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놓은 똥은 치워야지 않것소?"... 영광 주민들 단단히 화난 이유

이태옥 2023. 5. 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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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잇_다] 한수원 '사용후 핵연료 건식저장시설' 반대하는 노병남 영광군농민회장

"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 <편집자말>

[이태옥 기자]

 지난 4월 6일 한수원 이사회가 열리는 한수원방사선보건연구원 사무실 앞에서 영광군민대표들이 ‘고준위폐기물 건식저장시설 계획’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 이태옥
 
서울 한복판에 울려 퍼진 "고준위건식저장시설 반대"

"영광군민들은 오늘 한수원 이사회의 '고준위건식저장시설' 논의 자체가 무효임을 분명히 선언했어요. 지역주민들 의사는 한 번도 묻지 않고 서울 한복판 즈그덜 사무실에 숨어 쥐새끼처럼 방망이 뚜드리면서 백날 결정해 보씨요. 우리가 가만 있나!"

서울 중구 한복판이 낯익은 영광 사투리로 쩌렁쩌렁하다. 30년 넘게 한빛핵발전소와 공존하며 싸워온 농사꾼이자 베테랑 탈핵운동가 노병남 영광군농민회장 목소리다. 

4월 4일 '탈핵 잇_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노병남 회장은 대뜸 내일모레 4월 6일 "서울로 데모하러 온다"고 했다. 조은숙 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에게 연락해 부랴부랴 일정을 잡고 4월 6일 오후 1시 중구 서소문로 한수원 '방사선보건연구원'이 있는 센트럴타워로 달려갔다.

'한수원은 영광군민 동의 없는 한빛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계획의 이사회 상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항의 집회를 시작하자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도 멈췄다.

한빛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아래 민간감시기구) 위원들과 영광군의회 의원, 영광지역주민 15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집회 사회를 맡은 노병남 회장은 '임시'라는 이름을 달고 '영구'핵폐기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지역주민 의견 한마디 듣지 않고 한수원 이사회가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도, 정의도, 자유도 아닌 비열한 폭력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영광은 풍성했던 어장도 포기하고 핵발전소 지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전기를 생산한 죄밖에 없어요." 

마이크를 넘겨받은 영광주민은 "1986년 한빛1호기를 시작으로 2002년 한빛5·6호기까지 건설되면서 영광군민들의 행복은 짓이겨졌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민어, 조기로 유명한 칠산 앞바다 어장은 풍성했고 가마미 해수욕장은 여름이면 피서 인파로 넘치는 아름다운 해변이었어요. 그런데 핵발전소가 들어서고는 어느 날부터 잠을 못 자요. 2000년대 초반 짝퉁 부품 사건으로 심장을 오그라들게 하더니 어느 해에는 핵발전소 안에 망치가 들어있다고 하질 않나, 구멍이 100개도 넘게 발견됐다고 하질 않나? 생각만 해도 오싹한 사건 사고들이 줄줄이 터졌어요.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사업자인 한수원이 고준위 핵폐기물까지 떠안으라는 결정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날 발언에 나선 영광주민들은  "방사선 환경영향평가는 강화됐는데 왜 '해양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항목 자체가 빠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영광군이나 의회에서 반드시 해양 환경영향평가를 추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빛 1~6호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배수로 이미 영광 앞바다는 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 마을엔 벌써 한수원이 관광버스를 돌리기 시작했어요"

한빛핵발전소 인근 마을에 사는 주경채 민간감시기구위원은 한수원 '고준위핵폐기장 대응팀'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벌써 우리 마을에는 관광차가 가동되기 시작했어요."

한수원이 대절한 관광버스에 마을주민들을 태워 관광지와 연결된 핵발전 시설을 견학시키며 고준위 건식저장의 안전성을 선전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다른 지역에 1차 견학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요즘 잘 나가는 순천만을 다녀왔더라고요."

주경채 위원은 "30년 넘게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 살면서 한수원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갈가리 찢고 서로 싸우게 하는 모습을 진저리치게 봐왔다"라며, 존재 자체가 불의한 핵발전소와 추가시설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노병남 회장의 표정이 황당하다.

"참내 오늘 얼척 없는 일을 다 당하네요. 제 뒤통수에서 누가 동영상을 찍고 있길래 영광군이나 의회 쪽 직원인 줄 알았어요. 그래도 하도 열심히 찍길래 가서 물어봤더니 한수원 직원이랍니다. 주경채 위원이 말한 한수원 홍보팀이 이렇게 백주대낮에 대놓고 활동을 해요."

노병남 회장은 당장 파일을 지우라고 요구했고 지우겠다는 말만 남긴 한수원 직원은 어느새 사라졌다. 
 
 생명평화탈핵순례단이 한빛핵발전소 앞에서 탈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원불
 
영광초등학교 앞 게시대에는 '핵발전이 안전하다'는 한수원 홍보문구가 10년 내내 걸려있고 심지어 불갑사 주변 나무이름표에도 한수원 이름을 떡하니 붙여 놨단다. 지역주민 안전을 위해 사용하라는 세금이 사업자 한수원 홍보비로 줄줄 새어나가고 있는 증거는 영광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알 수 있다. 

비가 그치더니 일기예보대로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다. 하루 전만 해도 평균기온보다 높아 방심하고 남도 기온에 맞춘 영광사람들 옷차림이 못내 걱정이다.

"군민동의 없는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반대한다."

노병남 회장이 목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치며 추위를 털어낸다.

"다시 한번 선언합니다. 오늘 한수원 이사회의 '고준위건식저장시설' 건설에 대한 결정은 무효이고 영광군민들은 끝까지 막아낼 것입니다."

항의서한을 한수원 측에 전달한 영광주민들이 버스에 오르고 영광으로 출발했다.  한수원의 '뒤통수 치기'가 예정돼 있음을 알기에 영광으로 내려가는 길, 현장 투쟁에 대한 논의가 무성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오후 뉴스엔 한수원 이사회가 '한빛·한울 핵발전소 내 핵폐기물 임시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의결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한수원과 정부가 '고준위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을 짓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전국 곳곳을 후보지로 정했지만 2004년 '부안 핵폐기장반대투쟁'처럼 어마어마한 반대에 부딪혀 전국 어디에도 짓지 못했잖아요.

영구처분장에 대한 계획조차 없는 상황에서 핵발전소 부지 내에 임시저장고를 짓는다는 의미가 뭡니까? 바로 그 자리가 영구처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영광을 10만 년, 100만 년 동안 핵무덤 만들겠다는 거예요. 지난 40여 년간 전기생산을 위해 희생을 치르며 핵발전소를 품고 사는 지역에 또다시 핵폐기물까지 떠안으라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노병남 회장의 분기탱천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이후 '한빛원전 고준위핵폐기물 영광군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는 4월 26일 한빛핵발전소 정문 앞에서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설치 반대 영광군민규탄대회'(아래 규탄대회)를 열었다. 

"40년 희생의 대가가 고준위 핵폐기장이라고요?"

4월 서울집회 이후 한 달 만인 5월 6일영광에서 노병남 회장을 만났다. 만나기로 한 영광군농민회 사무실은 농민회관 3층에 있었다. "4월 26일 집회는 어땠어요?"라고 운을 뗐다. 

바쁜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규탄대회에는 600여 명의 영광주민들이 모였다. 그만큼 고준위핵폐기장 건식저장 시설에 대한 반감의 방증이다. 영광은 2002~2003년까지 핵폐기장 투쟁을 벌여 막아낸 경험이 있다. 물론 김종규 부안군수가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하는 바람에 핵폐기장 투쟁이 부안으로 넘어간 이유도 한몫하긴 했었다.

"아무래도 군의회가 주축이 된 공대위가 주관한 행사다 보니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이 모였어요. 게다가 2025년, 2026년 40년 설계수명이 만료돼 폐로가 예정됐던 한빛1·2호기 수명연장 문제까지 발등에 떨어진 현안들이 심상치 않아요."
 4월 26일 부지깽이도 한 손 거든다는 봄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600여 명의 영광주민들이 한빛핵발전소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영광군농민회 깃발 든 이가 노병남 회장.
ⓒ 원불교환경연대
 
핵발전 부흥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 1월 12일 핵발전소 적극 활용, 신재생 합리적 보급, 석탄 감축 유도 등의 방향을 담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전원별 비중(실효용량 기준)을 현재 LNG 35.9%, 석탄 32.8%, 핵발전 21.5%, 신재생 6.1%에서 2036년 LNG 44.7%, 핵발전 21.9%, 석탄 18.5%, 신재생 10.0% 등으로 구성했다. 발전소별 수명 만료를 감안하면 핵발전 0.4% 증가는 높은 수치다.

특히 오는 2025년까지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2033년 신한울 3·4호기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수명 만료로 전력수급계획에서 제외했던 한빛 1·2호기 등 핵발전소 11기가 다시 포함됐다.

2년 전 수립했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2023년과 2024년 고리 2·3호기, 2025년과 2026년에는 고리 4호기와 월성 2호기에 한빛 1·2호기 등 2034년 한빛 3호기까지 원전 11기가 수명만료로 공급물량 제외설비에 포함됐었다. 영광군은 전문기관 용역을 통해 한빛 1·2·3호기 폐로 이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TF팀을 만들기도 했었다. 

"4월 6일 한수원 항의집회에서 주경채 위원도 말했지만, 한수원은 이미 대외협력처에 '수명연장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립을 추진할 전담팀(PA)'을 만들어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어요. 올 상반기에 한빛핵발전소측도 규제기관인 원안위에 수명연장 신청서를 제출할 겁니다."

4월 7일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이 낸 '한수원은 영광핵발전소 독단적 결정,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긴급성명서에도 기존 핵발전소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서둘러 결정하는 이유로 윤석열 정권 하에서 적극 추진되는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지적하고 있다.

영광에 한빛핵발전소가 들어선 지 37년째다. 1986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총 6기 가동으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모두 격납건물 옆 수조에 습식 저장돼 있다. 전국의 25기 발전소가 고준위핵폐기물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한빛핵발전소의 현재 수조 포화율이 75%를 넘어 2030년이면 포화상태가 된다는 것이 사업자 한수원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위험하게 수조에 관리하는 것보다 영구처분장을 마련할 때까지 임시 건식저장시설이라도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노병남 회장은 어떤 입장인지 물었다.

"화장실 없는 집을 지어놓고 임시화장실은 짓고 살다가 40년 된 낡은 집을 부술 때가 되니 추가로 임시 화장실을 짓고 10년 더 살겠다는 짓거리에요. 싸 놓은 똥은 치워야 되지 않것소? 핵폐기물 처리 대책도 없이 오로지 핵발전을 중심으로 전국민들에게 전력을 수급한 대가를 왜 핵발전소 지역이 또다시 떠안아야 합니까?

고준위핵폐기물 중 '우라늄234' 같은 핵물질은 반감기만 24만 년이 넘어요. 더군다나 '고준위건식저장시설'은 언제까지 운영한다는 기간도 설정하지 않았어요. 말만 '임시'지 '영구처분장'이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예요.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시설 문제는 일단 '탈핵'이 전제가 돼야 해요. 안 그러면 핵발전소 내에 계속 추가시설이 들어서고 지역은 더 위험에 빠지게 돼요."

전제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한수원이 막무가내로 지역주민 의견수렴과 국민적 동의도 없이 기존 핵발전소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서둘러 결정하는 이유는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는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맞물려 있다. '탈탈핵(탈원전 폐기)'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정권은 안전성 강화로 설계비용이 오르면서 신규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니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으로 방향키를 돌렸다.

"고준위건식저장시설은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한 대안이에요. 핵발전을 멈추고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핵진흥을 하겠다는 것이 전제인데 지역주민들의 동의가 되겠습니까? 추가 핵시설은 절대 안 돼요! 한수원도 추가시설은 하지 않겠다고 그동안 누누이 약속을 했고요.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집단이긴 하지만요. 이제 투쟁은 시작됐어요."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한빛원전 전경. 1986년 상업 운전에 돌입한 한빛 1호기부터 6호기까지 모두 6기의 원전이 있다. 이들 원전은 2025년 한빛 1호기부터 순차적으로 40년의 설계 수명(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된다.
ⓒ 한국수력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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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원전 1, 2호기 수명연장 결정은 정부의 정책 폭력" https://omn.kr/23j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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