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사태, 투자자들은 피해자... 증권사 책임도 있다"

류승연 입력 2023. 5. 2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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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양정근 변호사 "CFD 설명했다면 피해 막을 수 있었는데..."

[류승연, 이희훈 기자]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 양정근 변호사
ⓒ 이희훈
 

지난 한 달여 세상을 떠들석했던  'SG(소시에테제네랄)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가 점차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삼천리, 서울도시가스 등 8개 종목의 대량 매도로 수천억원대의 피해가 속출했지만 주가조작 세력의 배후로 지목됐던 투자컨설팅업체 호안의 라덕연 대표가 구속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 같아 보인다.

검찰은 지난 26일 라 대표와 측근 2명을 자본시장법 등의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이 8개 상장기업의 주식 시세조정으로 7305억원, 고객 이름으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관리하면서 수수료 명목으로 1944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는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이번 사태에서 라덕연 일당에 돈을 맡겼던 이들의 입은 점점 바짝 말라간다. 증권사들이 본격적으로 추심에 나서면서 계좌가 동결되는 등 금융 활동에도 제약이 따르고 있다. 또 라덕연 일당이 이들의 이름으로 '빚투'에 해당하는 신용융자를 받거나, 원금 이상의 손실을 가져다주는 파생상품인 CFD 계좌를 활용한 까닭에 이들도 원금 이상의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이로 인해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투잡'이나 '쓰리잡'을 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더 나아가 회생·파산까지 고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이들을 더 괴롭게 만드는 건 이들이 '주가조작의 가담자' 아니냐는 시선이다. 800여명이 넘는 이들은 이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모여 매일 서로의 삶을 비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는 이달 초 어려운 사정에 처한 투자자들을 구제하겠다는 목표로 소송인단 모집에 나섰다. 특이한 건 소송 대상이 라 대표를 비롯한 주가조작세력이 아닌 증권사라는 것. 지금까지 소송을 맡긴 이는 7명, 피해 금액은 283억원이다.

원앤파트너스는 어떤 근거로 투자자들을 '피해자'라고 판단한 것일까. 증권사도 책임이 있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마이뉴스>는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원앤파트너스에서 양정근 변호사와 만나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피해자인가 가담자인가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 양정근 변호사
ⓒ 이희훈
 

- 소송인단을 모집하면서도 '전례가 없고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유는?

"피해자 99%가 회생이나 파산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게 거짓된 희망을 주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비대면 본인 확인과 관련한 소송들이 있지만 금융 소비자가 이긴 사례가 별로 없다. 또 법 자체가 미비했다. 증권사의 책임 소재를 묻는 건 입법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란 이야기다. 계좌를 여는 과정에서 증권사가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고 해도, 증권사로선 '현재 있는 법을 지켰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피해자들 중 본인 과실이 있는 부분도 있다."

- 사실 라덕연 일당에 투자했던 이들을 향한 여론이 좋지 않다. 사건 초기에 연예인들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요 피해자로 언급되면서 대중들은 이번 사건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고 있다.

"맞다. 마치 '스카이캐슬'처럼 가진 자들이 카르텔 내에서 그들만이 아는 정보로 주가조작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약 30여명의 피해자들과 만나보니 전문직 종사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도 섞여 있었다. 라덕연이 투자 설명회를 했을 때 우연히 참석해 투자했지만, 결과적으로 노후자금을 날리게 된 케이스다. 그는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 요건이 되지 않아 신용융자 피해를 입었다. 또 피해자들은 하나 같이 주식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연히 레버리지나 개인 전문투자자, CFD에 대해선 더 몰랐다."

- 사건을 다시 한번 짚어보자. SG사태 관련, 많은 투자자들이 라덕연 일당에게 속아넘어가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면?

"초기엔 라덕연, 변정수 등 주가조작 세력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투자를 받는 형태였다. 월 수익률 10% 이상을 보장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했던 듯하다. 그중에서도 의사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투자를 감행할 여력이 돼 타겟이 됐다. 그런데 그게 높은 수익을 가져다줬고 이때부터 지인들끼리 서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초기 투자자가 새 투자자를 데려오는 식이다."

- 소개비를 받고 데려온 건가?

"소개비를 목적으로 서로를 소개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직접 파악한 바로도, 지인을 데려오면 수수료를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받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 동료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함께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맞다. 이번 사건으로 일가가 몰락한 경우도 있다. 수익이 잘 나니까 동생과 아내를 동시에 참여시킨 것이다. 이 사실을 근거로 우리는 투자자들을 '피해자'였다고 보고 있다. 범죄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했을까?"

- 부정적인 여론엔 그들이 직접 라덕연 일당에 신분증과 본인 명의 핸드폰을 넘겨줬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맞다. 초기 '10% 수익보장 모델' 이후, 투자자들에게 신분증과 핸드폰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안 쪽에서 '그렇게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신분증과 핸드폰을 넘겨야 적시적소에 대응을 할 수 있다며 위법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잘 알고 지내던 '지인 추천 구조'였던 데다 라덕연 일당이 수익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투자자들은 쉽게 속아넘어갔다."

- 투자자들이 초반엔 높은 수익을 거둬들였다고 들었다.

"맞다. 라덕연 일당이 투자자들의 핸드폰에 '어카운트 인포'라는 이름의 앱을 깔았다. 어떤 종목을 투자했는진 알 수 없고 계좌 잔고만 알 수 있었다. 여기 맹점이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신분증과 핸드폰만 넘겼을 뿐 라덕연 일당이 자신의 명의로 신용공여 계좌를 여는지,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을 해 CFD 계좌를 여는지 알지 못했다. 물론 피해자 중엔 신분증과 핸드폰을 넘겨주고 위법이 아닌지 의문스러워 한 분들도 있다. 더 나아가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다. 지금 우린 피해자들이 완전 무결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이 더 쉽게 속아넘어가게 된 원인을 짚어보자는 것이다."

- 현재 투자자들은 어떤 상황인가?

"빚을 수십억원어치 지고 회생이나 파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또 가족, 친구와 함께 투자한 사례가 많은 만큼 대다수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SG사태, 증권사에도 책임 있다"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 양정근 변호사
ⓒ 이희훈
 

-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일부 증권사에도 있다고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이번에 문제가 된 CFD 계좌를 만들기 위해선 개인 전문투자자로 등록해야 한다. 물론 그럴 소득 조건이 갖춰진 분들 이야기다. 그런데 일부 증권사들은 전문투자자 등록이나 CFD 계좌 개설 시 비대면으로 손쉽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절차를 간소화 하면서 본인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또 직접 방문해 계좌를 연 경우라도 개인 전문투자자라는 이유로 CFD 계좌 개설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 '비대면 실명확인'은 지난 2016년 정부 정책으로 도입된 후 우리 삶에 자리잡았다.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번 사태와 관련해 '비대면'으로 계좌를 터줬던 증권사와 아닌 증권사가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이나 CFD 계좌 발급 등은 위험 발생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부 회사들은 '대면'으로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정해뒀다. 또 비대면 실명제 도입 당시 금융당국이 금융 회사에 요구했던 비대면 확인 절차 중 증권사들이 가장 손쉬운 방식만 꼽아 운영해왔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가령 금융위원회는 2016년 당시 비대면 실명 확인을 허용하면서 금융사에 신분증 사본 제출, 영상통화, 접근매체 전달 시 확인, 기존 계좌 활용, 기타 이에 준하는 새로운 방식(바이오 인증 등) 가운데 2가지를 확인할 의무를 부여했다.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여기서 신분증 사본 제출과 기존 계좌 활용 등 두 가지를 선택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상 통화나 직접 지문을 인식해야 하는 등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본인 인증이 필수적인 방식은 제외됐다. 당시 금융위가 배포한 자료에도 31곳의 금융회사 중 26곳이 이 두 개 인증 방식을 조합해 비대면 실명 확인을 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실제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실에 따르면, CFD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국내 13개 증권사들의 CFD 거래 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2조7697억원 수준이다. 그중 잔액 상위권인 키움증권(5576억원)은 그동안 전문투자자 등록과 CFD 계좌 개설이 모두 비대면으로 가능했다. 교보증권 역시 이달 초까지 비대면으로 CFD 계좌를 터줬다.

- 직접 지점에 방문해 개인 전문투자자로 등록하거나 CFD 계좌를 연 투자자들은 증권사로부터 관련 설명을 듣지 못했나?

"못 들었다고 했다. 두툼한 서류를 주고 계좌 개설만 빠르게 진행시켰다고 들었다. 물론 약관에 내용이 나와 있겠지만, 약관을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드물다. 개인 전문투자자 신분이 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실질적인 설명을 해줘야 했다. 그랬다면 투자자들이 지금과 같은 피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엄밀히 말하면 개인 전문투자자에겐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등 투자자 보호조치가 적용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스스로 투자나 위험을 감수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 지점이 문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수술받을 때만 해도 수술 과정에서 죽을 수 있다는 등 사망 가능성을 고지하지 않나. 이 경우라면 '나 수술 안 할래'라고 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워런 버핏은 파생상품을 '금융의 대량살상무기'라고 했다. 원금 이상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점은 다시 한번 투자자에게 주지시켰어야 한다. 개인 전문투자자나 CFD의 의미도 모르면서 계약을 했다면 과연 공정한 계약 체결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 어떤 법리로 다퉈볼 예정인가?

"금융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금소법) 제14조에 따르면 '금융상품판매업자등은 금융상품이나 이와 관련한 계약 체결, 권리의 행사나 의무의 이행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돼 있다. 엄밀히 말해 신의성실은 민법 2조에도 나온다. 그런데 금소법과 같은 특별법에 다시 한 번 언급된 것이다. 입법자의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아무리 피해자에게 동의를 얻었다고 해도, 애초에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잘못됐다는 이야기다.

또 아까 금소법상 10조 '금융상품판매업자등의 책무'를 보면, 금융사는 소비자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실현되도록 다양한 책무를 져야 한다. 가령 금융 소비 생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책무나 금융 상품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재산에 대한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책무 등이다. 이들이 잘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모든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개인 전문투자자를 상대로 설명 의무를 강화하고 실질적인 교육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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