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의 흔적을 좇아, 옛 소라의 성

이경진 2023. 5.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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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땅과 돌, 바람과 숲이 빚은 건축 그리고 디자인을 찾아서.
「 김중업의 흔적을 좇아, 옛 소라의 성 」
대담한 곡선과 휘어진 면이 독특한 인상을 풍기는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의 작은 건축물 옛 소라의 성. 건축가 김중업이 제주에 설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로티 기둥부터 옥상 정원까지,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근대건축 5원칙이 적용된 건축물이 1964년 제주에 준공됐다. 서울의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함께 김중업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옛 제주대학교 본관. 1965년 국전에도 출품된 작품은 매끈하고 둥그런 선, 유선형의 곡선이 품은 조형성이 대단하다.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공부한 시기가 1952년부터 1955년까지니, 그의 첫 프랑스 유학시절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시기의 건축일 것이다. 당시 김중업은 제주를 향한 에너지로 들끓었다. ‘이상에 불타는 젊은 학도들을 위한 전당을 꾸려보자’며 시작한 제주대학교 본관 작업은 다소 앞서 나간 디자인으로 여겨져 설립 가능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건물 부식 등으로 대한건축학회 건물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1995년에 철거됐다. 서귀포에는 철거 예정이던 운명에서 보존돼야 할 근대건축물로 지정되며 회생한, 많은 이들이 김중업의 흔적이라 추정하는 건물이 한 채 더 있다. 바로 몇 해 전 서귀포시청이 매입한 옛 소라의 성이다. 정방폭포 일대의 급경사 절벽과 완만한 해안선, 제주의 해안 풍경을 모두 안은 건물은 소라처럼 휘돌아 감기듯 아름다운 곡선과 뾰족하게 뻗은 직선이 어우러져 사면이 모두 다른 얼굴이다.

둥근 기둥부의 벽돌과 대비되는 검은색 제주석 마감재는 빛을 받으면 미세하게 반짝인다. 일대의 해안 절벽과 어우러져 아찔한 절벽의 바위 틈에 오래 살아남은 생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건축 당시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누가 어떤 경위로 지었는지, 설계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건물이지만 곡면이 대부분인 대담한 디자인과 필로티 구조를 비롯해 김중업의 건축임을 증명하는 요소로 빼곡하다. 소라의 성은 이 건물에서 운영됐던 옛 식당의 이름이다. 지금은 시민들을 위한 북 카페와 올레길 여행자를 위한 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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