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보기엔 좋지만 불안한 이유 [성낙선의 자전거여행]
[성낙선 기자]
▲ 영산강 자전거도로 대나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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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오늘 가야 하는 길이 상당히 힘들고 험한 편이다. 이번 여행에 최대 난관인 백두대간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 500미터 높이의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치고 높이가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결코 얕볼 수 없다. 이 고개가 이번 국토횡단 구간에서 가장 높은 고개다. 이 고개에 비하면, 앞서 지나온 느러지고개 같은 건 고개 축에도 들지 못한다.
▲ 광주 북구 영산강변 산책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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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도로에서 일반도로로 올라서다
어제에 이어서 영산강 자전거도로 위를 달린다. 상류로 올라가면서 영산강이 폭이 점점 더 좁아지는 느낌이다. 물줄기는 가늘어지고, 둔치로 수풀이 우거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인데도 영산강 둑방 위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대도시 강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풍경도 이때뿐이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사람을 보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
▲ 담양 하천 습지보호구역, 영산강변 대나무군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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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대나무 군락지가 보기 드물게 아름답다. 담양의 대나무숲은 죽녹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대나무숲으로 들어가는 데크길이 경사여서 미끄러워 보인다. 습도가 높은 날은 더 미끄러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 외 데크길은 대체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편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은 람사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대나무군락지를 포함해,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삵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 담양 시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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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에서 오례천을 만나면서 영산강에 작별을 고한다. 이 지점에서부터는 자전거도로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일반도로를 달려야 한다. 영산강 자전거도로는 곧은길과 달리 멀리 돌아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길이 아름답고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도로는 그와는 정반대다. 일반도로로 올라서면서 몸이 바짝 긴장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예상했던 대로 도로 폭이 좁다. 갓길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담양의 도로는 전체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타세쿼이아가 도로 양쪽으로 높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런데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은 도로는 보기엔 좋지만, 자전거를 타기에는 불안하다. 나무뿌리가 자라면서 도로를 침범해 아스팔트를 들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인도도 없는 마당에 갓길마저 침해를 당하면 자전거가 갈 길은 결국 자동차 사이를 파고드는 것밖에 없다.
▲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시 경계선에 가서야 겨우 끝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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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을 지나가는 자전거여행자의 우려 따위와는 상관없이, 이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은 명실공히 담양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가 됐다. 이 가로수길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누구나 무료로 드나들 수 있었던 가로수길이 유료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가로수길 하나로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었던지, 가로수길 인근이 모두 거대한 테마파크로 바뀌어 버렸다.
▲ 이번 여행길에 처음 만난 터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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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 위에서부터는 도 경계선도 전라남도에서 전라북도로 바뀐다. 이 고개 위에 어느 대갓집 뒤뜰에나 놓여 있을 법한 장독대가 조성돼 있다. 다른 지역이었으면 이게 뭔가 했을 텐데, 이곳이 순창군이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후 순창군을 지나가는 동안, 내내 장독대가 눈에 들어온다. 겨우 고개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주변 풍경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나 싶다.
▲ 남원시 요천의 자전거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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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숨이 찬다. 오늘 넘어가야 할 고개 이름은 '여원치(여원재)'이다. 도로 위로 올라서 어디서부터 고개가 시작되나 싶던 차에, 드디어 눈앞에 '여기서부터 여원치 구간'이라는 교통 표지판이 나타난다. 그 표지판을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넘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 내 체력으로 기어 변속 8단에 불과한 미니벨로를 타고, 처음부터 끝까지 백두대간을 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 남원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고개, 여원재 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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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원재 정상, 백두대간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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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밑에서 멈춰 선 국토횡단 여행
여원재는 영호남을 넘나드는 고개답게 이런저런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고려말 이성계가 왜군을 토벌하기 위해 이 고개를 넘어갔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조선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가 이 고개를 넘어갔고, 정유재란 당시에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이 고개 위를 지나갔다. 그런데 역사마다 왜적이 등장한다. 그때마다 이 고개 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 인월면 마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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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면을 지나면 바로 경상남도 함양군이다. 웬만하면 이대로 함양까지 내달릴 텐데,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게다가 여원재를 넘느라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라, 함양을 코앞에 두고 멈춰선다. 인월리는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가는 주요 거점 중의 하나다. 그래서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꽤 잘 알려진 곳이다. 오늘, 광주시 북구에서 남원시 인월면까지 달린 거리는 약 90km이다. 이 상태로 가면, 이틀 후 포항에 도착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아무래도 날씨가 문제가 될 것 같다. 내일부터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일기예보부터 들여다본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오후 들어 돌풍과 함께 이틀 연속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런 건 미처 예상을 못 했다. 내가 일기예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날씨가 급변하는 바람에 애초 기상청 예보에 큰 변동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폭우도 감당하기 힘든데, 돌풍까지 분다니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 인월면, 지리산 둘레길 안내 표지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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