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출입금지' 내건 이곳, 차가운 시선이 스친다 [우리 도시 에세이]
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마을 한가운데 흐르는 물길이 지쳐 보인다. 물은 탁하고 수위마저 얕다. 동서로 흐르는, 법원읍에서 발원해 문산천에 합류하는 갈곡천이 마을을 남북으로 갈라쳤다. 갈라진 두 공간을 가느다란 연풍교가 힘겹게 잇고 있다.
▲ 연풍교 다리 난간에 나부끼는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플래카드가, 이 공간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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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곡천이 갈라놓은 두 공간은 전혀 다른 토지이용을 보인다. 위 북측이 여느 도시처럼 소비 위주의 그것도 인근 군부대 배후지로 기능하고 있다면, 아래 남측은 절반이 집창촌이다. 수십 년 쓰라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분명 지워내야 할 공간이다.
공간의 속살
▲ 골목 슬럼화 업소가 폐업하고 떠난 골목에 슬럼화가 진행 중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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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치 흔적 공간 남서측 가장자리에 남은 대치 흔적. 플래카드 옆 업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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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에서
▲ 갈곡천 남측 하천 변에 높은 가림 벽으로 막아선 모습. 성업 중인 업소 모습을 가리고 있다. 사진 왼쪽 멀리 연풍교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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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대도시 집창촌이 대규모화한다. 미군이 주둔한 소도시엔 '기지촌'이 형성되어, 대도시 그것과 구별되어간다. 미군은 일본군이 사용하던 부대를 접수하여 한반도 요소마다 주둔한다. 특히 휴전선 서북부에 집중되어 있던 미군 부대 주변에 기지촌이 빠짐없이 자리했다.
연풍리에도 미군 부대 영향으로 기지촌이 생겨, 1960∼70년대 국가가 정책으로 지원한 혜택까지 톡톡히 누리며 성장해왔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치르며 무고한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분단된 남한은 미군 눈치를 보며 나라가 나서 버젓이 범죄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미군 부대가 있는 곳 어디서나 벌어진 현상이었고, 그 후과(後果)는 오롯이 현세대의 숙제로 남았다.
먹이사슬
수십 년 범죄를 방치하다시피 하던 공권력이, 2000년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부임한 한 여성으로 인해서다. 각종 인허가 등에 불법적 행태가 들춰지고, 경찰력을 동원해 수요 차단에 나선다. 싸움의 서막이었다. 그러함에도 단기적 충격파에 그치고 만다. 법적 근거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미군 부대가 2004년부터 순차적으로 평택으로 이전하기 시작한다. 부대 이전으로,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던 기지촌이 쇠퇴기를 맞는다. 경기도에서는 의정부와 동두천, 파주가 유사한 상황이었다.
싸움의 본격화는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고서다. 이 법으로 서울은 물론 집창촌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던 각 도시에서 고된 싸움이 시작된다.
▲ 철거 흔적 불법 건축물을 자진 철거한 터로 추정되는 곳의 모습. 파주시가 노력한 작은 성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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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위에 여종업원이 있다. 어떤 사정으로 집창촌까지 흘러들었는지 제각각일망정 맨 밑바닥에서 인권유린과 착취, 고통을 당하는 직접적 당사자임에는 분명하다. 그녀들은 아니라 주장하지만 말이다.
철거 가능성은?
집창촌 폐쇄에도 철저히 자본 논리가 작동한다. 결과는 철거 재개발에 따른 보상비다. 서울역이, 청량리와 용산이 같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영등포와 미아리가 예비하고 있다. 결국 최상위 포식자인 토지주와 건축주만이 쥘 수 있는 떡이다.
토지와 건축주가 아닌 포주들은 협의회를 구성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논리가 '타 업종으로 전환할 유예기간을 달라'는 것이다. 결국 시간을 끌면서, 상당한 이주 보상비를 손에 쥔다. 결국 배움도 기술도 없는 여종업원만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인권마저 유린당하기 일쑤다.
▲ 연풍 3거리 연풍리 공간구조에서 중심을 형성한 3거리 결절점. 북측 공간의 핵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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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는 여종업원의 자립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매매춘 탈출을 전제로 2년간 직업훈련 및 생활비로 4천여만 원 지원 계획까지 수립한 상태다. 최소이니 물론 충분치 않을 것이다.
▲ 시장통 남측과 달리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인는 북측 시장통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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