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반도체 방패’, 기술·인재·정책 세바퀴로 굴러간다

김혜원 2023. 5. 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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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반도체, 飛上과 非常]
대만이 ‘비상’(飛上)하고 있다. ‘반도체 방패’를 앞세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에 한국을 추월했다. 18년 만이다.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는 미디어텍과 TSMC를 선두로 하는 전공정부터 ASE홀딩스에서 지탱하는 후공정까지 ‘완벽’하다. 여기에다 대만 정부는 올해부터 ‘대만형 칩스법’을 기반으로 대대적 조세 감면혜택을 예고했다. ‘국가반도체발전전략’의 후속 대책도 마련 중이다. 하지만 불황의 태풍을 피해갈 수 없다. TSMC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역성장할 전망이다. 보호무역주의와 지정학 리스크 증폭으로 ‘탈(脫) 대만’ 우려도 높다. 미·중 갈등 심화, 한·미·일 동맹 강화 등의 경제안보 구도 변화는 대만에 ‘비상’(非常) 신호를 보낸다.

대만 북부 신주시 과학공업단지(사이언스파크)에 위치한 TSMC 본사의 전경. 입구와 벽면에 있는 ‘모리스 창 빌딩’(張忠謀大樓)이라는 표시가 눈에 띈다. TSMC는 창업주인 모리스 창의 업적을 기리는 차원에서 지난 2018년 본사 건물 명칭을 변경했다. 신주(대만)=김혜원 기자

대만은 나라 자체가 반도체다. 반도체는 ‘국가 보물’이자 ‘전략자산’이다. 대만의 견고한 ‘반도체 방패’는 기술, 인재, 정책이라는 세 바퀴로 굴러간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찾은 신주(新竹)시 과학공업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대만 북부 지역에는 100여개의 크고작은 반도체 기업이 밀집해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글로벌 1위 TSMC뿐 아니라 세계 스마트폰 10대 중 4대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하는 미디어텍(팹리스)도 ‘대만판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급성장했다. 남부 가오슝에 위치한 후공정 분야 최강자 ASE홀딩스(패키징)까지 감안하면 대만은 완성도 높은 ‘반도체 가치사슬’을 구축하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 생산액은 지난해 5조 대만달러(약 216조4000억원)에 육박했다. TSMC가 전체 생산액의 절반을 넘는다. 같은 해 대만의 총수출 대비 반도체 비중은 38.4%까지 뛰었다. 반도체와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한국과 닮은꼴이다. 세계 경제가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 경기 침체로 휘청일 때 대만은 반도체를 무기로 우뚝 섰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 ‘편식’에 심한 한국은 중국 봉쇄,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만 반도체 기업이 세계무대를 휘젓는 이면에는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자리한다. ‘물’과 ‘전력’이 대표적이다. 대만 정부는 TSMC와 ASE에 물을 대기 위한 재생수 공장을 따로 지었다. 남부를 가로지르는 TSMC 공장 위치에 따라 초고압 변전소를 신·증설하고 있다.

또한 ‘대만형 칩스법’은 일사천리로 모습을 갖췄다. 지난해 11월 17일 대만 행정원 첫 승인 후 두 달이 안돼 입법원(국회) 문턱을 넘었다. 하위법령(시행규칙안) 입법예고는 오는 30일 끝난다.

시행규칙안은 연구·개발(R&D) 투자액과 순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 하한선을 각각 60억 대만달러, 6%로 책정했다. TSMC는 대만형 칩스법으로 약 100억 대만달러(약 4400억원)에 달하는 세금 감면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대만 경제일보가 자국 내 1134개 기업의 ‘2022년 상장사 재무제표’를 분석했더니, R&D 투자액 요건에 부합한 기업은 TSMC를 포함해 18곳이었다. R&D 투자비율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기업은 8개 정도다. 류치즈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 연구원은 “‘대만형 칩스법은 대기업에만 유리하며 R&D 투자액 하한선을 더 낮춰야 한다’는 현지 산업계의 지적이 나오지만, 대만 정부는 균등한 혜택을 누리는 것보다 핵심 공급망에 필요한 자원을 투입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대만 북부 신주시 과학공업단지(사이언스파크)에 위치한 TSMC 본사의 전경. 입구와 벽면에 있는 ‘모리스 창 빌딩’(張忠謀大樓)이라는 표시가 눈에 띈다. TSMC는 창업주인 모리스 창의 업적을 기리는 차원에서 지난 2018년 본사 건물 명칭을 변경했다. 신주(대만)=김혜원 기자

대만 정부는 고급 인재 양성을 위한 산학협력 프로그램도 뒷받침한다. 산악지대를 제외한 국토 대부분을 과학공업단지로 조성하면서 대학, 정부 출연기관을 입주하도록 했다. 지난 2021년부터 대학에 ‘반도체 대학원’ 인가를 내주고 학교당 매년 100~150명 상당의 석·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대만 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마련한 반도체 분야 석·박사 인재 양성 프로그램은 오로지 기업 측 수요만 감안해 교과 과정을 구성하는 게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범부처 차원에서 ‘인재 양성’에 방점을 찍고 국가반도체발전전략을 짜고 있다. 류 연구원은 “반도체 기업에서 일부 외국대학 학사 졸업자에 대해 ‘최소 2년 경력’ 요건을 조건부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공계 학과 정원 확대, 복수 국적 재외동포 소득세 감면혜택 부여 등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인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는 일자리, 연봉 등으로 나타난다. TSMC는 코로나19 악재를 만난 2021년과 지난해에 각각 20%, 10% 연봉 인상을 단행하며 임직원을 파격적으로 대우했다. 올해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매출 역성장 가능성이 있지만 평균 4~5% 수준의 임금 인상을 이어갔다.

TSMC의 신입 엔지니어(석사 기준)의 연봉은 200만 대만달러(약 8610만원)를 넘는다. 대만 구인·구직 업체인 ‘104인력은행’에 따르면 대만 근로자 평균 연봉(67만7000대만달러)의 3배 이상이자, 반도체 업계 평균 연봉(96만9000대만달러)의 배 이상에 달한다. 신주 과학공업단지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과학공업단지에는 일자리 기회가 많고 보수와 대우가 매우 좋다”고 말했다.

신주(대만)=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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