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사고 후에도... 홍해에 떠있는 '시한폭탄' 유조선 [ESG 세상]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 <기자말>
[안치용, 지예림, 한채하. 이윤진 기자]
▲ 엑손 발데스 |
ⓒ U.S. National Oceanic |
해양 생태계는 여전히 '회복 중'
▲ 기름으로 뒤덮인 새 |
ⓒ 셔터스톡 |
사건 이후 진행된 생태계 회복에 관한 연구에서 '회복'을 각각 다르게 정의함에 따라 회복 정도에 대한 합의를 어렵게 만들었다. 실현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엑손 발데스 원유 유출 수탁 위원회 (Exxon Valdez Oil Spill Trustee Council)'는 회복을 유출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의 조건으로의 복귀로 정의한다. [7]
위원회는 1994년 처음 발표하고 2014년까지 여러 차례 개정한 엑손 발데스 원유 유출 복구 계획(Exxon Valdez Oil Spill Restoration Plan)을 통해 손상된 자원별로 상이한 당시까지의 회복 상태를 제시했다. 생물은 먹이와 서식지, 회복 능력 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개체 수 회복에 걸리는 시간에 큰 차이가 있다. [8]
회복 상태는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우선 '회복되지 않음'은 원유 유출로 인한 피해 상태에서 뚜렷한 개선이 없고, 목표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회복 중'은 복구 목표를 향한 실질적 진전은 있으나 여전히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거나 남아 있는 기름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며, '회복됨'은 회복 목표가 달성되어 자원의 현재 상태는 원유 유출과는 관련이 없는 상태다.
'회복 가능성이 매우 높음'은 2010년 도입된 범주로, 회복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며 유출로 인한 피해 징후가 나타난 지 너무 많은 시간이 경과해 잔류 영향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원이 여기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알 수 없음'에는 유출 피해 정도에 관한 자료가 부족한 자원들이 해당된다.
▲ 종별 회복 과정 그래픽 |
ⓒ NOAA |
해체된 지역 사회
사고는 지역 사회 주민의 경제적, 정서적 문제를 야기했다. 사고 지역에서는 청어, 연어, 게, 볼락, 새우 등의 상업 어업이 중단되어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3만 2000명 이상이 3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보았다.[11] 일부 지역에는 레저용 어업이 완전히 중단되었으며, 관광산업이 영향을 받았다.
알래스카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유류 유출 사고 직후 약 1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12] 관광 지출 역시 알래스카 중남부에서 8%, 알래스카 남서부에서는 35% 감소했다.[13] 사고는 관광 산업에서 2만 6000개 이상 일자리와 24억 달러 이상의 사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되었다. [14]
주민들이 겪은 정신적 피해 역시 심각하다. 사고 발생 1년 후 지역사회 남녀 5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들 중 20.2%가 불안 장애, 9.4%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울증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된 CES-D 척도는 15점까지 정상 수준인데 16점 이상인 응답자와 18점 이상인 응답자가 각각 16.6%와 14.2%였다. 또한 사고 노출 집단이 불안 장애, PTSD를 겪을 확률은 사고에 노출되지 않은 집단에 비해 각각 3.6배, 2.9배 높으며 CES-D 척도의 점수가 16점 이상일 확률 역시 1.8배 높았다. [15]
사우스 앨라배마 대학 사회학과 스티브 피쿠 교수는 현지 사회가 겪은 이러한 사회적∙심리적 타격이 수십 년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피쿠 교수는 지역사회 내에서 일어난 사회적 자본의 급격한 감소와 이혼과 가정폭력, 파산 등 사회의 해체를 지적한다. 그는 이 사고를 "일종의 집합적인 트라우마로 볼 수 있으며 전체 사회가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받은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16]
사고 해역 인근의 코르도바 지역은 1988년까지 미국의 8대 어업기지로 불렸지만 지금은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어업 가구 30%가 코르도바를 떠났고, 생선 가공 공장 5곳 중 3곳이 망했다.[17]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가 늘어갔으며 빈곤에 따른 가정파탄과 이혼율 및 자살률이 급상승했다. 이들은 엑손 발데스 소유주인 엑손 모빌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낸 3만 2000여 명 가운데 1000여 명은 호흡기 질환과 뇌종양, 각종 암 발병으로 이미 숨졌다. [18]
1994년 9월 알래스카 연방법원이 엑손 모빌 측에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50억 달러를 내라고 평결한 것을 시작으로 긴 법리 다툼이 이어졌다. 엑손 모빌은 이에 즉각 항소했고, 2006년 미연방 제9순회 항소법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액수를 그 절반인 25억 달러로 감경했으며, 2008년 6월 대법원은 5대 3의 판결로 징벌적 손해배상 액수를 또다시 줄여 단지 5억 달러만 지급하도록 했다. 1심 판결의 단 10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 금액은 엑손 모빌의 넉 달치 순이익에 불과하다.[19]
제도적 보완 시도
대형 유조선의 출현과 그로 인한 유류 오염 사고는 1960년대 말 이후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으로, 미국도 1970년 이전에는 이 문제를 다루는 실효성 있는 법이 없었다. 하천 및 항구법(Rivers and Harbour Act of 1899), 유류오염 관리법(Oil Pollution Control Act, 1924), 연방 수질 오염관리법(Federal Water Pollution Control Act, 1948) 등이 해양오염을 규율하긴 했으나, 이 법들은 주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 및 기술적 원조를 다룰 뿐 오염피해 보상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1967년 토리 캐넌호 사고와 1969년 캘리포니아 해변 석유 시추 플랫폼 폭발 이후에야 수질개선법(Water Quality Improvement Act, 1970)이 제정되어 유류 유출 금지 조항을 위반한 자에 대한 벌금 부과와 연방정부의 오염제거비용에 대한 엄격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법과 청정수법으로 알려진 개정법 모두 오염피해를 입은 개인의 손해배상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엑손 발데스 사고가 발생했고, 이때 기름을 제거하는 비용이 청정수법 책임 제한액을 훨씬 초과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은 더욱 강력한 유류오염법(OPA-90, Oil Pollution Act of 1990)을 제정하였다.[20]
▲ 이중선체 구조 |
ⓒ 마폴 |
OPA는 '유류오염 피해에 대한 민사책임에 관한 국제협약'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선박 소유주의 책임을 인정하는데, 여기에는 자연자원 손실로 인한 피해(복구비용, 자연자원 손해, 재산피해, 정부 세금, 사용허가료, 임대료 등의 상실)뿐 아니라, 피해를 평가하는 데에 든 비용이 포함된다. [22]
OPA는 제정 이후 20년 동안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기능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0년 엑손 발데스 이후 최악 유류 유출 사고로 알려진 멕시코만 '딥워터 허라이즌' 사고가 발생하면서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논의 중이다. [23]
지속가능성 보고의 기준을 제시하는 국제기구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역시 엑손 발데스 사고를 계기로 설립되었다. 미국의 환경단체 세리즈(CERES, Coalition for Environmentally Responsible Economics)가 이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1997년 국제연합환경계획(UNEP)과 협약을 맺고 GRI를 설립한 것이다. [24].
▲ 세이퍼호 |
ⓒ 유엔 |
비극을 막기 위해서
지난 4일 우리 정부는 원유 114만 배럴이 실린 채 홍해에 수년간 방치된 FSO 세이퍼 유조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2억 7000만 원 규모 인도적 지원으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세이퍼호는1976년 건조된 노후 유조선으로 2015년 예멘 내전이 격화한 이후 유지보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돼 기름 유출·폭발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세이퍼호의 원유 적재량은 엑손 발데스의 4배에 달해, 침몰 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25]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엑손 발데스 사고가 발생하고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구촌엔 세이퍼호를 비롯해 해양오염 사고 위협이 산재한다. 해양오염 사고는 한번 일어나면 다른 사고에 비해 더 큰 재앙을 불러오고 회복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방일 텐데 실제로 그런지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지예림·한채하 기자(지속가능바람), 이윤진 ESG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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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 정광용 기자 (2008, 3월 24일). 엑슨 발데스호 기름유출 사고 外 부산일보.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80324000495 [2] 정종관. (2019). (해외출장보고서)알래스카 해양과학 심포지움(AMSS) 유류유출 영향평가 동향과 전망. 충남연구원. [3] 조윤승.(1990).EXXON Valdez호 유배출 사고의 교훈 - 환경보건문제의관점에서 -.환경보전 ,12(9),14-20. / p.1 [4] Alaska State Archives. Exxon Valdez oil spill. Alaska State Library Historical Collections. https://archives.alaska.gov/education/evos.html [5] NOAA Office of Response and Restoration. How oil harms animals and plants in marine environments. https://response.restoration.noaa.gov/oil-and-chemical-spills/oil-spills/how-oil-harms-animals-and-plants-marine-environments.html [6] Marine Insight. The Complete Story of the Exxon Valdez Oil Spill. https://www.marineinsight.com/maritime-history/the-complete-story-of-the-exxon-valdez-oil-spill [7] Esler, D., Ballachey, B. E., Matkin, C., Cushing, D., Kaler, R., Bodkin, J., Monson, D., Esslinger, G., Kloecker, K. (2018). Timelines and mechanisms of wildlife population recovery following the Exxon Valdez oil spill. Deep Sea Research Part II: Topical Studies in Oceanography, 147, 36-42. [8] USGS. (2017, May 2). Thanks to a quarter-century of research and monitoring, scientists now know how different wildlife species were injured by the 1989 Exxon Valdez oil spill and how long it took for populations to recover. https://www.usgs.gov/news/national-news-release/wildlife-recovery-following-exxon-valdez-oil-spill-was-highly-variable [9]EVOSTC. (2010). Exxon Valdez Oil Spill Restoration Plan 2010 UPDATE INJURED RESOURCES AND SERVICES. [10] Esler, D., Ballachey, B. E., Matkin, C., Cushing, D., Kaler, R., Bodkin, J., Monson, D., Esslinger, G., Kloecker, K. (2018). Timelines and mechanisms of wildlife population recovery following the Exxon Valdez oil spill. Deep Sea Research Part II: Topical Studies in Oceanography, 147, 36-42. [11] Lyon, S., & Weiss, D. J. (2010, April 30). Oil Spills by the Numbers: The Devastating Consequences of Exxon Valdez and BP Gulf. https://www.americanprogress.org/article/oil-spills-by-the-numbers/ [12] Marine Insight. (n.d.). The Complete Story of the Exxon Valdez Oil Spill. https://www.marineinsight.com/maritime-history/the-complete-story-of-the-exxon-valdez-oil-spill/ [13] Lyon, S., & Weiss, D. J. (2010, April 30). Oil Spills by the Numbers: The Devastating Consequences of Exxon Valdez and BP Gulf. https://www.americanprogress.org/article/oil-spills-by-the-numbers/ [14] Marine Insight. (n.d.). The Complete Story of the Exxon Valdez Oil Spill. https://www.marineinsight.com/maritime-history/the-complete-story-of-the-exxon-valdez-oil-spill/ [15] Palinkas, L. A., Petterson, J. S., Russell, J., & Downs, M. A. (1993). Community patterns of psychiatric disorders after the Exxon Valdez oil spill. The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50(10), 1517–1523. https://doi.org/10.1176/ajp.150.10.1517 [16] 국제신문.(2010,5월 4일).생태계·주민에 깊은 상처, 아직도 격심한 고통.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400&key=20100505.22011223746 [17] 한겨레21(2006, 9월 26일). 석유의 체르노빌, 그 검은 17년. 한겨레21.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8026.html [18] 정인환(2004, 3월 27일). ‘엑손’ 원유유출 배상소송 장기화 /피해주민 15년째 가난·질병 신음.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521956.html [19] Democracy now(2009.03.24). 20 Years After Exxon Valdez Oil Spill, Alaskan Coastline Remains Contaminated, Residents Still Struggle for Justice https://www.democracynow.org/2009/3/24/20_years_after_exxon_valdez_oil [20] 윤효영. (2012). 미국 유류오염법(OPA)의 입법적 변화와 그 시사점. 법학논총, 36(1), 747-776. [21] OECD대표부. (2010.5) 유류 오염 사고 현황, 환경 영향 및 대응 비용 [22] 해양수산해외산업정보포털 (2017.11.13) 미국,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민사 책임 범위 넓게 인정 https://www.kmi.re.kr/globalnews/posts/view.do?rbsIdx=1&key=%EA%B1%B4%EA%B0%95&page=57&idx=28 [23] 윤효영. (2012). 미국 유류오염법(OPA)의 입법적 변화와 그 시사점. 법학논총, 36(1), 747-776. [24] Kosri https://kosri.com/datacenter-2/sr_keywords/?board_name=sr_keywords&mode=view&board_pid=280&search_field=fn_title&order_by=fn_pid&order_type=desc&board_page=3&list_type=list [25] 김민정. (2023, 5월 5일). 정부 "홍해 수년간 방치 대형 유조선 해결 노력에 동참". YTN. https://www.ytn.co.kr/_ln/0101_20230505102737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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