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사람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영국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주인공은 대책 없는 10대들이다. 제임스는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 믿고 있고, 앨리사는 사람들을 열 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 좌충우돌하는 두 사람이 동반 가출했으니 그 앞날이 순탄할 리 없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앨리사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앨리사는 엄마와 이혼 후 따로 살아온 아버지를 “로빈 후드 같은 사람”이라고 믿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찌질한 동네 건달일 뿐이다. 오랫동안 못 보고 살면서 환상을 키워온 것이다. 앨리사는 뒤늦은 깨달음을 토로한다.
“사람은 정답이 될 수 없어요(People can’t be answers). 더 많은 질문을 만들 뿐이죠.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요. ‘아빠는 왜 이렇게 형편없지?’”
완벽한 인간은 없는데도 누군가를 이상적인 존재로 여긴다는 건 스스로의 눈을 가리는 일이다. 그렇게 사람을 정답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대신 ‘피리 부는 사나이’ 뒤만 졸졸 따라가면 된다.
그래도 좌표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물론이다. 단, 주의할 필요가 있다. 좌표를 가끔 재조정해야 한다. ‘어제의 지도로 오늘의 길을 찾아선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삶은 수학 문제 푸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답이 뭔지 아는 것보다 자기 힘으로 그 답을 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하나 더. 당신이 정답이라 여기는, 바로 그 사람도 힘들어진다. 정답도 아닌데 정답 노릇을 해야 하니 얼마나 부담스럽고 피곤하겠는가. 시즌 2에서 제임스는 앨리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뭐가?” “널 정답으로 삼으려고 했던 거.”
누군가를 정답으로 착각했다가 실망하고, 다시 다른 정답을 좇아 헤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누구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 진정한 만남은 시작된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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