를 군경이 학살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정부 집계로만 최소 187명의 시민이 사망했죠. 이 사건으로 우즈베키스탄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기도 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은 독재국가였습니다. 야당과 소수민족, 종교단체에 대한 불법적인 구금과 고문 등이 이어지는 악명 높은 독재국가였죠. 세계 최악의 부정부패 국가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목화 수출을 위해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동원하는 강제노동 문제는 수차례 국제적 스캔들로 확산되었죠.
 
 이슬람 카리모프의 동상
ⓒ Widerstand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도 변화는 다가왔습니다. 2016년 9월 2일, 이슬람 카리모프는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총리였던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같은 정권 안에서 사람만 바뀐, 독재정의 승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르지요예프 아래에서 우즈베키스탄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여러 정치범이 석방되었고, 국민의 거주 이전의 자유도 상당 부분 보장되었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만들었던 경범죄 처벌 조항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우즈베키스탄의 정치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변한 것도 사실입니다. 미르지요예프의 개혁은 고르바초프나 덩샤오핑과 비교되며 "우즈벡의 봄"으로 칭하기도 하죠. 거대한 혁명이나 정권의 교체는 없었지만, 어떤 변화는 이런 방식으로 오기 마련이니까요.
 
 우즈베키스탄 국립대학교
ⓒ Widerstand
우즈베키스탄에 오기 전, 저에게도 여러 주의 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이 크게 다르니 주의하라거나, 부정부패가 많으니 경찰과 접촉은 최대한 피하라거나. 입국심사나 출국시 세관 검사도 아주 엄격하다고 들었습니다. 짐을 전부 열어보는 것은 물론, 카메라의 사진까지 하나하나 확인했다는 소문 같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두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2017년 외환 자유화 조치와 함께 암시장 환율과 공식 환율의 차이는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암환전상들도 보기 어려웠습니다. 2018년부터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도 허가되었죠. 간간이 만난 제복 입은 사람들은 친절하기만 했습니다.
몇 년 만에 달라진 풍경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변화가 타슈켄트에는 있었습니다. 이곳이 그 악명 높던 독재국가가 맞는지 의심하게 될 정도였으니까요.
 
 우즈베키스탄 국립대학교
ⓒ Widerstand
물론 우즈베키스탄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몇 년 전이라면, 하룻밤에 두 번의 국경을 넘는 이 여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짧은 기간을 스쳐가는 저와 같은 여행자에게는,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뀐 셈이니까요. 
그렇게 찾아온 도시이기 때문일까요. 하룻밤에 두 번의 국경을 넘으며 버스 안에서 잠을 설쳤지만, 도시를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어쩐지 오늘의 타슈켄트는 더 번화하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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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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