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처음 아니었는데…태양광 산사태, 주범은 벌목과 흙다짐?
지난해 8월 9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서는 계속된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했다.
토사가 쏟아지면서 70대 주민 1명이 매몰됐다가 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고, 인근 주택도 두 채가 파손됐다.
축구장보다 더 넓은 약 9,600㎡의 토지가 피해를 봤던 당시 산사태는 인근 산지 태양광 시설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태양광 시설에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산사태를 초래했던 것일까.
최근 한국 치산 기술협회와 강원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의 전문가들은 현지 조사 등을 거쳐 횡성 산사태의 구체적인 원인을 설명한 논문을 '산사태(Landslide)' 국제 저널에 발표했다.
과거 폭우 땐 산사태 발생 없어
연구팀은 인근 횡성군 갑천리의 수자원관리정보시스템 관측소에서 얻은 시간별 강우량 자료를 분석했다.
비는 지난해 8월 7일 오후 6시에 시작됐고, 산사태가 일어난 9일 오전 11시 25분까지 누적 강우량은 280㎜에 이르렀다.
이 같은 강우량과 지속시간은 산사태 관련 '강우 강도-지속 시간' 임계값을 초과한 것으로, 산사태가 발생할 조건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산사태 당시 강우 강도는 과거 사례보다 훨씬 높기는 했다.
그렇지만 태양광 시설 설치 이전에도 이 임계값을 초과한 사례가 적어도 두 차례 있었고, 시설 설치 후에도 매년 임계값을초과했지만, 실제 산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산사태가 폭우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게 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태양광 시설에서는 나름대로 배수시설을 설치했다.
경사면에는 수로관을 설치했고, 잡초 성장을 막는 비닐 멀칭으로 지표면 침식 방지와 빗물 배수가 잘되도록 했다.
사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석축을 쌓고, 야자 그물도 덮었다.
벌목과 흙 다짐이 토양 특성 바꿔 놓아
2018년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서는 삼림 벌채(벌목, 뿌리 뽑기 등)가 있었고, 토양 다짐 등 지형 변경이 진행됐다.
벌목으로 인해 숲의 '강우 차단 손실(rainfall interception loss)'이 줄었다.
나무가 임시로 빗물을 머금어 지표면에 빗물이 도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강우 차단 손실인데, 벌목 탓에 빗물이 그대로 다 지표면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태양광 시설 현장에서는 흙을 다진 탓에 토양층이 더 치밀해지면서(용적 밀도가 높아지고, 공극률은 낮아짐) 표층의 빗물 침투율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현장에서 교란되지 않은 토양 샘플(30㎝ 깊이)을 채집해 실험실에서 분석한 결과, 토양 공극률이나 침투율 등이 숲이 우거진 인접 경사면 토양보다 훨씬 낮았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모듈 가운데 일부는 계곡(산사태가 발생한 지점)을 향하고 있어 과거보다 더 많은 빗물을 계곡으로 집중되도록 했다.
배수 시스템 일부 구간에는 토사가 퇴적돼 제 역할을 못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 부실한 태양광 시설
그라운드 앵커(ground anchor)나 지하 타설 공법 등과 같은 보강 공법 없이 지반 위에만 타설한 것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보강 부족은 사면 불안정성을 증가시키고, 많은 비가 내릴 때 사면 파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여러 원인이 더해지면서 태양광 시설의 계곡 측 사면과 오목한 숲 사면 사이의 경계에서 1차 사면 파괴가 시작됐고, 내리막으로 산사태가 전파됐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태양광 시설 현장에서는 다져진 지표면의 낮은 투과율 때문에 태양광 모듈과 주변 산 경사면에서 유입되는 많은 양의 물이 흘러들면서 계곡 쪽 경사면을 침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계곡 쪽 경사면에서는 많은 '파이핑 현상(piping erosion)'도 관찰됐다. 태양광 모듈을 떠받치는 지반 아래 토양이 침식돼 파이프 모양의 물길이 뚫리는 현상이다.
이렇게 사면이 붕괴한 뒤 밀려 내려온 토사 더미는 집의 위치를 15m 이동시킬 정도로 강한 힘을 발휘했다.
연구팀은 "(태양광 시설 설치 등) 삼림 벌채와 토지 개간에 따른 재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배수시설과 사면의 안정성을 점검하고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부, 태양광 시설 1408곳 점검
산업부는 안전 관리가 미흡한 태양광 설비 운영자에게 보완 조치를 하라고 요구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발급 중단 등 제재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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