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는 그들 [신율의 정치 읽기]

2023. 5. 28. 2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이다 발언’ 사라져
쏟아진 의혹 수습 어려워 물귀신 화법 써
정치로 과학 압도하면 결국 국민이 피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본래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했던 정치인이다.

그가 사이다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출중한 정치 감각과 촌철살인의 능력을 겸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 대표 발언은 ‘사이다’처럼 보이지 않는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파리에서 귀국할 당시, “오늘 프랑스에서 귀국하는 송 전 대표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현아(전 국민의힘)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고 말하는가 하면, 5월 3일 “두 의원(윤관석·이상만 의원)이 탈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데 당에서 제안한 게 있냐”는 질문에는 “우리 태영호 의원 녹취 문제는 어떻게 돼가나. 명백한 범죄 행위로 보여지던데”라고 답했다. 이런 ‘동문서답’은 전형적인 물타기식 화법이다.

이 대표 화법에 대한 당내 비판이 일자, 이 대표는 한동안 이런 식의 화법 구사를 자제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물귀신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김남국 의원 코인 문제에 대해 이해 충돌 여부가 관심으로 떠오르자, 최고위 회의에서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 건에 대해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남국 의원 문제에 더해 조 의원의 이해 충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해당 의원들에 대한 이해 충돌 여부가 가려져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정 사안에 대해 언급할 때 상대 당의 다른 사안을 같이 끌고 들어가는 것은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이런 식의 발언을 하면 이 대표의 김남국 의원 코인 관련 문제에 대한 대국민 사과 취지와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 또한 이는 사이다처럼 정곡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안의 핵심을 흐리려 한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사이다 발언이 사라진 이유는 민주당을 둘러싼 다양한 의혹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일 테다. 사안이 심각하기에 수습은 해야겠는데 쉽지 않아 정치 감각과 촌철살인의 능력을 상실하고, 대신 동문서답 혹은 물귀신 작전식 화법을 쓴다는 분석이다. 이럴 때 도를 넘는 발언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재명 대표는 5월 15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안전성 문제와 관련해 “마치 함께 쓰는 우물에 독극물을 퍼 넣으면서 ‘이것은 안전하다’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상당한 불안감을 주는 사안이라 해도,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가 ‘독극물’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불안감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현장 시찰단이 출국했다. 이 시찰단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가 19명,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전문가 1명 등 총 21명으로 구성됐다. 시찰단 단장을 맡은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은 “분야별 최고 전문가이자 실무진으로 (시찰단을 구성한 만큼) 그 어디에도 경도되지 않고 과학적인 근거와 기준을 갖고 안전성을 계속 확인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5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그저 오염수 구경이나 하고 오는 시찰단이 어떻게 국민을 안심시키겠나”라며 “검사 장비를 가져갈 수도 없고, 오염수 시료 채취는 꿈도 못 꾸고, 일본 거부로 민간 전문가 단 한 명도 시찰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시료 채취와 관련, 이미 시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유국희 위원장은 “시료 채취 검증 프로그램에도 (우리나라가) 참여해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시료 3가지를 갖고 있고 우리가 최인접국이기 때문에 별도 검토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미 시료를 교차 분석하고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 주장처럼 ‘시료 채취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은 아닌 셈이다. 민간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는 것 또한 비판 요인이 될지 모르겠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국책 연구기관이지만, 여기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또한 이번에 시찰단 일원으로 일본으로 출국한 전문가들은 방사선과 원전 각 설비 부문별로 10~20년 이상 현장에서 안전 규제를 해온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현장 경험이 적은 대학 교수보다는 현장 문제점을 더욱 빨리 잡아낼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때문에 민간 전문가가 시찰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문제라 지적하기는 근거가 빈약하다.

사드 사태 당시에도 일부 민주당 의원은 성주에 방문해 가발을 쓰고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다”는 노래를 불렀고, 일부 사드 반대 단체는 “사드 전자파가 참외까지 오염시킨다”며 성주 참외를 ‘전자레인지 참외’라고 불렀다. 하지만 현재 성주 지역 참외 농가 중 연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농가는 성주 참외 농가의 44%에 달한다. 또한 사드 레이더 전자파 수치는 ㎡당 0.003845W로, 기준치인 ㎡당 10W의 260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 불거진 광우병 사태도 정치가 과학을 무너뜨린 또 다른 사례다.

이런 사례들이 있음에도, 일부 정치권은 아직도 정치로 과학을 압도하려는 것 같다. 이런 식의 접근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심리적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만일 오염수가 정수와 희석 과정 없이 그대로 바다에 방류된다면, 그리고 이를 우리 정부가 방관만 하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야권에서는 ‘유사 탄핵’ 주장까지 나온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이 쓰나미로 파괴돼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바다로 유출됐고 이 방사능 물질들이 해류를 타고 전 세계의 바다로 퍼졌을 텐데 현재 방사능 피해가 얼마나 나타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오염수를 알프스라는 방사능 물질 정화 설비를 거치게 한 후 삼중수소를 물로 희석시켜 방류하는 현재의 상황과 아무런 장치 없이 방사능 물질이 바다로 쏟아져 들어갔던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상황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이미 시료도 갖고 있고, 그 시료를 분석하고 있으며, 시찰단도 알프스를 비롯한 정수와 희석 설비를 체크하고 있으니, 이들의 시찰 결과와 시료 분석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일단 지켜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정부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과학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해류 흐름상 미국, 캐나다 등지에 방류된 오염수가 먼저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점과 알프스라는 정수 장치가 얼마나 많은 방사능 물질을 걸러낼 수 있으며, 삼중수소는 얼마나 희석을 해 바다에 방류하게 되는지 등에 대해 소상히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지금까지만 보면 정부는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는 듯하다. 정부의 이런 자세가 지속되면 정치가 과학을 누르는 현상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또 한 번 혼란을 겪을지 모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1호 (2023.05.31~2023.06.06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