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외교 전설’ 키신저가 말하는 리더십

김남중 2023. 5. 2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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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헨리 키신저 리더십
헨리 키신저 지음, 서종민 옮김
민음사, 604쪽, 3만3000원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헨리 키신저는 미국 외교정책의 대부이자 세계의 지도자들과 교류해온 국제관계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를 하다가 1969년부터 정부에 참여해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내며 세계의 리더이자 조정자인 미국의 국제외교를 총괄했다. 1977년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후에도 미국 정부의 고문·특사, 각국 정부 자문역, 주요 지도자들의 친구로 활동했다.

‘헨리 키신저 리더십’은 1923년생으로 올해 5월에 만 100세가 된 키신저가 99세에 쓴 책이다. 키신저는 “진정 원대한 정책을 펼칠 지도자가 하나라도 남아 있는가?”라는 아데나워의 질문을 다시 던지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 헌신성과 통찰력으로 길을 찾아갔던 20세기 지도자 6명의 생애와 리더십을 조명한다. 콘라트 아데나워 전 서독 총리,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그들이다.


대부분은 누구나 알만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1970년부터 1981년까지 이집트 대통령을 지낸 사다트는 생소하다. 키신저는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룩한 사다트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서 사다트의 리더십을 재조명한다.

“지역 분쟁과 외교적 교착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시기에 사다트는 전례 없는 계획과 대담한 실행력으로 평화의 비전을 펼쳐 보였다… 당대 중동의 다른 어떤 인물도 이에 비견할 만한 열망을 공언하거나 이런 열망을 실현할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래서 사다트의 짧은 이야기는 역사 속 놀라운 순간으로 남아있다.”

사다트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조약을 이끌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키신저는 1977년 사다트의 이스라엘 예루살렘 방문을 상세하게 비추면서 “평화는 역사를 다시 쓰는 행위입니다. 평화는 모든 야심과 변덕에 맞서는 거대한 싸움입니다”라고 한 사다트의 철학을 들려준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중동을 일그러뜨리고 이집트를 말려 버린 이념을 초월했다”며 사다트의 리더십을 ‘초월의 전략’이라고 묘사했다.

아시아 지도자 중에는 리콴유에 주목했다. 키신저는 “리콴유의 업적은 이 책에서 다루는 나머지 지도자들과 확연히 다르다”면서 1965년 8월 독립 싱가포르의 지도자가 된 리콴유가 책임져야 하는 국가는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였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국민을 이루는 재료와 기본적인 요소들이 없었다. 동질적인 인구, 공동 언어, 공동 문화, 공동 운명이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시작한 리콴유는 말레이반도 최남단의 말라리아가 들끓던 섬을 한 세대 만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키신저는 리콴유의 노련하고 현실주의적 관점을 높게 평가하는 한편 많은 탈식민지 지도자들과 달리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국내의 다양한 공동체 간 싸움을 부추기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리콴유는 상충하는 민족 집단들 사이에 비전과 성취감을 공유하며 국가적 일체감을 만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또 중국의 부상이 중국과 미국에 안겨줄 딜레마를 일찍이 예견하고 두 나라 사이에서 공존의 길을 모색했다.

키신저는 지도자의 리더십에서 인격을 중시하는데, 거의 반세기 동안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는 리콴유에 대해 “그는 사교적인 잡담을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회고했다. “내가 싱가포르를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그는 한 번도 나를 사저로 초대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초대받았다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유명한 대처는 역사적 평가에서 논란이 있는 인물들이지만 키신저는 이들의 외면된 측면을 부각한다. 닉슨 대통령실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던 키신저는 닉슨이 냉전이 완연히 무르익은 시기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중동 평화 협상을 추진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며 세력균형을 평화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평형의 전략’을 추구했다고 평가했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대처는 이 책에 다룬 유일한 여성 지도자다. 키신저는 40여년간 이어진 우정을 통해 그녀의 접근 방식을 목격할 수 있었다며 대처의 냉정한 정책 뒤엔 늘 헌신과 사랑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대처를 비판하는 이들은 종종 그녀의 강인함에 가려진 인간적인 자질을 보지 못한다… 그녀가 권력을 행사한 방법과 그것을 통해 일군 성취는 오직 조국과 국민을 향한 사랑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키신저는 대처가 여성이고 중산층 출신으로 영국 정계의 마이너리티였으며, 대처가 물려받은 1970년대의 영국이 장기침체에 빠진 최악의 시기였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철의 여인’이라고 불렸던 그녀의 리더십이 영국을 부활시켰다고 설명했다.

키신저가 진정한 리더십으로 제시한 여섯 명의 지도자들에게는 상황을 꿰뚫어 보는 현실감각, 대범하고 강력한 전망, 흔들리지 않는 의지, 국가에 대한 헌신 등이 공통적으로 발견되지만 그 모든 자질들은 ‘당대의 상황과 통념을 초월하는 힘’으로 요약된다.

“이상과 헌신으로 상황을 초월하는 사람인가? 역사 속 지도자를 판단하는 이 기준은 지금도 변함없이 적용할 수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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