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칼럼] 누리호와 G8: 국가의 실력, 위신, 그리고 위험

2023. 5. 2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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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1. 누리호가 푸른 하늘로 시원하게 솟구치면서 눌려 있던 우리의 마음도 함께 날아올랐다. 세계 7번째의 독자 발사체 국가라는 긍지는 그동안 북한 핵에 주눅 들어있던 우리 가슴을 활짝 펴주는 사건이었다.

누리호의 쾌거를 지켜보며 필자는 ①국가의 실력 ②대외적 위신 ③그 안에 도사린 위험이라는 삼차 방정식을 다시 생각한다. 실력, 위신, 위험의 트릴레마는 얼마 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 회의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미·중 기술경쟁에서 한국 반도체 실력과의 협력이 절실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을 환한 미소로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군수 물자가 부족한 유럽의 주요국들이 방위산업 강국, 한국의 대통령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우리 실력의 징표이다.

문제는 G7 강국들이 우리에게 손을 벌리기는 하지만 정작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리스크는 같이 떠안으면서 발언권은 약한, 다소 위험한 상태.

「 누리호가 보여준 국가의 실력
늘어난 실력만큼 위신에 목말라
G8 가입에는 위험도 적지 않아
내향적 자아도취의 정치가 문제

#2. 높아진 실력과 대외적 위신으로 고무된 분위기에서, 필자는 그 안에 도사린 위험을 생각해 보려 한다. 30년 전의 역사를 잠깐 돌아보자. 민주화를 막 이룬 대한민국은 1993년 글로벌 주요국 반열에 오르고자 열망하였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 목표를 제시한 지 3년 만에 우리는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이뤄진 급격한 시장 개방과 금융감독 체계의 부재라는 실력 부족은 1997년 국가 부도 위기와 IMF 관리 체제라는 혹독한 결과로 이어졌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시원찮은 체력으로 국제적 위신을 성급하게 추구하다가 추락해 본 경험이 있다.

#3. 이제 늘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G8 국가라는 궁극의 위신을 열망하고 있지만, 필자는 여전히 우리가 높이 날아오르기에는 위험한 허약 체질이라는 염려를 갖고 있다. 허약함의 핵심은 ①자유 정신의 빈곤과 ②내향적 자아도취이다. 먼저 30년 전 주요국 진입의 트릴레마를 돌아보고 G8 진입 희망국으로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자.

#4. 1993년 무언가 원대한 대통령 프로젝트를 갈구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지구촌 주요국가들의 모임인 OECD 가입을 목표로 내세웠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테슬라, 애플의 주가를 확인하기 바쁜 요즘의 2030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이겠지만, 30년 전 우리는 OECD 가입의 조건으로 비로소 자본시장, 외환시장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다.

#5. 김혜수 배우 주연의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보여주듯이, 시장 개방화 몇 년 만에 우리 경제는 단기 대외 부채라는 유혹에 급격히 빠져든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이자는 싸지만 리스크는 큰 단기 외채를 급격히 늘려갔다. 하지만 이를 제어하는 금융감독 체계는 없었다. 영화 속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배우 김혜수)은 홀로 동분서주하지만, 행정부와 여야 정당들이 금융개혁법을 통과시킬 능력은 전혀 없었다. 결과는 500억 달러의 긴급구제 금융을 받아서 겨우 국가 부도를 면하는 것이었다.

#6. G8 회원국은 글로벌 (무)질서를 좌우하는 수많은 결정에 참여하는 권력과 위신을 함께 누리게 된다. 우크라이나 지원문제, 전후 복구 프로젝트에서부터 대만 위기 대응, 미·중 기술 전쟁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인 결정의 책임 있는 주연이 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배타적이고 치열한 클럽(G8) 안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강대국들은 실리를 따져 우리의 반도체 실력, 배터리 실력, 방산 실력을 인정하고 손을 내밀지만,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두려운 존재이면서도 존경받는 파트너인가?

#7. 자유주의 강대국들은 우리의 허약함 두 가지를 주시하고 있다. 첫째, 희미한 자유의 정신. 입으로는 자유의 가치와 연대를 외치지만 과연 한국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회인가? 코로나 3년, 우리는 대표적으로 자유를 저당 잡히고 보건안보를 추구한 사회였다. 코로나보다 더 엄혹한, 자유를 지키기 위한 큰 전쟁이 벌어진다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두 번째 허약함은 내향적이면서 자아도취적인 정치세력의 문제이다. 한편에 대외지향적이고 자유 가치 연대에 공감하는 바른 한국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 내향적 정치세력이 있다. 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 그저 자신의 좁은 관심사(남북한, 평화, 민족)를 지루하게 늘어놓을 뿐이다. 마치 귀는 어둡고 눈은 흐려진 사람처럼.

늘어난 물리적 실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더 높은 위신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하지만 물리적 실력만으로 최선진국 지위를 얻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 태도를 가다듬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물리적 실력보다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최선진국을 향한 실력, 위신, 위험의 트릴레마는 이제 시작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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