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의 이코노믹스] 민간 중심 생태계 만들려면 정부 마중물 강화돼야

입력 2023. 5. 30. 00:57 수정 2023. 5. 3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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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뭄 만난 스타트업계 제대로 키우려면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스타트업 시장에 거품이 많은 상태에서 돈 가뭄이 찾아 왔다. 기초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혹독한 시간을 잘 버텨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3월부터 계속된 금리 인상에다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여파가 벤처 생태계에 악재를 더했다. 돈이 마르자 스타트업은 성장에 집중하는 대신 지출 줄이기에 안간힘을 쓰며 이익 증대를 위한 사업 모델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그간 자금조달 모델에만 의존한 기업엔 더욱 힘든 시간이다.

투자 혹한기에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각국에서 푼 돈이 넘쳐 투자가 넘쳤고 사모펀드(PE)가 동참하면서 기업 가치에 거품이 끼었다. 현재의 어려움이 그간 지나치게 고평가된 기업 가치를 재조정하는 측면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 1분기 글로벌 벤처 투자 -13%
한국은 60% 급감, 돈가뭄 심각

정부 모태펀드 예산 40%나 삭감
연기금·금융기관도 투자 줄여

모럴해저드 막되 정부 지원 절실
규제 풀고 딥테크 지원도 늘려야

국내 벤처 투자액 갈수록 급감

조원경의 이코노믹스

그러나 스타트업 시장의 돈 가뭄 속에 잠재성 있는 스타트업이 활력을 잃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투자업계에선 수년간 지속한 스타트업의 기업공개(IPO) 가뭄으로 스타트업에 재투자하는 데 사용할 주요 현금 원천도 고갈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투자 금액은 6조76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 감소했다. 스타트업 투자 리포트 ‘스타트업레시피’ 자료에 의하면 국내 벤처 투자액은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8.6%, 43.9% 감소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60.3% 줄었다. 3월에 유치된 투자금은 3409억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으나, 지난해 동월 대비 61% 하락했다.

글로벌 벤처 생태계 상황도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2023년 1분기 자금 지원은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해 암울했던 2022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주요 지역의 23년 1분기 자금 지원이 두 자릿수 감소했다. 신생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수는 6년 만에 최저 수준(13개 기업)이다. 분기별 IPO가 47% 감소해 거의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올 1분기 글로벌 자금 지원이 13% 줄어든 데 비해 국내 벤처 투자 60.3% 하락은 현재 우리 벤처 산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도 벤처 육성에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월 벤처 기업에 29조7000억원의 정책 자금 지원에 이어 4월 신규 지원책을 발표했다. 자금난에 빠진 스타트업계에 기업 성장 단계별로 10조5000억원 규모를 수혈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벤처업계의 돈 가뭄이 당장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살펴보자.

정부 예산 줄자 매칭 투자 못 찾아

첫째, 올해 중소기업모태출자조합(이하 모태펀드)의 예산은 총 3135억 원으로 책정됐다. 작년 모태펀드 예산(5200억원) 대비 60% 수준이다. 정부 중심의 양적 투자에서 민간 중심의 질적 투자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은 방향성 차원에서 타당할 수 있다. 모태펀드 지원을 받고도 매칭할 민간 출자자(LP)를 구하지 못하는 건 최근 얼어붙은 투자 심리 때문일 수 있다. 문제는 국내와 글로벌 유동성이 말라가는 시점에서 대규모로 예산을 삭감한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민간 출자자에 부여하는 세제 인센티브가 있기는 하지만, 정책 자금이 빠져나가는 시점에서 대규모 민간 자본을 유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상당하다. 모태펀드의 예산이 크게 줄면 벤처 캐피탈(VC) 운용사들의 펀드 레이징도 혹한기를 맞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연기금과 공제회, 대형 금융기관 모두 VC 부문을 비롯한 모험자본의 출자를 대폭 줄이고 있다. 신규 펀드 조성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둘째, 국내 트위터 분석 결과 스타트업의 최대 관심은 투자 유치, 서비스, 사람, 개발자, 플랫폼 순이다. 아직도 스타트업에서 플랫폼이 대세란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유니콘 기업은 대부분 기술 난도가 그리 높지 않은 O2O(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 마케팅) 서비스거나 플랫폼 사업자였다. 바이오, 인공지능, 에너지, 청정 기술, 컴퓨터 과학, 재료 및 화학 분야의 신생 기업을 일컫는 딥테크 유니콘은 전무하다. 기술력은 있지만 사업성이 구현되지 않았던 기업이 최근의 투자 경색 분위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짙다.

해외의 경우 기술 분야 스타트업 증가 속도에서 유럽이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 그래서였나. 돈 가뭄 속에서도 영국·아일랜드 스타트업에 대한 세계 VC의 투자 활동은 상대적으로 왕성하다. 작년 기업가치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유니콘 기업의 감소 비율을 보면 미국 52%, 아시아 63%인데 비해 유럽은 29%였다. 딥테크는 초기 단계 연구인 경우가 많고 비용이 많이 들며 상용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상용화 단계에서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될지, 어떤 규제가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들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는 대부분 공적 자금으로 이뤄진다. 기술이 상용화되어 제값을 받는 소부장 딥테크 스타트업이야말로 경기 흐름에 좌우되지 않고 분절화된 세계화 속에서도 빛날 수 있는 보석 같은 존재다. 딥테크 분야는 회수 시장 활성화가 중요하다. 매출과 이익이 없더라도 세계적 기술을 가진 기업은 상장을 시켜줘야 더 많은 창업가가 생겨나고 업계도 더 많은 투자를 단행할 수 있다.

이스라엘 재창업 때 지원금 20% 늘려

셋째, 스타트업 창업 지원 보조금 사업의 효과성이다. 청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절반의 매출이 0원이라는 사실은 보조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지원 효과는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청년들이 창업에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제기된다. 현재는 기술 개발 가능성이 높아도 자본금이 없으면 지원이 안 된다. 예비창업 패키지 지원의 경우 보조금을 사용하는 시기(9개월)가 정해져 있다. 까다로운 고용유지 조건은 스타트업의 경직적인 운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복잡한 서류와 행정 편의주의로 지원 금액 사용 기록을 제출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평가는 경청할 만하다. 창업 천국 이스라엘은 실패해도 책임을 묻거나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기저에 있다. 한 번 실패한 뒤 다시 창업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재창업을 할 경우 초기 창업 대비 20%를 추가 지원한다. 창업 보육에 종사하는 액셀러레이터의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 민간 액셀러레이터는 각자의 전문영역을 기반으로 유망하다면 투자도 하고 밀착형 창업 지원도 한다. 반면 정부 지원을 받는 액셀러레이터는 유인이 낮아 질 높지 않은 보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지적이다. 동기를 유발할 수 있게 지급 보조금 범위 내에서 민간처럼 지분 취득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넷째, 규제 완화야말로 민간중심 VC 생태계에 꼭 필요한 사안이라고 본다. 딥테크의 발전을 위해서는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드론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드론이 물류, 토지관리, 에너지,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연관 산업은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기술이 혁신을 주도하는 융합의 시대에 아직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지 못하는 규제를 전면 전환해야 스타트업의 활로가 생긴다.

기술·정보·자금 함께 있어야 벤처 발전

다섯째, 투자업계의 역량 제고도 중요하다. 벤처는 기술과 정보, 자금이 함께 묶여있는 투자 생태계가 있어야 발전한다. 자신의 영역에 집중해 기술개발에 전념하는 스타트업, 그런 스타트업을 식별할 수 있는 선구안 좋은 투자자,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 등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네트워크 연결성은 사적인 인맥이 아니라 투자 전문성에 바탕을 둬야 하고, 글로벌 투자자·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확보돼야 더욱 확장할 수 있다.

VC 투자의 정점이 있으면 하강이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시장에 거품이 많이 형성돼 있었다. 정부도 기업도 언젠가 투자 축소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투자경색이 이토록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정부도 VC 업계도 창업자도 기초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 아닐까. 민간 중심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고민의 축을 옮기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정부의 존재 이유는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를 보완하는 것이다. 모럴해저드 방지도 중요하나 정부 지원이란 윤활유를 통해 창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역할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돈 가뭄 속 스타트업에 대한 공공 부문의 지원 강화가 필요한 이유다. 스타트업 지원 플랫폼인 ‘스타트업 유니버스’를 선포한 신용보증기금의 벤처 지원 확대는 그래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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