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반란과 혁신의 DNA로 새로운 ‘게임체인저’ 틀을 짜라

입력 2023. 5. 2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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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도 그들이 구축해놓은 세상
고정관념은 경직과 후퇴 불러와
'게임 룰' 못만들면 레드오션 추락

남다른 혁신기술·전략으로 무장
한 번도 안 가본 새 시장 개척 위해
AI 싱킹의 새로운 상상력 펼쳐야

오늘날 영화산업 최강자로 등장한 넷플릭스는 인공지능(AI) 추천 기술을 도입한 회사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는 원래 우편으로 DVD를 대여하던 회사였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예전에 DVD를 빌린 뒤 연체료를 냈던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연체료 없는 DVD 대여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DVD 대여 사업으로 1등을 하던 경쟁업체 블록버스터는 연체료에서 많은 수익을 올렸다. 가령 DVD를 3일간 빌려보는데 4000원이라면 이후 반납 기일을 넘겨 내야 하는 연체료는 날마다 세금처럼 붙었다. 열흘간 연체하면 1만원의 연체료를 내야 했다. 대여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연체료로 올리는 기업은 필시 고객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1998년부터 DVD 대여업을 하던 넷플릭스는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고객 지향의 새로운 기술기업 면모를 선보였다. 넷플릭스는 어떻게 혁신했을까? 먼저 고객의 불편 사항 해결에 고민하면서 혁신의 길을 열었다. 기술적 가능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연체료 사업 모델을 어떻게 개선할까 고민했다. 결국 영화를 우편으로 부치는 방식이 아닌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파격을 만들어냈다. 구독형 사업 모델을 도입했고, 콘텐츠 소비 방법을 완전히 바꿔놓아 새로운 고객 경험을 누리게 했다. 여기에 정교한 AI 추천 알고리즘이 작동하면서 초개인화, 개인 맞춤형 AI 회사의 시스템도 갖췄다.

넷플릭스가 먼저 기술이 있어 AI 추천 알고리즘을 만든 것이 아니다. 고객을 향한 변화와 혁신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100만 달러 상금을 걸어 수백회 공모전을 벌였다. 도전자들을 흥분시킨 것은 넷플릭스의 남다른 데이터였다. 넷플릭스에서 보유한 사용자들의 평점 자료와 영화에 대한 메타데이터 등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데이터를 제공했다. 외부의 집단지성을 활용해 내부 혁신을 일으키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구사한 끝에 마침내 더 고객을 만족시키는 맞춤형 최적화 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제 2억명의 고객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해 수십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디즈니의 시가총액을 추월했다. 반면 고객 불만에도 아랑곳없이 연체료 수입에만 의존하던 블록버스터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고정관념은 경직을 불러오고 후퇴를 부를 수밖에 없다.

최근 오픈AI와 구글이 한국어 AI 챗봇을 내놓으면서 한국어 거대 언어모델(LLM) 역량 강화에 집중하던 국내 테크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간 한국어 LLM을 준비한 것은 챗GPT보다 수천 배 한국어를 더 학습시킨 한국형 챗지피티(KoGPT)와 하이퍼클로바 엑스(X) 등이었다.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가상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생각을 반영하고 가장 매끄러운 한국어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페이팔 마피아'


하지만 이들의 한국어 고도화 노력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다른 게임, 즉 게임체인저 전략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챗GPT의 한국어판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을 로컬에서 보완하는 기능이다. 오늘날 ‘페이팔 마피아’ 대부 피터 틸의 철학으로 보자면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지역 실정에 맞게 확산시키는 로컬라이제이션에 해당한다.

챗GPT는 그들이 구축한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들의 시장에 통합될 것이다. 그들의 게임이다. 우리가 똑같은 모델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 국내 플랫폼을 지배해온 토종 플랫폼은 데이터 주권을 지켰을까?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결국 검색시장에서 구글에 자리를 내주거나 추격당하고 말았다. 최근 미국 마케팅조사업체 샘러쉬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에서 구글 접속자 수는 6억6788만명으로 나타났으며, 같은 기간 한국에서 네이버에 접속한 숫자인 4억2137만명을 추월했다. 구글은 작년보다 43.94% 증가했고, 네이버는 26% 하락했다. 이는 비단 자본의 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의 글로벌 노마드 근성도 한몫하리라고 본다. 이미 바깥의 넓은 세상을 수없이 체험한 한국인들은 세계가 돌아가는 데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도 가득하다. 결국 이들이 결정한다.

출처:위키피디아, 미디어스


아주 멋진 한국어 언어모델이 등장하면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한류 인구에 편리함을 제공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플랫폼을 결정하는 요인은 기획자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데 호기심 가득한 노마드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고객이 플랫폼을 결정한다. 게임체인저가 되지 못하면 레드오션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남다른 혁신 기술과 전략으로 남들이 한 번도 안 가본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해외 기업이 초거대 모델에 집중할 때 가령 우리는 초소형 모델에 주목하는 등 그들에게 없는 새로운 모델로 혁신을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경쟁자와 경쟁하지 않을 상상력을 먼저 펼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해보면 어떨까?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인터넷을 생각했던 것처럼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AI 싱킹(Thinking)의 새로운 상상력을 펼치도록 지원하면 어떨까?

기존 게임 속에서 창출된 시장에서 원래의 제품·서비스를 카피해 확대 적용하는 것은 똑같은 것을 조금 더 잘하는 방식이다. 페이팔 그룹 대부 피터 틸은 이를 ‘수평적 확장’(1→n 전략)이라고 불렀고, 없는 것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면 게임체인저가 되는 ‘제로 투 원’(0→1 전략)으로 보았다. 새로운 기술은 저절로 나타나지 않듯이 더 나은 미래도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킨 주체는 사명감을 가진 소규모 집단이라고 역설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오늘날 한국 플랫폼의 중추가 된 테크기업은 사명감을 갖고 우리나라의 혁신을 주도해온 존재들이다. 반란과 혁신의 DNA를 가지고 이제 스타트업 초심으로 돌아가 전혀 새로운 게임의 룰(기술·서비스·제품)을 만들면 어떨까. AI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터 틸은 한국인 김위찬의 블루오션 철학을 연상케 하는 말을 했다. “경쟁에 집착하지 말고 창조에 집중하라. 경쟁은 파괴를 가져오고 무대를 만든 경쟁자들을 키워줄 따름이다.”

여현덕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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