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사채의 진화인가? 은행 대신 뭉칫돈 빌려주는 첨단 사모대출

글로벌 머니의 독특한 플레이어들이 이달 셋째 주 서울 여의도 한 초대형 호텔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상장된 채권과 주식, 파생상품 등 전통적인 자산에는 별 흥미가 없다. 노후건물, 친환경, 부실채권, 인공지능(AI) 분야 등에 베팅한다. ‘대체투자’라는 꼬리표가 그들에게 붙는 이유다. 돈의 세계에서 ‘언더 아티스트’인 셈이다.
그들이 서울을 찾은 이유는 분명했다. 주최 측의 후한 ‘한국식 환대’가 매력적이긴 했지만, 한국의 돈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특히 세계적인 규모인 국민연금 돈이 그들의 핵심 타깃이었다. 그 가운데 최근 글로벌 금융 상황과 맞물려 눈길을 끄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대출형사모펀드(사모대출, Private Debt Fu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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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돈 유치
금융 감독·감시에서 자유로워
2008년 미 금융위기 때 급성장
위기 증폭 가능성에 당국 긴장
」
국민연금에 손짓하는 펀드매니저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 은행(SVB)이 3월10일 파산했다. 사진은 하루 뒤인 11일 미국인들이 길을 가다 은행 로비문에 게시된 메시지를 읽고 있다. [UPI=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5/30/joongang/20230530005100668xhzb.jpg)
사모대출 펀드매니저들은 현란한 그래픽과 낯선 용어를 확신에 찬 어조로 투자전략을 소개했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단순하다.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기업 등에 빌려주는 투자장치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유럽 시중은행이 위기를 맞으면서 고수익을 좇는 투자자뿐 아니라 각국 금융 정책·감독 당국자, 경제분석가들이 사모대출 펀드를 주시하고 있다. 시중은행이 위기와 규제 때문에 움직이기 어려운 순간 사모사채 펀드가 ‘금융감독 밖에서’ 뭉칫돈을 공급하고 있어서다.
사모대출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호주의 거대 자산운용사인 IFM인베스터스에서 사모대출 펀드를 운용하는 히란 와니가세케라 이사를 따로 만났다. IFM은 호주 멜버른에 본사를 둔 글로벌 자산운용사다. 각종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한테서 지난해 말 기준 1400억 달러(약 187조원)를 사모대출뿐 아니라 인프라스트럭처 등에 투자한다.

Q : 사모대출 펀드는 무엇인가.
A : “우리 IFM의 펀드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기관투자가의 돈을 유치해 ‘은행이 아니지만’ 여러 기업에 직접 빌려준다. 회사채를 인수하기도 한다. 기관 투자가는 주로 연기금펀드와 보험회사 등이다. (주식투자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목표로 한다.”
Q : 펀드가 사채놀이한다는 것인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했던 서울 명동 사채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사모대출 기원이 궁금하다.
A : “미국에서는 18세기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 IFM처럼 운용회사(사모펀드) 등이 대출해주기 시작한 때는 금융자유화 등으로 사모펀드 바람이 분 1970년대 후반 80년대 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GFC)가 사모대출 펀드가 급성장하는 촉매로 구실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명동 사채업자 또는 캐피털과 본질적으로 같은 분자구조란 생각이 들었다. 사채가 21세기 금융 지식으로 무장한 펀드매니저가 굴리는 사모펀드로 환생한 셈이다.
Q : 2008년 위기가 촉매였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A : “시중은행이 너무 위험한 곳에 돈을 대줘 위기가 발생했다는 우려가 커졌다. 금융규제가 강화됐다. 시중은행의 대출이 제한됐다. 은행에 대한 규제강화는 우리 같은 투자자들에겐 기회로 작용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기회를 잘 활용했다. 자금이 우리에게 몰려들었다.”
영국 런던의 금융데이터 회사인 프레킨(Preqin)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대출형사모펀드의 자산이 1조4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26년이면 2조 달러(약 268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Q : 투자자가 정크본드를 사는 것과 사모대출 펀드에 돈을 맡기는 게 무엇이 다른가.
A : “정크본드(하이일드 채권)는 회사가 금융감독 당국이 정한 발행절차를 밟아 채권을 발행해 일반 채권시장에 판 것이다. 정크본드 보유자는 언제든지 시장에 팔아 현금화할 수 있다. 반면 우리가 회사채를 사는 방식으로 빌려주거나 아니면 직접 대출해주는 돈은 만기까지 기다려야 현금화할 수 있다. 우리에게 돈을 맡긴 투자자는 이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다.”
2026년 자산규모 2조 달러 예상
Q : 돈을 빌리는 쪽은 누구인가. 그리고 사모대출 수익률이 궁금하다.
A : “사모대출 펀드가 돈을 빌려주는 곳은 다양하다. 상장되지 않은 패밀리 회사에서 스타트업까지 여러 부류다. 단, 우리 IFM 사모대출 펀드는 스타트업과 거래하지 않는다. 수익은 리스크에 따라 달라진다. 공모형 채권펀드보다는 높다. 리스크가 낮은 경우는 연 8~8.5%를 기대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9%도 거둘 수도 있다. 물론 투자적격 등급 아래인 경우(BB~B)는 12%에 이르기도 한다.”
미국 시중은행이 파산했다. 돈줄이 마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음 위기가 발생하면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 증폭기로 구실 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대출형사모펀드는 그림자 금융의 중요한 일부다.
Q : 시중은행과 달리 금융감독·예금보험 등 안전장치가 없다. 위기를 증폭시키지 않을까.
A : “그림자 금융 대부분은 단기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빌려준다. 위기 순간 투자자들이 그림자 금융에서 돈을 회수하려고 한다. 하지만 돈은 장기로 빌려준 탓에 인출이나 환매에 응하기 어렵다(미스매치). 그 바람에 금융회사나 펀드가 파산에 몰린다(위기가 증폭된다). 반면 우리는 기관 투자가의 장기 자금을 조달해 빌려준다. 미스매치(mismatch) 가능성이 아주 낮다. 무엇보다 우리는 90년대 후반 설립 이후 9·11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 등을 이겨낸 기록을 갖고 있다.”
히란은 대출형 사모펀드가 위기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별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의 시각에선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금융위기 전문가인 고(故) 찰스 킨들버거 전 MIT대 교수가 생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선한 플레이어로 이뤄진 경제에서도 위기는 발생했다.”
◆히란 와니가세케라=호주 멜버른 모내쉬대를 졸업한 뒤 뱅크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리스크 관리 등을 맡았다. 2007년 IFM에 이적한 뒤엔 기업금융을 주로 했다. 지금은 대출형 사모펀드 등을 관할하는 펀드매니저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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