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존경받는 은행의 조건

심나영 2023. 5. 2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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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banco)는 이탈리아어로 책상이란 뜻이다.

이 방카는 훗날 은행(bank)의 어원이 됐다.

금리 인상기에 이자 장사를 한다는 비판 탓에 은행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21세기 존경받는 은행의 조건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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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banco)는 이탈리아어로 책상이란 뜻이다. 한국인에겐 붉은 돔의 두오모로 각인된 이탈리아 피렌체. 1396년, 이곳에서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길거리에 방카 하나를 펼쳐놓고 대부업을 시작했다. 이 방카는 훗날 은행(bank)의 어원이 됐다. 중세까지만 해도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건 죄악이었다. 이 고정관념이 뒤집힌 건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으로 권력을 사 종교와 정치를 넘나들고, 예술과 학문을 부흥시켰다. 돈으로 정적을 무너뜨리고 용병을 사 영토를 늘렸다. '메디치 집안보다 높은 것은 구름 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류 역사에서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사회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건 예술가들을 후원해 르네상스 시대를 연 덕분이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의 마지막 상속녀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전 재산을 시에 기부해 만들어진 곳이다.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거장의 작품을 주저없이 내놓으면서도 그녀가 걸었던 조건은 단 한가지. 피렌체 밖으로 작품을 반출하지 말라는 것 뿐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은 지금도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메디치 가문이 얼마나 존경받는 뱅커였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6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금융업은 발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예 다른 차원에 들어섰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메디치 가문이 등장하기 전 중세 사회로 돌아가버렸다. 금리 인상기에 이자 장사를 한다는 비판 탓에 은행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고객 돈을 인질로 삼은 횡령도 끊이지 않는다. 아시아경제 단독보도 '신한은행 강남 지점서 수억원 횡령 사고'(5월 9일)에서 알수 있듯이, 지난해 우리은행 700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 이후에도 같은 범죄는 끊이질 않고 있다. 사람들이 은행을 떠올리면 조소와 불신이 앞서는 이유다.

21세기 존경받는 은행의 조건은 뭘까. 객관성을 담보하려 챗GPT에게 물었더니 안전성과 투명성을 가장 먼저 꼽았다. 고객 돈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공정한 금융 거래를 해야한다는 게 요지였다. 이 바닥 용어로는 '은행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개선'과 직결되는 문제다. 보통 사람들은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알고 보면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25일 열린 제12회 서울아시아금융포럼('바람직한 금융사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시스템')에서도 이 연결고리가 다뤄졌다.

"라임·옵티머스·DLF 같은 사모펀드는 충분한 위험 고지 없이 판매됐으며 소비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판매과정에서 운영 규정 같은 내부통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이 발표에서 언급된 묻지마 사모펀드 사태 배경으로 지주 회장의 연임을 위한 단기 실적이 손꼽힌다. 경영진이 장기실적으로 평가받는다면,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사외이사들이 있다면, 규정을 명시하고 책임자를 미리 정해놓는 기준이 만들어진다면, 이런 상품은 은행 창구에 다신 발을 못 붙이게 된다. 횡령 사고도 투명하고 역동적인 조직에선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개선=금융 소비자 보호'라는 공식을 은행들이 증명할 때 사람들이 은행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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