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시선] 윤 대통령의 자유, freedom or liberty?

2023. 5. 2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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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올해 최고(44.7%)를 기록했다. (28일 CBS노컷뉴스) ‘포괄적 전략 동맹’을 이끌어낸 워싱턴 선언, 한·일 정상의 맞방문을 통한 대일외교 정상화, G7(주요 7개국) 회의 참석 후 중추국가 발돋움 등 41차례나 정상회담을 개최한 외교적 성과의 영향이 컸다. 이는 평소 자유의 가치를 중시한 그의 철학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에서 자유의 용법은 크게 네 갈래다. 첫 번째는 서방을 중심으로 한 자유세계(free world)를 뜻할 때 쓴다. 이는 사회주의·권위주의와 구분되는 국가체제를 의미한다. 윤 대통령의 외교 성과는 자유세계의 질서에 부응하는 가치외교를 펼친 덕분이 크다. 반대로 체제와 어긋난 행보를 보였던 문재인 정부는 자유 진영의 국가들과 불협화음을 빚기도 했다.

「 시장·경쟁에 입각한 법치주의
합의와 설득, 대화와 타협 부족
사회 전반의 다양성 인정해야

두 번째는 경제적 자유(economic freedom)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의 대변자다. 능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과 선의의 경쟁을 중시하는 가치관, 국가의 개입을 줄여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정책 등은 모두 경제적 자유에서 비롯된다.

세 번째는 사상·표현의 자유(free-dom of thought·speech) 등 개별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자유다. 인권, 여성, 성적 소수자 이슈 등 가치의 다양성을 중시한다. 한국 정치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었지만, 그를 계승한 많은 정치인이 자유주의 정신에서 멀어졌다. 핵심인 다양성과 사상·표현의 자유를 지난 정부 5년간 사실상 방기해 왔기 때문이다.

이상의 세 가지 자유는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지만, 가장 핵심은 정치적 자유다.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On Liberty)』에서 썼듯,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가 아닌 ‘시민 자유(civil liberties)’를 뜻한다. 국가가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격과 한계를 규정한 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본질이다.

처음 자유주의자들은 대중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걸 꺼렸다. 1852년 국민투표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나 1934년 유권자 88.1%의 지지로 총통이 된 히틀러는 민주 절차에 따라 권력을 획득했지만, 포퓰리즘 독재의 원형이 됐다. 이렇게 중우정치의 위험성이 큰 민주주의가 안정적 체제로 자리 잡은 것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결합해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로 새롭게 태어나면서였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사회계약으로 양도받은 국가 권력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다수의 횡포에 맞서 소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고, 약자의 생각이 공론장에서 보호될 수 있게 했다. 제도적으로는 입법·행정·사법 등 3권을 분립해 서로를 견제하고, 독립된 검찰과 감사원이 정부 권력의 폭주를 제한토록 했다.

이는 곧 통치자가 오직 국민이 합의한 원칙인 법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하는 법치주의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의 완성은 경제·사회·정치적 자유주의가 밑바탕이 된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핵심은 다수결로 인민의 ‘총의(總意)’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를 바탕으로 다원적 통치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검찰총장 시절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강조했던 윤 대통령의 자유(liberty)도 다르지 않다. 다만 여러 연설문에서 국가체제로서의 자유(free) 진영과 시장에서의 자유(freedom)만 부각되고, 그 뜻이 혼용돼 있어 불분명한 지점도 있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궁극적인 이상은 경제·사회·정치적 자유주의가 골고루 실현된 법치국가다.

시장의 자율과 공정한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경제적 자유가 밑바탕을 이루되, 사회·정치적 자유의 핵심인 합의와 설득, 대화와 타협, 다양성 존중 같은 요소가 국정 전반에 녹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취임 후 한 번도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은 불통의 모습, 검사 출신이 요직을 두루 차지한 검찰공화국 논란, 최근의 과도한 집회·시위의 자유 제한 이슈 등은 법치국가로 가는 길을 요원하게 한다.

물론 현재의 갈등과 분열의 책임은 ‘다수의 횡포’를 휘둘러 온 야당의 탓이 크다. 그러나 이들을 설득하고 합리적인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도 국민의 최고 대표인 윤석열 대통령의 몫이다. 법치국가의 성공은 경제·사회·정치적 자유의 고른 성숙에 달려 있다. 외교무대에서 빛을 발했던 ‘윤석열의 자유’가 ‘freedom’만이 아닌 ‘liberty’로 국내 정치에서도 반짝일 수 있길 기대한다.

윤석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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