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거리 위에 떠 있는 상파울루 미술관

입력 2023. 5. 29. 00:41 수정 2023. 5. 2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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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20세기 중반 유럽은 2차대전의 참화에 휩싸였지만 남미 대륙의 몇 나라는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을 맞이했다. 브라질의 언론기업가 A 샤토브리앙은 이탈리아의 미술상 피에트로 바르디와 손잡고 세계적인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가격이 폭락한 유럽의 명작 수천 점을 수집하고 1968년 획기적인 건물을 완공해 지금의 상파울루 미술관이 탄생했다.

미술관이 위치한 파울리스타 대로는 상파울루의 중심 가로로 수많은 쇼핑과 문화시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미술관이 들어선 땅은 전망 좋은 언덕이었다. 3개 층 건물을 세우고 대로와 만나는 옥상을 광장으로 개방했다. 자연 언덕을 인공 광장으로 대체하면서 기존의 전망대 역할에 더해 주말 벼룩시장이나 축제장 등 문화적 중심으로 활용했다.

공간과 공감

옥상 광장 위로 74m 길이의 거대한 공중보 한 쌍을 세우고 건물 2개 층을 매달았다. 하부 3개 층은 예술 교육시설, 지상층은 시민 광장, 상부 2개 층은 전시장으로 구성했다. 전시장 내부는 기둥이나 벽 없이 널찍한 ‘자유 공간’을 조성해 어떠한 전시라도 가능한 미술관이 되었다. 전시벽을 설치하지 않고 투명한 개별 전시대에 작품을 부착해 작품 자체를 공간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개별 전시대는 화가의 이젤 같아 창조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캔버스 뒷면의 해설문도 볼 수 있는 독특한 미술관이 되었다.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는 공동설립자 피에트로 바르디의 부인이다.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여성 건축가로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브라질로 귀화해 문화 활동과 교육에 헌신했다. 그는 ‘가난한 건축’의 주창자로도 유명하다. 장식적 유럽풍이 대세를 이룬 당시 남미 건축계를 향해 문화적 속물주의를 배격하고 재료와 구조 그 자체의 건축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브라질 현대건축의 정신적 전통이 되었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유를 추구했다”는 그의 회상대로 상파울루 미술관은 도시에 혁명적인 공공공간을, 예술계에 자유로운 전시공간을 선물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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