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간부 '만덕산 맹세' 간첩 활동…포섭 대상만 20여명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한 민주노총 전직 간부들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17명이 넘는 조직원을 포섭해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민주노총 간부들에게 기아차 공장, 건설산업연맹 전기분과, 경기도의 경기노동포럼 등 외부의 조직으로 세력 확장도 꾸준히 요구했다.
26일 국회에 제출된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을 지낸 석모(52·구속)씨 등 민주노총 전 간부 4명에 대한 공소장에 따르면 석씨를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 내 간첩단 규모는 최소 17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 정원두) 지난 10일 석씨를 포함한 민주노총 전직 간부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편의제공 등)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북한 문화교류국과 석씨가 주고받은 통신문을 토대로 석씨가 직접 데리고 있던 조직원은 최소 12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석씨 아래 1~4팀장, 회계·통신·총무과장과 등 12명 가량이 활동했다. 1팀장은 경기중부를, 2팀장인 민주노총 산하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54·구속)씨가 광주를 담당했다. 조직원 규모는 통신문에 드러난 직책과 활동 내역, 포섭 경로 등을 토대로 추산할 수 있었다.
석씨 아래에서 3팀장으로 보건 분야와 민주연합노동조합을 맡았던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출신의 김모(48·구속)씨는 북한의 지시를 받고 강원지사장을 맡아 자신 아래 1~4팀장을 두고 별도의 조직을 운영했다. 검찰은 석씨가 북한에 보낸 보고문을 통해 김씨의 강원지사에 최소 5명의 조직원이 활동한 사실을 파악했다. 북한은 지령문에서 김씨에게 “춘천 지역을 지역 내 진보 운동의 중심지로 만들라”라며 “1, 2, 4팀장이 진보당 춘천지역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간을 유리하게 활용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검찰은 김씨의 강원지사 구성원들이 진보당 출신 인사인 점 등을 토대로 김씨의 강원지사와 진보당의 연계 의혹도 수사 중이다.
석씨가 북한에 조직원 포섭 대상으로 거론하며 북한에 보고한 인물들은 민주노총 내에서 정책, 조직, 교육 등 주요 부서에서 활동한 이들이었다. 조직차장·기획팀장·총무실장·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 등 민주노총 본부 소속뿐만 아니라 한국노총 소속의 A씨와 기아차 화성공장 근로자 등 20여명이 포섭 대상이었다.
석씨 일당의 조직원 포섭은 ‘대남혁명을 위한 지하조직 구성원 인입의 단계별 절차’를 그대로 밟아 진행됐다. 친교 관계 형성(소극분자)→사회 불만 촉발(동반자)→반미·북한 지지 고양(열성분자)→비밀조직 참여 제안(적극분자)→비밀 사업 방법 학습(임무 부여) 단계를 밟아 포섭이 이뤄졌으며 북한 문화교류국은 포섭 대상자의 가족관계, 학력, 고향, 활동 이력 등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받아 포섭 여부를 결정했다.
석씨는 독서모임과 전국현장조직추진위원회 활동, ‘사회연대노동운동과 공공성포럼’ 등 민주노총 안팎의 조직 활동을 통해 꾸준히 포섭 대상자를 넓혀왔다. 2팀장인 양씨는 2019~2020년 사이에 문화교류국 승인을 받고 이모 씨와 한모 씨를 정식 사원으로 영입했다. 북한 공작원은 2020년 12월 이를 두고 “지사에서 올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성과”라며 “2팀장 쪽에 산하 지사를 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조직원 포섭 후 민주노총 본부와 기아차 화성공장 등 2~3명을 ‘비합 소조’를 결성하라고 꾸준히 지시했다. 비공식적 소규모 조직을 뜻하는 비합 소조는 일종의 사모임으로 노조와 각종 단체 침투를 위해 활용되는 방식이다.
북한 공작원은 지난해 10월 양씨가 포섭한 한씨 앞으로 산하 지사를 낼 것을 주문하며 ‘만덕산 맹세’를 하라는 지령문을 보냈다. 북한은 지령문에서 “만덕산에서 조국과 운명을 같이하는 혁명동지가 되자고 약속한 날을 산하 지사 결성일로 대치하라”라며 “산하 지사의 강령과 규약, 명칭, 내부 수칙 등을 토의해서 선포하면 된다”라고 안내했다. 검찰은 양씨의 고향이 전남 강진의 만덕산 인근이라는 점에 착안해 북한이 ‘만덕산 맹세’를 주문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석씨 아래에서 활동한 조직원 뿐만 아니라 포섭 대상에 올랐던 이들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이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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