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尹 강조한 대·중기 '원팀' 출발은 기술탈취 근절부터

최동현 2023. 5. 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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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 11시께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근 인터뷰한 인공지능(AI) 업체 대표였다.

자신이 인터뷰때 비판한 한 대기업 실명이 행여 기사에 담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늦은 밤 전화벨을 울린 것이다.

인터뷰 상당 시간을 할애해 아이디어를 도용당한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가 돌연 방어모드로 태세전환한 이유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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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격려사를 마친 뒤 주먹을 쥐고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평일 오후 11시께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근 인터뷰한 인공지능(AI) 업체 대표였다. 자신이 인터뷰때 비판한 한 대기업 실명이 행여 기사에 담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늦은 밤 전화벨을 울린 것이다. 그는 "이니셜로라도 기업명을 절대 적지 말아달라"며 연신 부탁했다. 인터뷰 상당 시간을 할애해 아이디어를 도용당한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가 돌연 방어모드로 태세전환한 이유는 하나다. 중소기업이라서다.

그는 한 금융분야 대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사가 개발한 사업모델을 도용당했다고 했다. 대기업은 만날 때마다 방대한 자료를 요구하더니 정작 계약서 작성은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결국 조직개편 등을 핑계로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그로부터 몇개월 뒤 해당 대기업이 유사 사업모델을 출시했다고 한다. 그는 "소송도 생각해봤지만 보상금보다 비용이 더 들고 무엇보다 업계에 안좋게 찍히면 다른 사업마저 무산될까봐 포기했다"며 씁쓸해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아이디어 탈취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중소기업 기술침해 피해 건수는 280여건, 피해액만 2827억원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중소기업 기술탈취 관련 상담만 매년 6000건씩 접수된다. 현재도 롯데헬스케어와 알고케어, 신한카드와 팍스모네, LG생활건강과 프링커코리아 등이 기술분쟁을 벌이고 있다. 처음엔 협업으로 시작했다가 싸움으로 귀결됐다는 점이 비슷하다.

분쟁 기업 간 중재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대가 법정으로 옮겨진 순간 중기·스타트업은 이미 진 싸움이다. 막대한 자금과 탄탄한 법무 조직을 갖춘 대기업에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긴 소송 과정을 버틸 재간은 없다. 중소기업이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자료 대부분을 분쟁 당사자인 대기업이 들고 있어 증거 확보도 어렵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도 잦다. 최근 4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특허분쟁의 경우 중소기업 패소율은 2018년 50%에서 2019년 60%, 2020년 71.4%, 2021년 75%로 매년 증가 추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중소기업인 대회'에서 대·중소기업의 '원팀'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우린 같은 팀"이라 말하며 뒤에서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빼앗아가는 포식자 같은 기업이 존재하는 한 원팀 정신은 공허할 뿐이다.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한 공정한 룰이 우선 필요한 때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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