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반전] 술집이 아니라 케이크 맛집을 가야하는 날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5월은 위로가 필요한 달이다. 최근에 힘든 일을 겪은 친구에게 카톡을 썼다 지우고 또 썼다 지운다. 나의 진심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단어를 고르고 고른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이 있어 가족 약속으로 스케줄러가 빼곡해진다.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가족끼리 놀러가기도 좋다. 주말이 되면 나들이 인파로 어딜 가나 사람이 넘친다.
그러나 행복만 가득할 것 같은 이 계절에 오히려 외로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시끌벅적한 가족 모임 안에서 상처받는 사람도 있다. 난 인간 관계가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닌데도 가정의 달, 가족에게 상처받은 지인이 벌써 다섯이다. 난 그 중 크게 상심한 친구 한 명을 위로하려 한다.
소중한 사람이 힘든 일을 겪고 아파하고 있을 때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을까. '힘내'라는 말은 여태까지도 힘냈는데 더 힘을 내야 하냐며 좋은 위로가 아니라고 하고,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은 잘 안 될 게 뻔한 상황에서는 공허한 말로 들린다고 한다.
▲ 케이크는 기념일일 때 먹는 것, 아니면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만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
ⓒ 최은경 |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을 계속하면 세상이 날 돕는 것인지 책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고민하던 주제의 힌트를 얻기도 한다. 얼마 전, 읽던 산문집에서 아래의 문장들을 만났다.
"본질적으로 케이크는 사랑의 토대 위에 차려지는 음식이다. 케이크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내는 손을 상상해보라.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뻔히 알아도 매번 처음인 듯 환호하게 만드는 힘이 그 손에 있다. 케이크가 있는 날은 언제든 생일이다. 기념일이다. 어쩌면 케이크는 인간의 모든 날에 필요한 것 아닐까. 기쁨의 축제뿐 아니라 슬픔의 축제, 고통의 축제가 한창인 날들에도." - 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58p
케이크는 기념일일 때 먹는 것, 아니면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만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슬플 때, 고통 속에 있을 때 먹어도 좋을 음식이라니. '내가 널 생각하고 있어. 네가 슬플 때에도 난 널 축복해. 살아있는 널 응원해. 네가 있어 고마워'라고 말하며 친구와 함께 달디단 케이크를 먹고 싶어졌다.
며칠 뒤 유튜브를 보다가 또 다른 케이크를 만났다. '공부왕 찐천재 홍진경' 유튜브 채널에서 최화정의 집을 공개했는데 곳곳에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난 작품 중 큰 케이크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게리 코마린의 <케이크>란 작품이었는데 최화정은 환갑 때 자신에게 커다란 케이크를 줘야겠다고 생각해서 큰 맘 먹고 샀다고 했다. 케이크는 그 상징성이 대단해서 그림만으로도 사람의 기분을 바꾼다. 행복감과 위로를 느끼게 한다.
친구와 약속 날짜를 잡고 약속 장소 근처 케이크 맛집을 찾았다. 책에 있던 문장들과 케이크 맛집 링크를 카톡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몇 글자를 덧붙였다.
'그날 만났을 때 너에게 케이크를 사주고 싶어. 널 위해 엄청난 케이크 맛집을 알아놨어.'
▲ 케이크 엽서 친구에게 줄 케이크 엽서. |
ⓒ 봄사무소 |
누군가를 위로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술집이 아닌 케이크 맛집을 가보자. 진심으로 케이크를 골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케이크를 건넨다면.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케이크를 건넨다면. 케이크를 받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까.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지 않을까. 상황은 바뀌지 않더라도 결국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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