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잊혔던 직물 '소창'…친환경 바람 타고 100년 전 인기 되찾을까

성선해 2023. 5. 2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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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삼 껍질에서 뽑아낸 삼실로 짠 천인 삼베로 만든 수세미, 옥수수 전분이 원료인 싱크대 거름망, 해조류 부산물로 만든 식품용기 등 재사용이 가능한 천연소재로 된 일상용품을 찾는 사례가 많아졌어요. 목화솜으로 만든 면실로 짠 천인 소창 역시 친환경 소재 열풍이 불면서 7~8년 전부터 다시 주목받았죠. 사실 소창은 100년 넘게 우리 생활에 녹아들어 있었던 친숙한 직물이랍니다.

박규리(왼쪽)·이정한 학생기자가 소창으로 만든 손수건을 들어 보였다. 화학섬유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어가던 소창은 2017년 불거진 기저귀·생리대 파동과 제로웨이스트 운동의 영향으로 다시 주목받게 됐다.

박규리·이정한 학생기자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소창체험관을 찾아 소창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알아보기로 했어요. 조숙자 문화관광해설사(이하 조 해설사)를 만난 박규리 학생기자가 "소창이란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소창이란 목화솜으로 면실을 만들고, 이 실을 가로 방향으로 놓인 실인 씨실(위사)과 세로 방향으로 놓인 실인 날실(경사)을 한 올씩 교차시키는 방식인 평직으로 짠 옷감을 말해요."

국립민속박물관이 2018년 발간한 보고서 『강화의 직물, 소창』에 따르면 소창이란 명칭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902년(고종 40년) 12월 20일자, 『고종실록(高宗實錄)』 43권과 일제강점기 전후 발행된 신문에서 언급되는 고구라(古舊羅)라는 직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라는 일본말 고쿠라오리(小倉織)의 줄임말로, 현재의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시에 소재한 소창(小倉)성 지역을 대표하는 직물이었죠.

조숙자 문화관광해설사(오른쪽)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1910년대부터 국내에서 대량생산을 시작한 근현대 직물 소창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의 고쿠라오리는 소창과 같은 방식인 평직으로 짠 직물임에도 날실의 밀도가 촘촘해 천 표면에서 씨실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직조법과 면사를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은 소창과 같지만, 씨실과 날실이 1대 1로 고르게 교차한 모양이 천의 표면에서 잘 드러나는 우리나라 소창과는 외관상 차이가 있죠. 또 일본에서는 이미 산업적으로는 소멸한 직물이기도 해요. 단지 고쿠라오리가 우리나라에서 소창이란 직물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추론은 가능합니다.

목화솜이 재료인 천, 즉 면직물에는 소창보다 더 유명한 게 있습니다.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의복·침구·기타 생활용품 재료로 가장 많이 이용된 우리나라 토속직물 무명이죠. 무명과 소창은 제작 방식이 달라요. 무명은 보통 사람이 손발을 움직여 베를 짜는 재래식 베틀을 이용해 면실로 짠 피륙을 말해요. 피륙을 짤 때는 세로 방향으로 놓인 실인 날실과 가로 방향으로 놓인 실인 씨실을 교차하면서 면을 만들죠. 무명·모시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직한 천은 한 폭 안에 들어가는 날실의 수로 천의 밀도와 품질을 구분하는데, 그 단위를 새(升·승)이라고 합니다. 날실 여든 올을 한 새(一升·한 승)라고 하며, 샛수(승수)가 많을수록 천이 촘촘해지죠. 무명은 보통 보름새·열두새·아홉새·일곱새 정도로 제직됐어요.

기계식 직기(역직기)로 짠 근현대 직물인 소창은 면실의 굵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수를 사용한다. 목화솜 1g으로 면사를 20m 만들면 20수, 40m 만들면 40수가 되는 방식이다.

반면 근현대 직물인 소창은 증기·전력 등 외부에서 공급받은 에너지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베틀인 역직기로 짠 피륙이에요. 그래서 소창이 국내에서 대량 생산된 시기도 개항 이후 동력을 이용한 역직기가 국내에 대량 보급된 1910년대이죠. 1785년 영국의 E 카트라이트가 발명한 역직기로부터 한참 발전한 역직기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온 겁니다.

전시실에서 목화솜을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전시실 옆 직조시연관에서 역직기가 소창을 짜는 모습도 직접 봤어요. 씨실·날실이 감겨 있는 실타래, 씨실을 자동으로 계속 보급하는 장치, 생산자가 원하는 길이만큼 날실을 절단하는 장치가 눈에 들어왔죠. 이렇게 씨실 위에 날실을 얹는 과정을 반복하면 면사로 짠 평면이 생기고, 이것을 원하는 폭과 길이만큼 짜면 우리가 아는 피륙이 되는 것이죠.

전통 방식으로 천을 짜던 베틀에 해당하는 수동 직조기(맨 뒤)와 역직기라고도 불리는 기계식 직조기(가운데).


"베틀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이 모든 과정을 사람이 직접 해야 했어요. 하지만 역직기는 동력을 사용해 자동으로 천을 짜기 때문에 베틀보다 훨씬 빠르게 직조할 수 있고, 대량생산에도 유리하죠." 1910년대 국내에 도입된 역직기 1대의 생산성은 수직기(베틀) 5대와 비슷한 정도였다고 해요.

소창은 기계로 짠 직물이기에 면실의 굵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새가 아닌 수를 사용해요. "목화솜 1g으로 실(면사)을 20m를 만들면 20수, 40m를 만들면 40수가 돼요. 그러면 20수짜리 면에 사용된 실보다 40수짜리 면에 사용된 실이 더 가늘고 부드럽겠죠. 소창은 보통 23수로 제직합니다." 23수로 제직하는 소창은 표면 질감이 비교적 부드러워 피부에 직접 닿는 기저귀·생리대·배냇저고리 등을 주로 만들죠.

강화 직물산업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직물공장 중 하나인 평화직물이 생산했던 여러 직물과 다양한 색으로 염색한 소창.

역직기의 국내 도입 이후 소창은 강화를 비롯해 의정부·경기도 광주·이천·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며, 근현대 우리 민족의 일상에 중요한 옷감으로 자리 잡습니다. '살아서 소창 한 필, 죽어서 소창 한 필'이라는 말도 나왔죠. 아기 기저귀부터 망자의 관 끈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무명이 쓰이던 다양한 영역에 소창이 들어갔습니다.

정한 학생기자가 "강화가 소창으로 유명한 고장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말했어요. "강화는 한강·임진강·예성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입구에 위치한 지역이며, 신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인 인천과도 가까워 역직기가 빠르게 도입됐죠. 특히 1910년대 지역유지였던 김동식씨가 직물산업에 관심을 갖고 역직기 보급에 힘쓰면서 강화에서 소창을 포함해 여러 종류 직물의 대량 생산이 이뤄졌어요."

또한 1935년 조양방직 주식회사를 시작으로 심도직물·십자당·이화직물 등 직물 공장이 차례대로 들어서고, 바다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적극 활용해 전 조선을 넘어 간도까지 직물을 판매하면서 성황을 이뤘죠. 1980년대에는 소창 공장이 80여 군데에 이를 정도였어요.

하지만 1960~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석유·석탄 등을 원료로 한 합성섬유의 대량생산에 밀려 국내 천연섬유 산업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쇠퇴기를 맞게 됩니다. 1980년대까지 직물산업이 번성한 지역 중 하나였던 강화와 이곳에서 생산하던 소창 역시 이 흐름을 피해 갈 수 없었죠.

소창은 목화솜에서 자아낸 실인 면사로 짠 직물로, 씨실과 날실을 한 올씩 교차하는 방식인 평직으로 직조하는 23수짜리 면직물이다. 사진은 목화솜에서 실을 뽑는 도구인 물레.

우리 일상과 100여 년을 함께한 직물인 소창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7년 불거진 생리대·기저귀 파동입니다. 여성환경연대가 시판 일회용 생리대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인 11종 모두에서 발암물질인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된 것인데요. 특정 제품 사용자 5300여 명이 부작용을 호소하며 제조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죠. 같은 해에는 다국적 기업에서 판매하는 기저귀에서 살충제 성분인 다이옥신이 검출돼 논란이 일기도 했어요.

이후 일회용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려는 제로웨이스트 운동까지 더해져,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한 천연 소재로 만든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주목받았어요. 목화솜이 원료인 소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23년 현재, 온라인에서는 소창으로 만든 여러 생활용품을 쉽게 찾을 수 있죠.

소창으로 만든 보자기로 포장한 모습. 소창은 기저귀·생리대·배냇저고리 등 피부와 직접 닿는 생필품으로 많이 만들며, 커튼·보자기 다양한 소품으로도 제작된다.

사실 무명 등 천연소재 천으로 만든 기저귀·생리대는 우리 조상들이 옛날부터 써왔던 생활용품입니다. 여성이 월경할 때 쓰던 헝겊으로 만든 생리대는 개짐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죠. 나일론·폴리에스터 등 합성 섬유가 우리 생활에 자리 잡은 세월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뜻이기도 해요.

조 해설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전시실에 있던 소창 조각을 보여줬어요. 표백 작업을 거치지 않은 소창은 다소 누런 빛을 띠는데 이런 상태를 생지(生地)라고 하죠. 소창은 세탁하면 할수록 보드라워지는데, 수분 흡수율도 뛰어나 속옷·손수건·이불보·거즈 등 주로 피부와 맞닿는 직물에 많이 활용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생지 상태의 소창에 다양한 문양을 도장으로 찍어 손수건을 만들었다.


전시실 맞은편에는 소창으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을 다루는 소창기념품전시관이 있어요. 커튼·베게 커버·배냇저고리 등이 눈에 들어왔죠. 그 옆에 있는 소창체험관에서는 소창으로 직접 생활용품을 만들어 볼 수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도 여러 문양을 찍어 직접 소창 손수건을 만들어 봤습니다. "소창은 기계·의약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많이 써요. 기름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기계에 묻은 기름을 제거할 때 유용하거든요."

고려 말기의 문신인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사신으로 갔다가 국내에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 목화솜. 목화솜에서 실을 자아내면 소창을 비롯해 여러 면직물의 재료인 면사가 된다.

화학 성분의 부작용이 계속 불거지고, 일회용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려는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널리 퍼지며 가격 경쟁력에 밀려 잊혀져 가던 여러 생활용품이 '친환경' '유기농'이란 키워드로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근현대 우리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쓰였지만 소멸 위기에 놓인 직물, 소창은 그중 하나죠. 유해한 화학성분이 들어있지 않아 피부가 약한 이들에게 유용한 천연 직물로 소개되고 있으니까요. 소중 독자 여러분이 사용하고 있는 생활용품 중에도 이런 극적인 과정을 거쳐 우리 곁에 돌아온 게 있을 겁니다.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한 번 알아보세요.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우리나라 근·현대에 많이 사용되던 천연 직물, 소창에 대해 알아보는 유익한 취재를 했습니다. 소창체험관은 한옥과 염색공장이었던 평화직물터를 2016년에 리모델링한 건물이에요. 전시관에선 조숙자 문화해설사님께서 소창은 어떤 직물인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주로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등의 자세한 설명과 묘사를 해 주셨죠.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역직기가 들어온 이후부터의 변화였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수동으로 하던 것들이 기계화로 변하는 과정이 신기했죠. 소창은 아토피나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천연 면직물이에요. 소중 친구들도 기회가 된다면 소창을 한 번 사용해 보세요.

박규리(서울 위례별초 5) 학생기자

이번 취재를 통해 소창에 대해 잘 알게 됐어요. 기계로 짠 직물인 소창은 '새'로 가늠하던 무명과는 달리 '수'라는 단위로 실의 두께를 조절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또 강화에서 소창 산업이 발달한 이유도 알게 됐어요. 지금이야 교통의 발달로 강화에서 소창을 주문한다면 우리나라 남쪽 끝인 부산과 제주도까지 금방 오겠지만 예전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테니까요. 저도 소창으로 만든 옷을 입어보고 싶어요.

이정한(서울 양진초 6) 학생기자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이상윤(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박규리(서울 위례별초 5)·이정한(서울 양진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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