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원숭이? 정당한 분노는 의무다 [기자수첩-스포츠]

김태훈 2023. 5. 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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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시우스, 발렌시아 원정서 모욕적 인종차별 피해
분노하며 항거 의지 밝히자 레알-FIFA-축구팬들 강한 연대 형성
'피해자' 압박하며 인종차별 이슈 뭉개려했던 라리가 회장도 사과
ⓒXinhua=뉴시스

경기 내내 모욕적인 인종차별 피해를 당한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3·레알 마드리드)의 정당한 분노가 새 흐름의 물꼬를 트고 있다.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비니시우스는 지난 22일(한국시각) 발렌시아 메스타야 스타디움서 펼쳐진 ‘2022-23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전에서 발렌시아 팬들의 비하로 인해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많은 관중들은 비니시우스를 향해 “멍청한 원숭이” “검은 원숭이”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뱉었다. 그라운드에서 뛰던 비니시우스는 특정 관중을 가리켰고, 설전을 펼치기도 했다. 경기는 10분 가까이 중단됐고, 이날 경기에서 비니시우스는 후반 억울하게 퇴장 명령도 받았다. 실의에 빠진 비니시우스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망친 하루다.


하루의 아픔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피해자’ 비니시우스는 경기 후 자신의 SNS를 통해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 될 수 있다. 프리메라리가에서 인종차별은 이제 일상이 됐다. 사무국의 대처만 보고 있으면 스페인은 인종차별 국가로 보인다”고 사무국의 미온적 태도에 일침을 가하며 스페인까지 끌고 들어갔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하비에르 테바스(63) 회장은 발끈했다.


테바스 회장은 ‘피해자’ 비니시우스를 향해 “스페인도 프리메라리가도 인종차별을 좌시하지 않는다. 인종차별 사례는 극히 드물고, 우리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오히려 반격했다. 며칠 후에는 “라리가를 비판하기 전 문제제기 절차를 따르고, 우리가 해왔던 업무들을 확실하게 파악하길 바란다”고 공격했다.


리그 회장까지 나서 뭉개려는 분위기 속에도 비니시우스는 ‘참전(?)’ 의지를 밝혔다. 비니시우스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맞서 싸우겠다. 이번에도 이렇게 넘어간다면 상처는 반복될 수밖에 없고, 치유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항거’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Xinhua=뉴시스

비니시우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강인도 스페인에서 늘 당하며 살아왔다.


비니시우스 항거 의지에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도 팬들도 움직였다. 레알 선수들은 모두 경기에 앞서 비니시우스 등번호 ‘20’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왔고, 관중들은 전반 20분 기립해 비니시우스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더 나아가 원정 선수들도 뜻을 함께 했다.


FIFA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전 세계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을 평생 금지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인종차별주의는 범죄다. 그들의 나라에서 형사 고발을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스페인 영사관 앞에서는 비니시우스가 겪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리우데자네이루 상징물 ‘구원의 예수상’ 조명을 1시간 껐다. 검지만 당당한 예수를 상징하는 의미다. 또 브라질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연설 도중 비니시우스가 당한 인종차별을 성토했다.


스페인 경찰은 23일 “지난 1월 비니시우스 유니폼을 입은 인형을 고가도로 다리에 목을 매달아 걸어 인종차별을 조장한 용의자 스페인 남성 4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비니시우스가 인종차별을 당한 뒤 국제적으로 인종차별을 반대한다는 요구가 제기된 직후 체포가 이뤄졌다.


연대를 통해 뜨거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각계에서 예사롭지 않은 반응이 나타나자 테바스 회장은 BBC, ESPN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니시우스를 공격할 의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받아들이게 했다면 나의 잘못이다. 사과한다”며 꼬리를 내렸다.


비니시우스의 항거는 축구와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절대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비니시우스의 정당한 분노는 많은 것을 이끌어냈다. 잘못된 것을 당하고 보면서 참는다면 고칠 수 없다. 나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좌시하면 피해자는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다. 성숙한 사회와 세계 질서 속에서 정당한 분노와 행동은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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