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의 귀환…'거미집'의 모든 것 [칸 리포트]

류지윤 2023. 5. 2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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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교훈 얻어, 극장·OTT 공존 모색해야"

김지운 감독이 '거미집'을 통해 전 세계 영화인들을 향한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뉴시스

26일 오후 12시 45분(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 '거미집' 공식 기자회견이 진행돼 김지운 감독,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크리스탈), 박정수, 장영남이 참석했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 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각본은 신연식 감독이 집필했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 촬영장의 소동극을 소재로 한 것에 대해 "감독이라는 직업이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마치 현장에서 여러 결정을 놓고 오케이를 낼 때 마치 시한폭탄을 켜놓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압박을 받을 때가 많다. 결정을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광야에 홀로선 고독자같다. 최종적으로 자신의 비전을 믿고 갈 수 밖에 없다. 모든 영화의 구성들은 흐릿한 형태에서 시작해서 배우, 스태프, 공간이 만나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서 뭔가 어렴풋이 떠오르고 있다면 '너를 믿고 가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바로 너의 것이니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지운 감독은 극 배경을 1970년대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70년대와 현재 한국의 영화 상황이 산업적으로는 비슷하다. 10년 전 영화 산업처럼 1960년대는 극장 점유율이 굉장히 높았다. 당시에는 영화 제작 편수가 100편 이상이었다. 이후 70년대 유신독재가 행해지며 영화법이 생기고 국가의 전략들에 의해 계몽, 국책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영화를 통제하는 시대였다. 요즘은 글로벌 경제 위기를 지니고 있는 영화 산업이 마치 70년대 한국의 영화 산업과 맞아떨어지는 게 있는 것 같다. 영화 속 '거미집'의 주인공처럼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고군분투가 모든 영화 감독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극중 김기열 감독이 보여준 감독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 환원해 끝까지 영화를 살리고 다시 영화의 시대를 불러올 수 있도록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이 새로 쓴 작품에 대해 배우와 스태프들은 이해가 떨어지고 제작자는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이 상황 속에서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결정적으로 유신정권의 문공부가 영화를 검열한다. 사실 감독은 현장에서 10중고 정도 겪는 것 같다. 마치 접시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에 어떤 점을 시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지금 영화가 어려운 시대지 않나. 악조건에도 불구 영화를 만들어내는 영화인들에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김 감독은 영화의 제목의 의미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신연식 감독의 각본이 원작이다. 내가 찾으려고 왜 제목을 '거미집'으로 만들었는지 묻지 않았다. 인간의 다양한 군상들이 '거미집'에 걸린 걸 상상하고 확장해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또 장르적으로 방치된 거미집은 파멸과 몰락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가족 괴담을 예고하는 의미에서 '거미집'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또 거미가 줄을 치는 이미지가 공포영화 장르적 클리셰적으로 불온, 음산, 불안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미지를 차용했다"라고 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거미집을 치고 있고 먹이가 거미집에 걸려들길 바라는 게 감독의 입장이 아닌가 싶었다. 모든 계획을 거미집처럼 정교하게 짜고 그 안에서 배우, 스태프, 아티스트들의 재능들이 순간적으로 발현되는 걸 기다리는 게, 감독들이 거미집을 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거미집'은 멀티 캐스팅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김지운 감독은 처음부터 배우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쓸데없는 공간들을 화면에 할애하지 않았다. 제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호하고 신비스러운 순간들의 표정을 좋아해 배우에게 집중하려고 했다. 저는 뭔가 마음을 끄는, 그런 표정의 순간을 잘 잡는 감독으로 남고 싶다. 어쨌든 배우를 통해 영화를 따라가게 돼 있기 때문에 배우의 순간적인 면들과 매력을 잘 담아내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라고 전했다.


극중 김기열 감독을 연기한 송강호는 '거미집'으로 8번째 칸을 찾았다. 지난해에는 '브로커'로 한국 배우 최ㅊ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송강호는 "훌륭한 분들 덕분에 자주 칸에 오는 것 같다. 연속으로 칸을 온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작품과 예술 세계를 지닌 배우들과 온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박정수 선배님을 비롯해 배우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린다"라고 '칸의 남자'라 불리는 소감을 밝혔다.


임수정은 '장화 홍련'(2003) 이후 김지운 감독과 재회에 칸에 오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임수정은 "김지운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 '장화 홍련'은 정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제게 특별한 영화다. 제가 배우로서 시작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고 너무 행복하게 작업했다"라며 "이후 김지운 감독님과 또 다른 작업을 희망하고 기대했는데 20년 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독님과의 작업을 통해 기대하는 건 저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주신다는 거다. '장화 홍련'과 마찬가지로 20년이 지나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을 감독님의 영화를 찾을 수 있게 돼 큰 영광"이라고 김지운 감독과 다시 만난 소회를 전했다.


'거미집'으로 처음 칸으로 찾은 전여빈은 "캐릭터들의 마음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전여빈이라는 배우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가 동력이 된다. 그런 면에서 미도의 주저하지 않는 선택을 함께 모험하고 싶었다. 거미집처럼 얽혀있는 소동극이 흥미로웠고 나도 플레이를 한다면 정말 신나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박정수는 "사실 저는 같은 배우지만 영화보다는 TV에 특화돼 있다. 영화를 하고 싶어도 드라마에서 절 놔주지 않았다"라며 "작년에 좋은 작업에 불러주셔서 칸까지 오는 행운을 얻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작업하며 정말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했다"라고 말했으며 오정세는 "많은 도움으로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돼 감사하다"라고 칸에 입성한 소감을 전했다.


장영남은 "김지운 감독, 송강호 선배님, 박정수 선생님이라는 큰 산이 있어 나무가 어떻게 자라든 되겠구나 싶었다. 함께 한 모든 분들을 믿고 열심히, 또 즐겁게 일했던 현장이었다. 그래서 칸 까지 오게 돼 무척 자랑스럽다. 이 자리에 있는 순간까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뤼미에르 극장에서 함께 박수 쳐주는 모습들을 보니, 서울 가서도 오랫동안 큰 추억과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라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현재 팬데믹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 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반면 글로벌 OTT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많은 감독들이 영화와 OTT의 경계를 두지 않고 메가폰을 잡고 있다. 김지운 감독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팬데믹 이후 2년 동안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문화가 줄어들었다. 아직 창고에서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많고 모든 투자, 제작사들이 안전한 기획만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표현 범위나 수위가 감독이 욕심껏 해낼 수 있는 지점들이 OTT로 옮겨졌다. 강력하고 모험적인 콘텐츠를 보고 싶은데 영화계는 약간 위축돼 있고 OTT는 모든 걸 해볼 수 있어 관심이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닐까 싶다"라며 "그걸 다 부정할 수 없으니 공존의 방법을 묘색 해야 한다. 극장과 OTT가 공존할 수 있는 장치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드라마 '삼식이 삼촌'을 찍고 있는 송강호는 "제일 중요한 건 예술 작품을 통한 관객들과의 소통이다. 영화, 드라마, 연극 매체에 대한 개념이 자연스럽게 바뀌어가고 있지 않나. 소통이라는 큰 목적을 위해 여러 가지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나중에는 이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시기가 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지운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의 의미에 대해 "지구 반대편 나라의 영화인들은 어떻게 살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서로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영화제의 수상제도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혼자 떨어져 고독하고 창작하고 있는 어떤 감독들에게 '우리가 너희 친구고, 지지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영화제다. 칸 영화제는 그런 믿음과 권위를 주는 것 같다. 팬데믹을 통해 우리가 다 연결 돼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영화제에서 모르는 나라의 감독을 응원하고 지지, 발견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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