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순교... 뒤 이은 아들은 '땀의 순교자'가 되고
[신영근 기자]
▲ 청양 다락골 성지에는 천주교 박해 당시 홍주(홍성의 옛 지명)에서 처형당한 무명의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줄무덤이 있다. 무명 순교자들을 가리는 십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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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골 성지에는 천주교 박해 당시 홍주(홍성의 옛 지명)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줄무덤이 있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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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이 길, 나의 길', '하느님과 홀로 있기가 소원입니다'
홍주성지, 해미성지, 갈매못성지, 신리성지, 솔뫼성지 등은 충남 내포 지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다. 이런 가운데, 순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청양 다락골 성지다.
청양군 화성면에 있는 다락골 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함께 신학교 유학을 다녀와, 김대건 신부에이어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고향이다. 또한 최 신부의 아버지인 최경환 성인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살았던 지역이다.
▲ 줄무덤은 3곳으로 나누어진다. 제1줄 무덤은 14기, 제2줄무덤 10기, 제3줄무덤 13기 등 모두 37기의 무덤이 있다.(사진은 제2줄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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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골 성지 누리집에 따르면 줄무덤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홍주 감영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들을, 천주교 신자들이 엄중한 감시를 뚫고 최 씨 종산인 다락골에 안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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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누구의 무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으로,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었다고 해 줄묘라고도 부른다.
줄무덤은 3곳으로 나누어진다. 제1줄 무덤은 14기, 제2줄무덤 10기, 제3줄무덤 13기 등 모두 37기의 무덤이 있다. 비가 내리는 28일 찾은 다락골 성지에는 주말을 맞아 성당을 찾은 신자들이 있었다. 줄무덤은 성지 입구에서 500여 미터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면 볼 수 있다.
20여 분 산을 오르자 줄무덤이 보였다. 제1줄무덤은 세계의 계단형식으로 맨 위에는 1기, 중간 8기, 맨 아래 5기 등 모두 14기의 줄무덤이 있었다. 그리고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제2줄무덤, 능선 너머에 제3줄무덤이 있었으며 성지 입구에서 비교적 먼 거리지만 이곳을 찾은 순례객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다락골은 천주교 집성촌으로 천주교 박해 당시 이곳에 있던 신자들이 잡혀간 것으로 전해지면서, 줄무덤이 당시 순교자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주교 박해로 이곳이 천주교 신자들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숨겨왔던 것도 이런 이유다.
▲ 새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함께 신학교 유학을 다녀와,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생가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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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무덤 성지를 지나면 새터 성지가 있다. 새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함께 신학교 유학을 다녀와,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생가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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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덤 성지를 지나면 새터 성지가 있다. 새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함께 신학교 유학을 다녀와,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생가터가 있다.
다락골에서 남쪽으로 1km 아래쪽에 있으며, 최 신부 아버지인 최경환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이곳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혼인했다. 이후 6남매를 낳았으며 그중 최양업 신부가 장남이다.
최 신부의 부모는 천주교 박해 당시 순교해 성인(최경환 프란치스코, 1984년 시성)과 복자(이성례 마리아, 2014년 시복)칭호를 받았으며, 증조부모와 조부, 형제 등 모두가 천주교 신자였다.
최 신부는 1849년 사제 서품을 받고 국내로 들어올 준비를 하던 중 앞서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들었다. 이후 최 신부는 귀국해 11년 6개월간 천주교 신자들에게 고해성사와 미사를 봉헌하는 등 길 위의 사제로 사목활동을 해놨다. 뿐만아니라, 매년 전국의 공소를 돌아다니며 한글로 교리를 가르쳤다.
▲ 비가 내리는 28일 찾은 다락골 성지에는 주말을 맞아 성당을 찾은 신자들이 있었다. 한 수녀님이 성당을 안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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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 신부는 1861년 6월 15일 영남 지방의 사목 활동을 마치고 상경하던 도중, 과로와 식중독으로 40세의 나이에 문경에서 병으로 선종했다. 그후 제천시 배론에 안장됐으며 일제 강점기 때 비석과 묘비를 세우려고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이루지 못하다가 1945년 비석과 묘비를 세웠다.
그래서일까. 다락골 성지 누리집에 따르면 순교로 신앙을 증언한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를 '피의 순교자', 당대의 유일한 한국인 사제로서 신자들을 위해 조선 팔도를 누빈 최양업 신부를 '땀의 순교자'라 부른다.
이런 가운데 한국천주교회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의 시복을 추진한 것은 최양업 신부가 처음이다.
그러면서, 한국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는 2016년 5월 8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가경자로 선포됐다. '가경자'란 교황청 시복 심사에서 성덕이 인정돼 붙이는 존칭으로, 가경자로 선포된자는 '기적 심사'를 통과하면 시복이 결정된다.
한편, 2003년 대전교구는 다락골 성지에 상주 사제를 임명했다. 이어 2008년 11월 9일 교구설립 60주년을 기념해 최양업 신부를 비롯해 최경환 성인 일가와 무명 순교자들을 위한 기념성당을 다락골 성지에 건립해 봉헌했다. 또한 최경환 성인과 최양업 신부의 생가터인 새터에는 박물관 겸 소성당도 마련할 계획이다.
다락골 성지를 소개하는 책자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다락골 성지에는 대성당과 소성당이 있다. 특히, 대성당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여러명의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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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골성지에는 무명순교자들을 추모하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있다. (사진 왼쪽부터, 죽음, 부활, 예수, 최양업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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