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지금 가장 핫한 전시, '구찌 코스모스'

양윤경 2023. 5. 2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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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년간 차곡차곡 쌓인 역사는 하나의 우주가 된다. 구찌의 아카이브, 구찌의 우주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상하이에서 열렸다.

아카이브는 브랜드의 자서전이다. 단순히 브랜드의 과거 유산을 모아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지낸 사람들이 나눈 대화와 영감, 결과물, 그에 대한 반응까지 아우르는 집합체다. 그래서 헤리티지를 보유한 브랜드는 힘이 있다. 올해로 창립 102주년을 맞은 구찌(Gucci)가 브랜드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구찌 코스모스 Gucci Cosmos〉전을 개최한다. 지난 4월 28일 상하이에서 최초로 선보인 〈구찌 코스모스〉 전시는 구찌의 헤리티지를 몰입감 넘치는 8개의 여정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전시 이름에 ‘우주’라는 수식을 단 것에서부터 하우스가 가진 아카이브에 대한 경이와 찬사가 읽힌다.

구찌의 다양한 러기지 디자인을 만날 수 있는 공간 ‘포털’.
10m 높이의 조각상에는 구찌의 아이코닉한 수트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투영된다.
전시는 1800년대 후반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하던 17세 소년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가 일하던 사보이 호텔은 런던 최초의 특급호텔이자 전자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유일한 호텔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7분. 눈썰미가 좋았던 소년은 엘리베이터에서 상류층 손님들의 짐을 나르는 7분 동안 그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의 디테일을 꼼꼼히 살폈다. 이때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1921년 피렌체에 자신의 이름을 건 가죽 제품 가게를 열었다. 이것이 구찌의 시작이다. 전시장의 첫 번째 공간 ‘포털(Portals)’이 회전문으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사보이 호텔의 문을 상징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회전목마처럼 끊임없이 회전하는 원판 위에 구찌 최초의 수트케이스부터 디즈니 프린트의 러기지들이 디스플레이돼 있다. 원형으로 돌며 서로 교차하는 제품들은 구찌의 역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간에 이뤄진 아이디어와 영감의 교류를 상징한다. 가장 바깥쪽 링에는 하우스의 뮤즈와 앰배서더들의 모습, 영화의 도시 로마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제작한 8개의 멀티미디어 디오라마를 배치했다.
승마에서 기원한 구찌 상징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조이트로프’.

두 번째 공간은 ‘조이트로프(Zoetrope)’. 연속 동작이 있는 그림을 종이 띠에 그려 원통 안에 설치해 이를 회전시키면서 바깥쪽에 낸 구멍으로 보면 그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치가 바로 조이트로프다. 영국의 컨트리클럽에서 영감을 받은 구찌의 조이트로프는 원형 공간에 몰입형 스크린을 설치했고, 말이 달리는 모습의 영상에 말굽 소리와 승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단어들을 읊조리는 음성을 더해 파워플하게 연출했다. 조이트로프에서 그림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알도 구찌가 디자인한 홀스빗 엠블럼과 말안장을 고정하는 끈에서 영감받은 구찌의 그린-레드-그린 웹 등 승마에서 기원한 구찌의 다양한 아카이브 제품을 배치했다. 아찔함이 느껴지는 하얀 공간에 37개의 꽃과 곤충 모티프를 거대한 크기로 설치한 ‘에덴’은 구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플로라에 대한 곳이다. 플로라는 일러스트레이터 비토리오가 로돌프 구찌의 의뢰를 받아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를 위해 제작한 실크 스카프에 처음 등장한 패턴이다. 1966년 처음 선보인 후 톰 포드, 프리다 지아니니, 알레산드로 미켈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더불어 생명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인정하는 구찌의 철학을 보여준다. 매혹적인 에덴의 방에서 나오면 고대 신전의 입구를 지키는 듯한 10m 높이의 조각상 ‘투(Two)’와 마주하게 된다. 조각상의 하얀 캔버스에는 구찌가 그동안 선보인 아이코닉한 수트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투영된다. 성별을 가늠할 수도, 가늠할 필요도 없는 이 조각상은 구찌가 추구하는 젠더리스 패션을 상징한다.

‘아키비오’에서는 구찌의 상징적인 핸드백들의 기원을 탐험할 수 있다.

이어지는 다섯 번째 공간 ‘아키비오(Archivio)’는 구찌의 상징적인 핸드백을 탐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피렌체의 구찌 아카이브를 연상시키는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 수많은 캐비닛과 서랍을 배치했다. 캐비닛 안에는 구찌의 다섯 가지 시그너처 백인 뱀부 1947, 재키 1961, 홀스빗 1955, 구찌 다이애나, 디오니소스를 전시해 오리지널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새롭게 재해석한 버전의 디자인을 함께 만날 수 있게 했다. 몇몇 서랍은 직접 열어볼 수 있는데, 그 안에는 비토리오의 일러스트레이션과 구찌 장인들의 스케치북, 도면 등이 디스플레이돼 있다.

‘캐비닛 오브 원더스’의 모놀리식 큐브 속 서랍에는 구찌의 아이코닉한 룩을 전시했다.

여섯 번째 공간 ‘캐비닛 오브 원더스(Cabinet of Wonders)’는 짙은 붉은색 래커로 칠한 3m 높이의 큐브다. 사람의 숨소리를 배경으로 반복해서 여닫히는 큐브 속 서랍에는 블랙 레더 뷔스티에를 매치한 2001년 톰 포드 컬렉션 룩부터 2006년 프리다 지아니니의 황금빛 이브닝 가운, 2018년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레이스와 진주, 비즈로 수놓은 유니크한 드레스까지 구찌가 선보였던 디자인을 디스플레이했다. 각 룩이 보일 때는 블랙 오스트리지 깃털 부채와 톰 포드 시대의 일렉트릭 기타 등 룩에 어울리는 소품과 액세서리들이 함께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중국 아티스트들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카루셀’의 퍼레이드와 어우러진다.

일곱 번째 공간 ‘카루셀(Carousel)’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선보여진 구찌 룩을 착용한 32개 마네킹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설치돼 런웨이 위의 모델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퍼레이드 형식으로 보여준다. 컨베이어 벨트 주위에는 중국 현지의 아티스트들이 작업한 일러스트레이션이 함께 회전한다. 1970년대 실크 셔츠와 스커트에 매치한 2016년의 트롱프뢰유 리본이 달린 울 코트, 프리다 지아니니의 플래퍼 드레스와 어우러진 톰 포드의 유니섹스 수트 등 디자이너와 디자이너, 과거와 현재, 유럽과 아시아가 교차하는 모멘트를 목격할 수 있다.

‘포털’에 전시된 캔버스 소재의 수트케이스.
‘아키비오’ 서랍 속에 전시한 비토리오의 일러스트레이션. 3 10m 높이의 조각상에는 구찌의 아이코닉한 수트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투영된다.
플로라 모티프를 재해석해 적용한 실비 백.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플로라 패턴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데님 재킷.
구찌 룩을 입은 마네킹들의 퍼레이드, ‘카루셀’.

전시 피날레는 하우스의 미학과 본질이 탄생한 피렌체를 향한 오마주를 담은 ‘두오모(Duomo)’로 장식한다. 이탈리아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15세기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형상화해 두 개의 커다란 돔을 제작했고, 그중 하나는 마치 물에 비친 두오모를 보는 것처럼 뒤집어진 형태로 배치했다. 돔의 뒤쪽에 설치한 전망대를 통해 두오모 안쪽을 바라보면 플로라에서 영감받은 프린트가 회전하며 만들어내는 몰입감 넘치는 장관을 경험할 수 있다.

압도적 규모의 돔은 구찌가 시작된 도시인 피렌체의 두오모를 형상화한 것.

〈구찌 코스모스〉 전시의 8개 여정은 100년 넘는 시간 동안 구찌의 코드와 정신이 다양한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표현돼 왔는지를 보여준다. 각 시대를 정의하는 클래식 제품들이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에게 어떻게 영감을 주고 재해석돼 왔는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전시기획과 디자인을 총괄한 에스 데블린은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Living Organism’, 즉 ‘살아 있는 유기체’로 정의했다. 구찌의 아름다운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살아 꿈틀대며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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