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출입금지' 내건 이곳, 차가운 시선이 스친다 [우리 도시 에세이]

이영천 2023. 5. 2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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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용주골'이라는 파주읍 연풍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마을 한가운데 흐르는 물길이 지쳐 보인다. 물은 탁하고 수위마저 얕다. 동서로 흐르는, 법원읍에서 발원해 문산천에 합류하는 갈곡천이 마을을 남북으로 갈라쳤다. 갈라진 두 공간을 가느다란 연풍교가 힘겹게 잇고 있다.

연풍교에 서면 낯선 풍경에 먼저 시선을 빼앗긴다. 하천 변 남쪽에 덧세운 높다란 가림 벽이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뭔가 내보이지 말아야 할, 혹은 내보이기 싫은 게 있다는 방증이다. 연풍교엔 '청소년 출입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낀다.
 
▲ 연풍교 다리 난간에 나부끼는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플래카드가, 이 공간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
ⓒ 이영천
세칭 '용주골'로 불리는 파주읍 연풍리엔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 이곳도 외형상으론, 도시화한 여느 공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면에는 무언가 숨겨져 있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인권유린, 성매매라는 착취와 범죄, 매매춘에 기생하는 업소 등.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며 감추려 했던 것들 말이다.

갈곡천이 갈라놓은 두 공간은 전혀 다른 토지이용을 보인다. 위 북측이 여느 도시처럼 소비 위주의 그것도 인근 군부대 배후지로 기능하고 있다면, 아래 남측은 절반이 집창촌이다. 수십 년 쓰라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분명 지워내야 할 공간이다.

공간의 속살

해가 중천에 뜬 시간임에도, 이곳에 들어서려니 껄끄러움이 앞선다. 업소들이 폐업해 버린 어느 골목은, 방치되어 슬럼화가 진행 중이다.
 
▲ 골목 슬럼화 업소가 폐업하고 떠난 골목에 슬럼화가 진행 중인 모습.
ⓒ 이영천
반면 갈곡천 변에 잇닿아 늘어선 곳은 성업 중이다. 지난밤에도 영업했음이 분명한 흔적이 골목 안팎에 적나라하다. 개중 몇은 벌건 대낮인데도 조명을 켜고, 여종업원이 자리를 지키며 영업 중이다. 간간이 스치는, 업소 관계자임이 분명한 이의 시선이 날카롭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거침없는 말들이 날아온다. 몇 마디 묻고자 해도, 차가워진 시선은 어떤 물음도 거부한다.
업소가 길게 늘어선 마을 남서쪽 가장자리엔 파주시청과 대치한 흔적이 역력하다. 임시 막사가 있고, 옆엔 파주시 행정력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주장하는 내용은 충분히 짐작되는 것들이다. 여종업원 주장이 주를 이룬다. 불법 성매매를 하나의 산업으로 간주한다면, 결국 먹이사슬 최하단에서 뜯기고 착취당하는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 대치 흔적 공간 남서측 가장자리에 남은 대치 흔적. 플래카드 옆 업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음.
ⓒ 이영천
그러함에도 이 골목에도 5월의 청명한 바람이 불어 들고, 빛나는 햇살이 구석을 비추고 있다. 집창촌을 뒤로하고 연풍교에 잇닿은 교회 앞에 다다르니, 곳곳에 재개발을 추진한다는 현수막과 사무소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기지촌에서

공간도 지쳐 보인다. 하기야 20여 년 가까이 철거와 폐쇄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치러 왔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2004년 2개 법률로 제정된 '성매매특별법' 이후이니, 참으로 고되고 긴 싸움이다. 비단 이곳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 현상이었으니, 참으로 야만의 세월을 지나온 셈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서도 수원과 평택에서 일부 철거됐으나 다시 고개 들곤 한다. 여러 지방 도시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는 실정이다.
 
▲ 갈곡천 남측 하천 변에 높은 가림 벽으로 막아선 모습. 성업 중인 업소 모습을 가리고 있다. 사진 왼쪽 멀리 연풍교가 보인다.
ⓒ 이영천
집창촌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건 1백여 년 전이다. 17세기 초 일본에서 시작된 유곽이,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허가라는 공창제에 법적 근거를 두고, 성매매업을 영위하던 시설로 탈바꿈한다. 개항장에 제한적으로 도입된 유곽이,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집단화하기 시작한다. 이를 일본인들이 장악하면서, 피식민지 시기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이때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축재(蓄財)하는, 참으로 천박한 문화다.

한국전쟁 이후 대도시 집창촌이 대규모화한다. 미군이 주둔한 소도시엔 '기지촌'이 형성되어, 대도시 그것과 구별되어간다. 미군은 일본군이 사용하던 부대를 접수하여 한반도 요소마다 주둔한다. 특히 휴전선 서북부에 집중되어 있던 미군 부대 주변에 기지촌이 빠짐없이 자리했다.

연풍리에도 미군 부대 영향으로 기지촌이 생겨, 1960∼70년대 국가가 정책으로 지원한 혜택까지 톡톡히 누리며 성장해왔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치르며 무고한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분단된 남한은 미군 눈치를 보며 나라가 나서 버젓이 범죄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미군 부대가 있는 곳 어디서나 벌어진 현상이었고, 그 후과(後果)는 오롯이 현세대의 숙제로 남았다.

먹이사슬

수십 년 범죄를 방치하다시피 하던 공권력이, 2000년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부임한 한 여성으로 인해서다. 각종 인허가 등에 불법적 행태가 들춰지고, 경찰력을 동원해 수요 차단에 나선다. 싸움의 서막이었다. 그러함에도 단기적 충격파에 그치고 만다. 법적 근거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미군 부대가 2004년부터 순차적으로 평택으로 이전하기 시작한다. 부대 이전으로,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던 기지촌이 쇠퇴기를 맞는다. 경기도에서는 의정부와 동두천, 파주가 유사한 상황이었다.

싸움의 본격화는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고서다. 이 법으로 서울은 물론 집창촌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던 각 도시에서 고된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서 집창촌이 작동하는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먹이사슬 가장 상부에 토지와 건축물 소유주가 있다. 업소를 운영하지 않는 한, 이들은 임대인으로서 안정적인 수익을 누린다.
 
▲ 철거 흔적 불법 건축물을 자진 철거한 터로 추정되는 곳의 모습. 파주시가 노력한 작은 성과다.
ⓒ 이영천
다음이 흔히 포주라 부르는 업소 운영자다. 업소는 대부분 미등록이다. 이들이 토지나 건축주인 경우도 허다하다. 포주는 기둥서방을 두어 여종업원을 감시 착취하는 이중구조를 형성시킨다. 기둥서방이 전면에 나서 업소를 운영하던, 이들 능력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던 시절도 있었다. 기둥서방 존재와 역할이 아직도 변함없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최하위에 여종업원이 있다. 어떤 사정으로 집창촌까지 흘러들었는지 제각각일망정 맨 밑바닥에서 인권유린과 착취, 고통을 당하는 직접적 당사자임에는 분명하다. 그녀들은 아니라 주장하지만 말이다.

철거 가능성은?

집창촌 폐쇄에도 철저히 자본 논리가 작동한다. 결과는 철거 재개발에 따른 보상비다. 서울역이, 청량리와 용산이 같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영등포와 미아리가 예비하고 있다. 결국 최상위 포식자인 토지주와 건축주만이 쥘 수 있는 떡이다.

토지와 건축주가 아닌 포주들은 협의회를 구성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논리가 '타 업종으로 전환할 유예기간을 달라'는 것이다. 결국 시간을 끌면서, 상당한 이주 보상비를 손에 쥔다. 결국 배움도 기술도 없는 여종업원만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인권마저 유린당하기 일쑤다.

타 도시 폐쇄와 철거가, 역으로 연풍리 몸집을 불린 직접적 계기로 작동했다. 서울역, 청량리와 용산, 영등포와 미아리는 물론 수원에서 쫓겨난 포주들이 연풍리로 찾아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오피스텔 등 더욱 음성적인 형태로 진화하기도 했다. 지독한 풍선효과였고,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악순환의 현재형이다. 이 고리를 끊어내는 첩경은 결국, 여종업원의 자립과 재활이다.
 
▲ 연풍 3거리 연풍리 공간구조에서 중심을 형성한 3거리 결절점. 북측 공간의 핵심이다.
ⓒ 이영천
집창촌은 어떤 이유에서건 지워야 하는 대상이다. 파주시가 이를 지워내기 위해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총력을 모으고 있다. 몇 년 전 재개발 직전에서 실패한 경험까지 더해, 이번 싸움은 끝장을 볼 기세다. 시민단체는 물론 지역주민까지 가세해 있다. 하지만 자진 철거나 폐업이 아닌 이상, 행정력 개입에도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결국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불법과 탈법을 단속하는 방법뿐이기 때문이다.

파주시는 여종업원의 자립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매매춘 탈출을 전제로 2년간 직업훈련 및 생활비로 4천여만 원 지원 계획까지 수립한 상태다. 최소이니 물론 충분치 않을 것이다.

포주 연합회는 여전히 유예기간을 달라 주장한다. 여종업원들도 자의적 직업임을 인정하고, 튼실한 자립기반 마련을 요구한다. 여기에 집창촌에 기댄 옷집, 미용실, 소모품 가게들이 가세한 형국이다. 결국 자본의 논리다.
 
▲ 시장통 남측과 달리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인는 북측 시장통 모습.
ⓒ 이영천
여종업원들이 차별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회 안으로 흡수될 수 있는 기반은 물론 최소한의 익명성 보장도 어려운 현실이다.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손을 맞잡아야 할 부문이다. 중앙정부의 노력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연풍리 싸움을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부디 사람과 공간이 모두 재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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