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로도, 장부가로도 입맛대로…랩상품 운용 불법행위 만연
KB·하나증권, 머니마켓랩·신탁 상품 운용 과정에서 불법 의혹
KB증권과 하나증권이 머니마켓랩(MMW)·신탁 상품 운용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두 증권사의 불법 행위를 포착하고 집중검사를 예고했다.
두 증권사가 받고 있는 혐의는 상품 설명서와 만기가 다른 채권에 투자한 데 이어 채권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해 자전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증권 업계에서는 이번 의혹이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랩·신탁 자산에 대한 모호한 평가기준과 여의도 증권가에 만연한 구습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채권브로커와 랩·신탁 운용 관계자의 유착관계 의심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번 의혹의 핵심은 랩·신탁 상품에 편입한 채권의 평가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운용 주체는 다르지만 랩 상품과 같은 성격인 펀드는 2000년 7월부터 채권 자산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도록 했다. 채권 가격 산정 때 시장 상황과 발행기업의 신용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시장가격과 장부가액(매입하는 시점의 가격) 사이의 지나친 괴리로 채권가격이 과도하게 저평가됐을 때 투자자가 환매를 요청한다면 해당 손실 대부분이 투자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규정 적용 대상에 랩·신탁 상품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랩 상품 운용 때 시가로 자산을 평가할지 장부가로 평가를 할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됐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은 모호한 규정을 자의적으로 이용했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암묵적으로 3개월짜리 단기 랩 신탁 계좌에 1년 이상의 장기 채권이나 기업어음(CP)을 편입한 후 금리 하락기에 수익률을 더 높여 기관 영업에 활용해왔다. 편입 채권을 장부가액으로 기재하다 보니 증권사는 고객들에게 들키지 않고 채권브로커를 통해 단기 상품 대신 장기 채권을 받아 랩 상품에 편입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여의도 채권시장에 뿌리박힌 나쁜 구습”이라며 “장부가 평가가 가능하다 보니 자연스레 채권브로커들과 랩·신탁 운용 관계자들의 유착관계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에서 수익이 나면 개인 성과급으로 연결된다"며 "고객 유치도 결국엔 금리 싸움이다 보니 증권사들도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고객을 더 끌어들이려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금리 상승기에 터졌다. 채권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 가격은 급속도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발(發) 단기 금융시장 경색이 심화되면서 CP 금리는 5%대로 치솟고 장기 채권 금리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만큼 치솟았다. 채권의 시가평가액이 쪼그라들면서 장기 채권이나 CP를 편입한 랩 상품의 경우 꽤나 큰 손실을 기록했다.
KB증권이 불법 자전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은 이 지점이다. 고객에게 발생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하나증권에 있는 KB증권 신탁계정으로 손실난 채권을 장부가격에 매입해 고객에겐 손실이 없게끔 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사가 내부 계좌로 증권을 반복적으로 매매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하반기 금리가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채권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만큼 KB증권과 같은 행위를 한 증권사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KB증권은 계약상 기간이 다른 자산을 편입할 수 있다고 안내했기 때문에 불법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내부 계좌로 거래한 것은 손실을 덮을 목적이 아니었으며, 중소형 법인의 유동성을 지원하려는 차원이었다고 반박했다. KB증권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말~12월 초 유동성 지원을 할 때도 단기 자금 유동성 문제로 급여 지급이나 잔금 납입이 어려운 경우 등을 먼저 고려해 중소형 법인 위주로 유동성을 공급한 사실이 있다”라며 “시기적으로 시가평가로 손실을 인식한 것은 연말 회계결산 때로 시기적인 차이도 있다”고 일축했다.
금감원 “증권사 순차적으로 검사 진행”
금융감독원은 오는 26일까지 하나증권을 검사한 후 KB증권에 대한 수시검사에 돌입한다. 이 외에도 검사 대상으로 선정된 주요 증권사를 순차적으로 검사한다는 방침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하나증권과 KB증권과 유사한 행위가 증권 업계에서 만연한 만큼 검사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랩과 신탁 시장의 불건전한 영업관행 등에 대한 테마검사를 2023년 주요 검사계획으로 선정해 현장검사를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랩·신탁 시장 내 채권파킹이나 자전거래 등 불건전 영업행위나 위험 요인이 있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들이 과도한 목표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단기 랩 상품에 고금리 장기 채권 등을 편입한 사례가 있다”라며 “이럴 경우 자금시장 경색이나 대규모 환매가 발생했을 때 불법·편법적인 방법으로 편입 자산을 처분할 가능성이 큰데, 이는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라고 말했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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