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의 흑역사’ 작전은 어떻게 진화했나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3. 5. 2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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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 계좌로 역할 분담하고 무자본 M&A
장기 시세 조작·CFD까지 수법 고도화

1988년 우리나라 증시 사상 첫 불공정거래로 적발된 ‘광덕물산 사건’ 이후 35년이나 지났지만 ‘작전 세력’의 주가 조작은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법이 날로 진화했다. 광덕물산 사건이 불거진 것은 당시 한일증권 영업부를 특별 검사하던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이 누군가가 가명 계좌로 광덕물산 주식 50만주를 입고해 매도한 사실을 포착하면서다. 광덕물산 발행 주식 전체의 8%가 넘는 물량이었다. 조사 결과 당시 광덕물산 대표이사 회장이던 故 김성기 씨가 1986년부터 2년간 유·무상증자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팔아 2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서울 서초동 30평대 아파트값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결국 김성기 씨는 내부자 거래를 통해 얻은 매매 차익을 광덕물산에 반환하고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증권 범죄 개념이 부족했던 한국 시장에 불공정거래 심각성이 처음 알려졌고, 증권감독원 내 조사 체계가 구축된 계기였다.

개인이 일삼던 주가 조작은 1990년대까지 점차 ‘세력’으로 조직화됐다. 1991년에는 증권사 직원들이 증권 브로커와 공모해 자신이 일임받아 거래하던 증권 계좌에서 가장·통정거래(잠깐용어 참조) 등 시세 조정을 한 ‘진흥상호신용금고 사건’이 터졌다. 1992년 ‘신정제지’가 상장 3개월 만에 부도로 상장폐지된 사건에는 회계사 등 전문직들이 가담했다.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 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H투자 자문 업체 라덕연 대표가 지난 5월 1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1990년대 작전 세력 본격 부상

180배 급등 후 급락 ‘리타워텍’ 상폐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작전 형태가 본격적으로 분업화·전문화됐다. 증권사가 다른 증권사나 기관 투자자의 펀드매니저와 손잡고 시세 조작에 가담하는 식이다. 1995년 적발된 ‘동양섬유산업·부광약품 사건’은 초기 작전의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94년 서울의 한 연합주택 조합장이었던 박 모 씨는 개인 투자금과 횡령한 주택조합 공금 20억원을 작전에 투입했다. 박 씨가 본인 명의와 차명 계좌 수십 개를 만들어 동양섬유산업에 고가 매수 주문을 내면, 펀드매니저 2명이 주식을 매도해 거들었다. 동양섬유산업 주가는 1만2000원에서 2만5800원까지 올랐고 박 씨는 그 과정에서 막대한 차익을 냈다. 부광약품에 투자할 때는 고려CM생명보험, 중소기업은행, 한국장기신용은행, 대한지방행정공제회 등 4개 기관 투자자까지 끌어들였다. 금품을 주고 주식을 고가에 매도하도록 해 판을 키웠다. 부광약품 주가 역시 44일간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다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 들어서는 코스닥 광풍과 함께 작전 세력도 급격히 늘었다. 인터넷으로 주식 매매를 할 수 있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덕분이다. 조직화한 세력들이 신약·신기술 개발 같은 호재성 소문을 띄워 주가 조작에 이용한 경우다. 회사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던 1990년대보다 더 지능화된 방식이다.

‘보물선’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주가를 띄우다 2001년 적발된 ‘삼애인더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기업 ‘리타워텍’은 3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5개월 만에 주가가 180배가량(2000원 → 36만원) 폭등했다가 급락했고 결국 상장폐지됐다. 당시 금감원이 오너였던 최유신 씨(미국 이름 찰스 스팩맨)가 주식교환 방식으로 수월하게 자회사를 인수하려 시세 조정을 부탁했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실 등을 밝혀냈지만 외국 국적이던 최 씨는 이미 해외로 출국한 후였다.

이외에도 2004년에는 상장 회사가 주금을 아예 납입하지 않은 채 주식을 발행해 시장에 유통시킨 사상 초유의 ‘유령주 파동’ 사건이 벌어졌다. 2005년 전후로 엔터테인먼트 테마주의 주가 조작 사건도 있었다.

루보 900원 → 5만원 → 900원

주가 조작 ‘완결판’ UC아이콜스 사건

2008년에는 다단계 주가 조작 사건 ‘루보 사태’가 터졌다. 루보 사태는 다단계 업체 제이유그룹 경영진이 중심이 돼 자동차 베어링을 만들던 루보 주가를 주당 900원에서 5만원 수준까지 끌어올린 사건이다. 루보는 2006~2008년 주가가 무려 50배 넘게 폭등했는데도 한 번도 이상급등 경고를 받지 않았다. 수백 개 차명 계좌로 매일 2~3%씩 천천히 주가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소규모로 지인끼리 진행하던 일반적인 ‘작전’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수법으로 최근 소시에테제네랄(SG) 사태와 비슷하다.

‘UC아이콜스 사건’은 온갖 작전 세력이 동원된, 주가 조작의 ‘완결판’이었다. 무자본 인수합병(M&A), 불성실 공시, 대주주 횡령, 작전 전문 브로커, 명동 사채업자, 투자 회사 개입 등 온갖 종류의 작전과 세력이 총망라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다. 동시에 파생상품을 겨냥한 주가 조작도 늘어났다. 2009년에는 주가연계증권(ELS) 만기 시점에 거래 담당자가 시세를 조종, ELS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수익 22% 대신 25%의 손실을 떠안게 된 사건이 터졌다. 2010년 11월 발생한 ‘11·11 도이치 옵션 쇼크’는 일부러 주가 폭락을 유도한 사건이었다. 도이치증권이 옵션만기일 장 마감 10분 전 2조4400억원어치 주식을 대량 처분해 코스피가 10분 만에 5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도이치증권은 주가가 떨어지면 이익을 보는 풋옵션 상품에 투자한 덕분에 448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CB로 무자본 M&A ‘폭탄 돌리기’

라임 이후에도 쌍방울·KH ‘기업 사냥’

2010년대 후반~2020년대는 무자본 M&A가 다시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과거 무자본 M&A는 단순했다.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으로 코스닥 기업 경영권을 인수한 뒤 회삿돈을 횡령한다. 이후 주가를 끌어올려 시세 차익을 내면 됐다.

2010년 후반부터 등장한 무자본 M&A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사채 대신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마구 찍어 실탄으로 쓴다. 시장 기대가 높은 테마 산업군을 M&A해 기업 덩치를 키우고, 주가가 급등하면 빠져나가는 식이다. 기업 경영보다는 ‘머니 게임’에 관심을 둔다는 게 핵심이다.

라임·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가 대표적이었다. 옵티머스는 애당초 펀드 구조가 사기 행각이었다. 라임 사태는 2019년 7월 당시 국내 헤지펀드 1위 규모였던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한계기업 CB 등을 쓸어 담으며 수익률을 돌려막다 펀드 내 주식 가격이 하락하며 펀드런 사태에 몰리자 환매 중단을 선언한 사건이다.

금융감독원은 라임 사태를 계기로 2019년 말 무자본 M&A 추정 기업 67곳 가운데 24곳의 위법 행위(공시위반, 회계분식, 불공정거래 등)를 적발했는데 당시 이들이 발행한 CB 금액이 1조원을 넘었다. 라임 펀드 관련 종목도 다수 있었다.

라임 사태 이후에도 CB를 활용한 무자본 M&A는 오히려 활발해졌다. 일례로 KH그룹은 쌍방울그룹과 함께 CB를 찍어 서로 인수해 마련한 자금으로 다른 회사를 ‘사냥’했다. 계열사 간 서로의 CB를 사고팔아 차익 실현도 했다. KH그룹 관계자들은 이렇게 인수한 알펜시아리조트의 입찰 비리 의혹과 함께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해외 도피 중인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지난 5월 2일 키움증권과 그룹사 오너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의 배후로 자신들을 지목한 H투자 자문 업체 라덕연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연합뉴스)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나

3년간 꾸준히 우상향…감시망 피했다

최근 불거진 SG증권발 폭락 사태는 감독당국의 감시망도 모두 피해 갔다는 점에서 한층 더 교묘해졌다. 전형적인 통정거래 수법이지만 3년에 걸친 장기간 시세 조종과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하는 등 고도화된 형태로 진화해 감시망을 뚫었다는 분석이다. 진화하는 수법에 따라 감독당국도 재발 방지를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관련 시스템을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태는 ‘통정거래’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가 조작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보이기도 한다. 주가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일당은 투자자들로부터 휴대전화와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통정거래를 통해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남부지검·금융위원회 합동수사팀은 라 씨 사무실에서 압수한 휴대전화 200여대를 경찰로부터 전달받아 통정거래에 동원된 것으로 의심되는 전화번호 50여개, 이와 관련된 증권 계좌를 특정하고 거래소에 분석을 요청했다. 이후 거래소는 증권 계좌 250여개와 인터넷 주소(IP) 등을 분석해 의심 계좌를 추려 다시 검찰에 넘겼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통정거래를 장기간, 꾸준히 유지하면서 시세를 조종했다는 점이다. 작전을 3년 이상 끌고 가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과거 주가 조작 사건의 시세 조종 기간은 길어야 1년을 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전 세력 중 한 명이라도 배신하고 주식을 먼저 팔아버리면 의도치 않은 시기에 주가가 폭락하기 때문에 남은 세력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배신자가 나오지 않고 시세 조종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라 씨를 향한 내부 신뢰가 두터웠을 것으로 분석한다. 신뢰가 없었다면 3년간 그에게 계좌를 맡기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에서 투자자로 알려진 연예인 임창정 씨는 지난해 12월 라 씨가 주최한 투자자 모임에서 “내가 번 모든 돈은 쟤(라 씨)한테 다 준다”며 “종교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배신자가 나오지 않도록 투자자를 철저히 관리하고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장기간 조금씩 주가를 올린 점에서 라덕연 일당의 치밀함을 알 수 있다”며 “만약 이번에 배신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주가 조작은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오랜 기간 조금씩 주가를 올린 덕분에 작전 대상 종목의 주가 그래프 역시 과거와 비교해 다른 형태를 나타낸다. 일반적인 주가 조작 사례에서는 해당 종목 주가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해 ‘산봉우리’ 모양을 만든다. 하지만 최근 주가가 폭락한 종목 8개 그래프는 대체로 완만한 우상향곡선을 보였다. 이처럼 3년간 주가를 조금씩 올린 덕분에 당국 의심을 피했다.

리딩방으로 불특정 다수 동원

CFD 계좌로 외부 노출 막아

과거에는 일부 소규모 세력이 자금을 모아 작전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주식 리딩방과 투자자 소개를 활용한 다단계 방식을 동원해 규모를 대폭 키웠다. 이번 주가 조작 세력은 텔레그램이나 오픈채팅방,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불법 광고 메시지를 발송해 투자자를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만약 일반 투자자들이 리딩방에 엮이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주가 조작 행위의 공범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2019년 지인들과 투자 업체를 차린 라 씨는 이런 방식으로 3년 만에 1000명 이상 투자자로부터 1조원 이상 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이번 사건에는 연예인, 의사, 중견기업 회장, 정치인 등이 관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대다수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돌입한 상황이다.

대주주가 작전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도 기존의 주가 조작 사례와 차이점이다. 과거에는 주가 조작 세력이 대주주와 결탁해 시세를 조종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대 최악의 주가 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루보 사태’에서도 수많은 투자자가 손실을 봤지만, 대주주와 경영진은 지분 매각으로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라 대표와 일부 대주주가 오히려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라 대표는 이번 사건의 배후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전 회장을 지목한다. 김 전 회장은 이번 주가 조작 대상 종목인 다우데이터의 2대 주주인 동시에 특수관계인이었다. 김 전 회장이 배후로 지목된 배경은 주가 폭락 직전 고점에서 보유 주식을 매도했다는 점에서 주가 조작 세력과 연계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주식 매도는 적법하게 진행됐고 관련 공시도 모두 이행했다”며 “주가 조작 세력과 연계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과거 ELS 등 파생상품이 주가 조작에 활용된 사례는 있지만, CFD 계좌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도 진화된 수법 중 하나로 꼽힌다. CFD는 투자자가 실제 기초자산인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채 기초자산의 진입 가격과 청산 가격의 차액을 정산받는 장외파생상품이다. 즉, 투자자가 실제로 주식을 사서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의 가격 변동에 따른 차액만 결제하는 방식이다. 계좌 개설 조건도 까다롭다. 금융 투자 상품 잔고 5000만원 이상, 직전연도 소득액 1억원, 순자산 5억원 이상인 전문 직종 종사자나 금융 관련 전문 자격증 소지자 중 해당 분야에서 1년 이상 종사한 사람만 가능하다.

현재 CFD는 투자자가 국내 증권사에 주문하면 국내 증권사는 다시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주문을 실행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된다. 외국계 증권사가 창구라면 거래 주체가 외국인 투자로 집계되기 때문에 당국의 모니터링으로 주가 조작을 잡아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CFD는 실제 투자 주체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가 조작에 활용되기 적절한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식 리딩방 감시와 CFD 계좌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리딩방에 대한 일제점검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 역시 불공정거래 혐의를 포착하기 위해 최근 10년간 거래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거래소는 CFD 계좌 이용자에 대한 정보를 거래소에서 직접 감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CFD 계좌 전부를 제공받아 매매 패턴을 분석하고 감시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이런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0호 (2023.05.24~2023.05.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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