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아인슈타인도 울고 갈 꿀벌 실종 논란
찰스 다윈을 비롯한 여러 위인이 꿀벌을 염려했다. 그 중엔 아인슈타인도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멸종한다.” 지난 20일 유엔이 정한 ‘세계 꿀벌의 날'을 맞아 또 한 번 회자한 이 말이 바로 아인슈타인 이름을 달고 곳곳에 박제돼 있다.
핵폭탄의 모티브를 제공한 천재 물리학자가 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썼다니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 요즘 양봉 농가마다 꿀벌이 실종됐다고 아우성치면서 아인슈타인 이름이 자주 들린다. 한국양봉협회는 전국 1만8826곳 농가의 122만4000개 벌통에서 꿀벌이 없어졌다고 밝혔다. 사라진 벌이 200억 마리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겨울까지 꿀벌이 가득했던 벌통 500개 중 440개가 2월 이후 텅 비었다”(농민 이인구씨)는 호소가 이어진다.
갖가지 곤충을 기르는 우리나라에서 꿀벌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매년 500억 마리가 태어난다. 남한 인구의 1000배다. 전 국민에게 1000마리씩 달라붙을 수 있는 개체 수다.
꿀벌이 사라지면 꿀 못 먹는 것도 아쉽지만, 벌이 돌아다니며 식물의 수분을 못 하는 데 따른 타격이 훨씬 심각하다. 경북 성주에서 참외를 기르는 김석주(55)씨가 “꿀통만 450만원 어치 산” 이유도 꿀벌이 참외 꽃가루를 날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꿀벌 보호에 안간힘을 쓴다. 호주에선 지난여름 뉴캐슬 항 인근 벌통을 태워 수천만 마리를 희생시켰다. 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에선 벌에게 줄 백신까지 개발하는 등 어디서나 벌은 귀한 존재로 대접받는다.
몇 년 전 양봉을 취재한 일이 있다. 안면부에 모기장을 댄 방호복을 입었는데도 벌통 가까이 가자 앵앵거리며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녀석들 때문에 소름 끼쳤다. 어렸을 적 신발로 벌을 잡으려다가 역습을 당해 된통 쏘인 기억이 살아났다. 쐬면 무척 아픈 벌을 도심 빌딩 옥상에서까지 키우자고 독려하니 연일 치솟는 벌의 가치를 실감한다.
우리나라에서 꿀벌 위기 이슈가 떠오른 지 10년이 넘었다. 당시 미국에서 밀입국한 등검은말벌이 꿀벌을 사냥하는 현장이 목격됐다. 꽃을 다니며 꿀을 모으는 꿀벌과 달리 이들은 벌을 대량으로 사냥해 새끼에게 먹인다. 양봉 농가에선 음식으로 벌을 유인하는 틀을 설치해 말벌을 잡고 있지만, 여전히 포식성 말벌은 꿀벌 학살의 장본인이다.
양봉 농가 피해 호소에 실태를 조사한 농촌진흥청이 지목한 주범은 ‘응애’다. 벌의 번데기를 노리는 기생충인 응애는 인근 벌통으로 퍼져나가면서 피해를 키운다. 호주에서 벌을 불태우면서 함께 소각하려 한 기생충 역시 ‘바로아 응애’다.
응애를 처단하려면 살충제를 뿌려야 한다. 이게 오히려 벌을 더 희생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진청은 “일부 농가에서 응애 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여러 약제를 최대 3배 이상 과도하게 사용”한 것이 발육에 악영향을 줬다고 발표했다. 각종 방제에 쓰이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약제가 벌의 실종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있다. 벌을 죽이는 응애를 잡기 위해 농약을 뿌리는데 방제제가 다시 벌을 죽인다니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양봉인들은 “200억 마리 사라져”
정부 “벌통에 꿀벌 꽉 찼다” 반박
양봉 농가와 정부의 의견 대립도 답답하다. 양봉업자 피해가 보도되면 정부는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반박한다. 최근 꿀벌 실종으로 과일 수확량이 감소해 농산물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농식품부는 과일 생산과 가격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농가와 언론에서 텅 빈 벌통을 보여주면 정부는 꽉 찬 벌통을 내밀며 맞선다. 정부 반박을 듣다 보면 꿀벌 걱정이 기우로까지 느껴지는데, 웬걸 올해부터 8년 동안 48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꿀벌 집단폐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뒤늦게 대책용 예산 484억 투입
꿀벌 실종 얘기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아인슈타인까지 도마 위에 오른다. 한 정부 관계자는 “꿀벌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진짜인지 각종 자료를 찾아봤으나 해당 발언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해외 사이트를 찾아봐도 발언 시기와 정황이 명확하지 않다. 팩트체크 전문 사이트(Snopes·Quote Investigator 등)마다 진위를 추적했으나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1994년 유럽의 양봉업자 시위 현장에서 이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면 많은 석학과 언론이 벌을 위해 인용한 그의 발언은 허망해진다.
세금 484억원을 쓰고 나면 꿀벌 실종을 두고 난무하는 진단과 해법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뾰족한 결론도 못 내면서 세금만 꿀처럼 빨아들이는 건 아닌지 어지럽다.
글=강주안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다고 병가 내고 컬투쇼 왔어요" 논란된 여경 알고보니 | 중앙일보
- 51억원 전액 현금으로 샀다…메세나폴리스 주인은 임영웅 | 중앙일보
- 노키아 구조조정 지휘자 조언 “한화·대우조선, 이게 급하다” | 중앙일보
- "유산소 하세요" 이젠 아니다…고령자 노쇠 막는 3가지 전략 | 중앙일보
- "걸을수 있나"에 하이힐로 비웃다…70대 종갓집 며느리 반란 | 중앙일보
- "애들이 교사 신고"…'벽에도 귀가 있다' 스탈린 감시 판치는 러 | 중앙일보
- 손석구 "출구 없어, 절대 안돼요"…대학총장도 나선 이 캠페인 | 중앙일보
- 악어 우리에 떨어진 남성… 40마리에 물어뜯겨 죽었다 | 중앙일보
- 낙화도 못보고 폰까지 마비…"최악의 축제" 함안 아수라장 | 중앙일보
- 비행중 문 열린 트라우마…학생 5명 배 타고 제주 돌아간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