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간 외박한 남편, 돌아와 장모에게 던진 말 [내 남편 목수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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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영 기자]
▲ 남편이 가출한 뒤, 내가 방수포를 지붕 위에 올리고 토치로 방수포의 이음새를 녹여 붙였다. |
ⓒ 노일영 |
지붕에 깔아 놓은 방수포가 거센 바람에 모두 뜯겨 나간 뒤, 현장에서 도망친 남편은 이틀 동안 연락도 없이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새벽에 남편에게 전화했는데, 역시나 내 예상대로 삼천포에 사는 후배의 집에 가 있었다. 이 후배는 나중에 우리가 경량 목조주택을 지을 때 함께 도와준 고마운 동생이다. 아무튼 남편에게 물었다.
"까무잡잡하고 끈적대는 요염한 방수포가 보고 싶지도 않아?"
"한때 그 끈적거림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고."
전화기를 통해서도 남편의 목소리에서 술 냄새가 날 지경이었는데, 약간 화가 나서 남편에게 거칠게 쏘아붙였다.
"떨어진 건 정이 아니라 방수포라고! 이틀 동안 삼천포로 빠져 있었으니 이제 돌아올 때도 된 것 같은데! 곱게 말할 때 열나게 튀어 오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2시간 뒤 남편은 흙집 공사 현장에 서 있었다. 방수포는 지붕에 다시 깔려 있었는데, 엄마와 나 둘이서 끙끙대며 깐 것이다. 흙집을 바라보며 엄마가 한숨까지 쉬면서 서 있으니, 아무리 눈치코치 없이 제멋대로인 남편이지만 자기 합리화나 변명 따위를 쉽게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편이 엄마에게 입을 열었다.
"장모님, 이틀 사이에 흙집을 품은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네요."
'이건 무슨 개가 풀을 뜯어 먹고 나서 '음매'하고 우는 개드립인가!' 엄마는 기가 차서 피식 웃고, 대꾸도 하지 않고 밭일을 하러 갔다. 아마도 이런 목적으로 남편은 엄마에게 개드립을 던진 게 틀림없었다. 지붕 위의 방수포를 둘러보다가 남편은 깜짝 놀라 내게 말했다.
"어머! 방수포 연결 부위가 다 녹아 붙었네? 그리고 처마 끝의 동판에도 방수포가 녹아서 붙어 있네? 요정이 이번에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나를 도운 모양이군. 고마운 요정!"
"자기 아내가 요정인 걸 아니까, 더 이상 잔소리는 안 할게. 진도 빨리 나가자고!"
▲ 피죽을 깔다가 휴식 중인 남편, 사실 남편은 휴식을 길게 하다는 잠깐 피죽을 까는 작업 패턴으로 일했다. |
ⓒ 노일영 |
180cm 피죽을 3등분으로 잘랐으니 피죽 조각 하나가 60cm였는데, 지붕에 놓을 때 뒤쪽 피죽이 앞쪽 피죽의 절반을 덮도록 놓았다. 그러니 지붕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피죽은 절반 크기인 약 30cm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피죽을 이렇게 절반이나 덮을 필요가 있어? 괜한 자원 낭비 아닌가?"
"뭣도 모르는 소리. 이걸 뒤에서 이렇게 30cm 절반 정도로 눌러 줘야 바람에 피죽이 안 날아간다고. 방수포가 접착력으로 피죽을 붙들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서로 눌러 주면 더 안전하고 튼튼해진다고."
'헐, 이것 봐라! 이번엔 피죽 인간문화재 나셨네.' 남편은 자기가 이틀이나 현장에서 도망쳐 있었다는 걸 까먹은 듯했다. '기가 죽어서 눈치를 봐도 시원찮을 판에 감히 나한테 강의 나부랭이를 한다고?' 이럴 때는 초장에 강경 진압으로 남편을 피죽처럼 눌러 줘야 더 이상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지 않는다.
"바람에 방수포가 왜 뜯겨서 날아갔다고 생각해? 자기가 방수포가 겹치는 부분 전체를 녹이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대충 빨리하려고 군데군데만 녹여서 붙였으니, 바람에 뜯겨 날아간 거라고, 알지? 자기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그 흙집 만드는 책에는 그런 내용이 안 적혀 있는 모양이지?"
남편은 지붕 위에서 피죽 하나를 들고 이리 놓았다 다시 저리로 옮기며 부산을 떨면서, 내가 한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연기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내 말 안 들려?"라고 외쳤지만, 남편은 극중 인물에 몰입하는 사실주의적 연기인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그런데 남편은 인물에 몰입한 것이 아니라 귀가 없는 피죽을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피죽 작업을 시작한 지 이틀 정도가 되자 지붕의 2/3 정도가 덮였고, 사흘째 되는 날 삼천포에 사는 남편의 후배가 여자친구와 함께 현장으로 놀러 왔다. 원래는 일을 도와주러 온다고 전화가 왔었는데, 삼겹살과 소주를 사 들고 온 걸 보니 일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후배와 여친은 흙집 앞에서 사진을 이리저리 찍더니 흙집 안에서 술판을 벌일 준비를 했다. 그동안 남편은 지붕 위에서 계속 피죽을 놓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와 달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미친 듯이 피죽을 연기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셋이서 흙집 안에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시고 있어도 남편은 지붕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남편의 저 열정은 관객이 있어야만 발휘된다는 점에서, 남편은 진짜 진정한 연기자가 맞다. 후배가 남편에게 내려오라고 고함을 지르려는 걸 막았다. 피죽을 열심히 연기하는 남편의 인내심은 곧 바닥날 것이기 때문이다.
▲ 피죽 깔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모습 |
ⓒ 노일영 |
남편은 지붕에서 내려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대야! 너는 정치인이냐? 일을 도와준다고 해 놓고 와서는 기념사진 몇 장 찍고, 그걸 SNS에 뿌리면서 #오늘 흙집 만들기 #작업 참여 #개빡심 #흙집과 삼겹살! 그리곤 바로 술판을 벌이냐? 이 새끼, 너 진짜 정치하면 딱 맞겠다. 너는 정치인 체질로 타고난 놈이다, 이놈아!"
남편은 자기가 지붕에서 열심히 연기하고 있는데, 아무도 술자리에 불러 주지 않아서 삐친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이 쏜 화살은 후배인 영대에게 날아갔다. 후배 영대가 입을 열었다.
"형, 내가 형을 한옥학교 때부터 지켜봤잖아. 그래서 형 손이 구제불능이라는 걸 잘 아는데, 이번 흙집 이거 멋지다. 형은 대기만성형인 모양이야."
남편은 갑자기 좋아진 기분을 감추려고 했지만, 얼굴에서 번지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이럴 때 보면 남편은 진정한 연기자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누나! 형이 이틀 우리 집에 와 있으면서, 누나랑 결혼한 게 자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술만 마시면 자꾸 말하더라고."
내가 영대에게 한마디 했다.
"어쩌면 너는 입술에 아밀라아제도 안 바르고 그렇게 거짓말도 잘하니! 영대야, 너 진짜 이번에 국회 의원 출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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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타임즈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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