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 필요 없는 전기차, 그릴의 행방은?

정진주 2023. 5. 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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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차 기반 전기차와 전용 전기차따라 그릴 채택 여부 달라
전기차 그릴 부분 디자인. ⓒ각사

자동차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동력기관뿐만 아니라 디자인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분다. 과거 내연기관의 상징이었던 '라디에이터 그릴'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기능적 요소였던 그릴이 전기차에서는 디자인의 영역으로만 남게 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불필요해진 그릴 때문에 전면 디자인에서 기존 패밀리룩과의 타협, 혹은 전기차에 적합한 새로운 형상 도입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릴은 주행 중에 들어오는 공기를 엔진룸으로 유입시켜 엔진과 라디에이터를 열을 식히는 역할을 한다. 또 주행 시 라디에이터로 유입될 수 있는 외부 물질을 1차적으로 걸러줘 고장이나 파손을 예방하는 보호 역할도 한다.


하지만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 엔진 대신 배터리와 모터로 구동되기 때문에 발열이 심하지 않아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대비 그릴의 면적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도 된다.


전기차에 그릴을 만들어 불필요하게 바람이 들어가면 공기 저항이 심해져 연비가 안 좋아진다. 그렇기에 하이브리드차의 경우 가변형 그릴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가변형 그릴은 전기로만 구동될 때는 흡기가 필요 없으니 그릴을 닫아놓고 엔진 냉각이 필요할 때만 개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는 아직 그릴과 헤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기능적 역할만이 아니라 자동차 전면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디자인의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제조사들의 브랜드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해 과감한 포기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맞는 제조사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릴을 없애느냐 디자인으로 남기느냐의 판단도 전기차의 경쟁력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하다.


2016년에 출시된 아이오닉 일렉트릭. ⓒ현대차

내연기관차 기반 차종의 전기차와 전용 전기차에 따라 그 길이 달라지고 있다. 내연기관차 기반 차종의 전기차들은 대체로 그릴을 포기하지 않고 디자인으로 승화하고 있다.


초기 내연기관차에서 시작된 전기차는 잘못된 길로 빠져들기도 했다. 대표적인 나쁜 사례가 2016년에 출시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이다. 과감하게 그릴은 떼어냈지만, 그 빈 자리를 투박하게 고무점토로 채워넣은 듯해 어색함이 가중됐다. 마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예견이나 한 듯 마스크를 쓴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답답한 인상을 준다.



BMW 뉴 5시리즈. ⓒBMW

물론 좋은 예시도 있다. 내연기관 시대에 그릴로 헤리티지와 브랜드 파워를 정립한 BMW는 전기차에도 그릴을 안고 간다. BMW 모든 전기차들이 순수 전기차 iX를 포함해 그릴을 갖고 있다. 어설픈 디자인 변형 대신 전통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그대로 적용해 어색함을 줄였다.


최근 공개된 BMW 8세대 프리미엄 비즈니스 세단 뉴 5시리즈는 키드니 그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7시리즈에 적용된 라디에이터 그릴 조명 ‘BMW 아이코닉 글로우’로 새로운 BMW 키드니 그릴이 조화를 이뤄 존재감을 강조했다.


BMW의 대표적 패밀리룩(통일된 디자인)인 키드니 그릴은 1933년부터 90년간 적용한 디자인이다. 키드니는 신장, 콩팥(kidney)을 의미하는데 그릴을 두 개로 나눠서 생긴 명칭이다. 1933년 당시 차량들이 대부분 한 개의 그릴로 출시돼 BMW가 차별화하기 위해 채택한 디자인이다. 이후 이세타와 파생 차량인 600 등 몇 모델을 제외하고 모든 차량에 키드니 그릴이 사용된다. 콩팥 하나를 떼도 죽지는 않겠지만 BMW엔 콩팥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뉴 푸조 408. ⓒ스텔란티스 코리아

이와 반대로 전용 전기차들은 대체로 그릴을 없애는 추세로 가고 있다.


푸조는 확고하게 그릴을 없애간다는 파다. 지난 24일 열린 ‘푸조 브랜드 데이’에서 마티아스 호산 푸조 디자인 디렉터는 “거대한 그릴은 구식”이라며 푸조는 자동차의 전형적인 형상에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현대적인 그릴을 선호한다고 발언했다.


푸조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는 푸조 408의 상위 트림인 GT에서는 그릴이 차체 색상과 같아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마티아스 호산 디렉터는 그릴과 범퍼 사이에 전통적인 경계가 없어진 그릴 디자인이 “푸조 모델의 새로운 세대에 대한 강력한 미적 표시”라고 강조했다.


인셉션 콘셉트. ⓒ정진주 기자

이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푸조의 의지가 담은 콘셉트카 ‘인셉션 콘셉트’도 공개하며 푸조 디자인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미래 공상 과학 시간에 나올법한 파격적 디자인이지만 당장 2년 뒤인 2025년부터 채택될 디자인이다.


이 콘셉트카의 프론트 페시아는 전체 프론트 그릴과 시그니처 부품을 하나로 통합하고 센서를 내장해 그릴의 허전함을 채웠다. 또 3개의 상징적인 발톱이 통합된 올 뉴 푸조 라이트 시그니처와 함께 중앙에는 3D 발광 효과가 있는 로고가 빛이 나 화려한 인상을 심어준다.


아이오닉 5. ⓒ현대차

현대차도 전용 전기차 브랜드 첫 번째 모델인 아이오닉 5부터는 디자인이 자연스러워졌다. 아이오닉 5, 6는 현대차가 개발한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 기반으로 만들어진 차량들이다.


아이오닉 5는 눈인 라이트 사이를 콧구멍인 그릴 대신 검은 선으로 길게 연결해 그윽한 눈매를 연상케 했다. 아이오닉 6는 그릴 대신 자리한 현대차 로고가 코 역할을 해 조화로운 얼굴로 보인다. 두 제품 모두 그릴 빈자리의 썰렁함이나 대체된 디자인의 어색함은 씻어냈다.


아이오닉 6. ⓒ데일리안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대체하기 전까지는 그릴에 대한 완성차 업체들의 고민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차종에 따라 그릴이 빠지면 디자인적 허전함이 크게 느껴지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기아의 대형 전기 SUV EV9이 대표적이다. EV9은 전용 전기차면서도 앞서 출시된 EV6와 달리 그릴이 있어야 할 자리가 무언가로 막힌 듯한 모습이다. 전형적인 2박스형 차체에 전고가 높은 대형 SUV다 보니 직각으로 떨어지는 전면부가 넓어 그릴이 빠진 헤드램프 사이에 공백이 크다.


기아는 디지털 패턴의 라이팅 그릴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헤드램프 사이의 공백을 ‘빛’으로 다양한 형상을 구현하는 일종의 ‘도화지’로 활용한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용어조차 사라질 그릴의 빈자리가 어떤 식으로 채워질지 완성차 업체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기대된다.


EV9. ⓒ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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