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촌클래식축제, 그 시작은 초등학교 오케스트라였다
예술마을 출발점인 계촌별빛오케스트라 소재 그림동화책 출판
지난 27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마을. 계촌초등학교 옆 상설무대 클래식 파크에 계촌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별빛오케스트라’가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하필이면 오전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가 굵어졌지만, 학생들은 개의치 않고 연주했다. 계촌초등학교 별빛오케스트라는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등 클래식 모음곡을 선보였고, 계촌중학교 별빛오케스트라는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등을 선보였다. 300여 명의 관객은 우비를 입은 채 잔디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서서 끝까지 학생들의 연주를 감상했다.
올해 9회째인 계촌클래식축제(26~28일)가 8월의 무더위와 우천을 피해 5월로 옮겼지만 비의 심술을 뿌리치지 못했다. 하지만 계촌을 찾은 예술가와 관객 모두 작은 시골 마을을 클래식 음악의 마을로 바꿔놓은 것으로 유명한 계촌클래식축제를 즐겼다. 대형 가설무대가 설치된 클래식 필드의 경우 날이 맑았던 26일 개막일엔 피에타리 잉키넨이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안나 비니츠카야가 협연하는 KBS교향악단이, 비가 내린 27일엔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크누아 윈드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섰다. 26일엔 평창군민이 대다수인 2500여 명 정도가 모였고, 27일엔 평창군 외에 다양한 지역에서 온 3000여 명이 콘서트를 감상했다.
200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비니츠카야는 “야외 콘서트는 연주자에게 쉽지 않다. 하지만 평소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매우 특별하다”면서 “이번에 자연 속에서 연주한 것은 내게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2021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인 박재홍은 “빗속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음악을 듣는 관객들을 보며 감동받았다”고 피력했다.
한편 올해는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계촌클래식축제가 지역 주민과 함께 좀 더 하나가 되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실례로 축제 기간 계촌마을 뒷길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특산품을 판매하는 부스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예년과 달리 곳곳에 축제 관련 조형물이 세워지고 축제를 찾은 관객들에게 기념품이 제공됐다. 또한, 프린지 페스티벌이 마련돼 평창 꿈의오케스트라와 면온초·진부중오케스트라, 평창예술인총연합회 등 평창지역 학생과 지역주민이 펼치는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원래 계촌마을은 고랭지 배추로 유명한 곳이지만 한적한 시골 마을이 그렇듯 지속적인 인구감소에 직면해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폐교 위기에 몰린 계촌초등학교에 전교생을 단원으로 하는 오케스트라를 창단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강릉시교향악단 출신인 권오이 당시 교장이 주도한 별빛오케스트라가 안팎의 주목 속에 폐교 위기를 넘기게 된 것이다. 2012년에는 계촌중학교 별빛오케스트라 창단으로도 이어졌다. 이에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한예종은 2015년 계촌마을을 ‘예술마을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정했다. 한예종 음악원 졸업생들이 매주 계촌 마을을 찾아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계촌클래식축제 역시 막을 올리게 됐다.
그동안 다양한 아티스트와 계촌 별빛오케스트라가 참가한 계촌클래식축제는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로 세계 클래식계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출연한 덕분에 이틀간 1만 명 넘는 관객이 계촌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계촌클래식축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과 달리 축제의 근본인 계촌 별빛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 축제를 앞두고 계촌초등학교 학부형 2명이 만든 그림동화책 ‘수상한 마을’은 그런 아쉬움을 잘 보여준다. 계촌창업센터 소소아트 여문희 대표가 기획하고 미술수업을 진행한 재미킴 작가가 이야기를 엮고 이를 아이들이 그림으로 담아 탄생한 ‘수상한 마을’은 조용한 마을에 음악가들이 찾아와 음악으로 마을을 밝게 비추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교와 서울에서 각각 2015년과 2021년 방림면에 정착한 여문희 대표와 재미킴 작가는 “별빛오케스트라가 학교와 마을을 살린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면서 “최근 계촌클래식축제가 많이 알려진 것은 반갑고 기쁘지만, 마을 주민과 아이들이 좀 더 축제의 중심에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만 계촌클래식축제를 운영하는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한예종 산학협력단 역시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10주년이 되는 내년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계촌클래식축제의 산파이자 출범부터 지금까지 총감독을 맡고 있는 이동연 한예종 교수는 “예술마을은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의 시대에서도 그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가치있게 지켜갈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면서 “1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지역 주민들도 ‘클래식 마을’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만큼 한층 특화된 클래식 축제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축제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와 해외 클래식 마을 초청 등 10주년을 기념한 행사를 다양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창=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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