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이런 곳이?... 사람 덜 붐비는 아름다운 길 [단칼에 끝내는 서울 산책기]

이상헌 입력 2023. 5. 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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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역-무수천-난향별원-자현암-원통사-우이동 유원지 코스

[이상헌 기자]

도봉산은 서울의 최북단에 위치해 왼편으로 북한산과 연결되고 우측으로는 수락산과 마주하며 위쪽으로 경기도 의정부, 양주시에 걸쳐 있다. 북한산과 함께 경기도민과 서울시민이 가장 많이 찾으며 노출된 암반과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봉우리가 많아 암벽등반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필수 코스이기도하다. 반면 일부 구간은 길이 무척 험해서 매년 사고가 끊이지 않으므로 무리한 등산은 피해야 하는 곳이다. 

무수천 계곡을 따라 수려한 경관을 살펴볼 수 있는 여러 사찰이 자리하므로 어느 방면으로 올라도 훌륭한 산책길이 된다. 이번에 소개하는 여정은 비교적 찾는 이가 적은 루트이며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둘러볼 수 있고 풍경도 멋진 코스다. 도봉역에서 출발해 무수천을 타고 난향별원의 녹음길을 거쳐 자현암을 구경한 뒤에 원통사에 올라 우이동 유원지로 내려오는 길이다.

난향별원에서 자현암까지의 숲길은 언제 걸어도 근사하며 이번 산책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은 원통사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시내 풍광은 도봉산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멋진 장소다. 정상에서 살피는 경관도 볼만 하지만 너무 큰 경치는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져 보는 맛이 덜하다.
 
▲ 무수천에서 우이동까지 산책길. 무수천 따라 자현암을 거쳐 원통사에 이르는 산책 루트.
ⓒ 이상헌
 
산책의 시작은 도봉역 1번 출구로 나와 무수천을 타고 오르면 된다. 도봉초등학교 못 미쳐 무수교 옆에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표석이 서 있다. "무수골이란 마을 이름은 1477년 세종의 17번째 아들인 영해군(寧海君) 묘가 조성되면서 유래되었다. 옛 명칭은 수철동(水鐵洞) 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무수동(無愁洞)으로 바뀌었다."
동네 이름이 별안간 '시름이 없다'는 무수동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불분명하다. 가령 세종이 먼저 간 아들 이당(李瑭)의 묘를 찾았다가 원터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고 해서 무시울 또는 무수골로 불리운다는 이야기다.
 
▲ 무수천. 계곡을 따라 상계동 너머 수락산이 보인다.
ⓒ 이상헌
 
세종 임금이 1450년에 승하했고, 영해군은 1477년에 별세했으니 연대가 맞지를 않는다. 그저 옛 이야기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세간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엮은 민담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무수천으로 내려가 걸어도 좋고 천변 위 포장도로를 따라 계곡물을 굽어보면서 진행해도 괜찮다. 도봉초교를 지나 한 동안 걷다보면 세일교를 지나 난향별원에 다다른다.

<전원일기>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한 풍경

이곳은 성신여대 부속시설로서 담장 너머로 단풍나무가 수북하여 가을이면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난향별원에서 자현암까지의 이어지는 숲길은 사시사철 언제 걸어도 좋다. 중간쯤에 이르면 난데없이 물을 댄 논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마치 전원일기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 모내기 체 험나온 초등학생들. 난향별원 지나 펼쳐지는 무지개논.
ⓒ 이상헌
 
마을의 중앙에는 수령 250여 년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25m의 높이로 서 있다. 둘레가 약 4m에 이르는 노거수 임에도 썩은 부분이 전혀 없으며 아직까지도 창창한 나뭇잎을 풍성하게 피워내고 있다. 1981년에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됐으며 갈림길 앞에 서서 도봉산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 느티나무 보호수. 무지개논 바로 옆에서 자라는 노거수.
ⓒ 이상헌
 
이곳에서 난향원을 지나 자현암까지는 인공조림숲길이 계속된다. 해질 무렵이면 그림자가 길게 드러워져 볕과 그늘이 어우러진 평지의 계단처럼 느껴진다. 계곡 옆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한 구비 두 구비 걷다보면 자현암에 다다른다.

자그마한 사찰임에도 대웅전을 비롯하여 범종각, 요사채, 삼성각 등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유난스레 짖어대는 개는 없으니 느긋하게 둘러보며 잠시 쉬었다가자. 도봉역에서 부터 이어진 포장길은 여기서 끝이다.

사대부가 즐겨 찾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던 가람

자현암을 나와 계곡옆으로 난 돌길을 따라 30여 분 오르면 원통사에 다다른다. 골짜기 사이로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전각이 서 있으니 마치 해자로 만들어진 성채를 보는 듯하다. 범종각을 돌아오르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갑자기 풍광이 바뀐다. 노원구와 도봉구를 넘어 경기도 의정부시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 원통사. 사대부들이 국사를 논하며 낙서를 즐겼던 사찰.
ⓒ 이상헌
 
원통사는 과거로부터 사대부들이 즐겨 찾던 명소 중 한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조 때 활약한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과 평보(平甫) 서명균(徐命均). 이들은 원통사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며 국사를 논했다고 전해진다.

조현명은 소론의 핍박으로부터 왕세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보호하는 데 힘썼으며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영의정에 올라 당시 문란했던 군역제도를 정비한다. 서명균 역시 영조의 탕평책을 도운 인물로서 우의정, 좌의정을 지내며 청렴결백한 관리로 살았다.

원통사는 오래된 가람임에도 지정문화유산이 하나도 없으니 의아한 일이다. 여러채의 전각도 유수한 전통이 깃든 건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약사전 바로 앞에는 상공암(相公岩)이라는 글자가 바위 속에 음각되어 있다. 상공은 재상이나 정승의 다른말이므로 아마도 과거 양반들의 유희로 짐작된다.
 
▲ 서울 속에 무지개논? 근심 없는 마을이랍니다 ⓒ 이상헌

옛 사람들의 낙서놀이지만 제법 공을 들여 새겨 넣었으니 선비들의 왕래가 잦았음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도봉산 계곡에 이런 바위글씨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원통사를 나와 데크길 조금 타고 내려오면 우이동 유원지까지 녹음길이 계속된다. 탁 트인 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싱그러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자분자분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일품이다. 북한산우이역 못 미쳐서 '우이동 산악문화허브'가 있다. 산악인 엄홍길의 업적을 기리는 전시관이므로 아이들과 견학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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