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권력을 비인간 동물과 나눌 수 있습니까
[박지은 기자]
개의 이름은 앙팡. 편의점을 좋아하지 않아서 산책하다가 발걸음이 편의점 쪽으로 향하면 네 발을 땅에 딱 붙이고 온 힘으로 버틴다. 산책하러 나가는 김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말은 앙팡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가고 싶은 길로만 가고, 원하는 장소에서만 배변했다.
SNS에서 본 실험을 앙팡에게 해 본 적이 있다. 개 운동장에서 앙팡을 가운데 두고 나와 다른 보호자가 서로 반대로 뛰었다. 앙팡은 누구에게 갔을까? 누구에게도 가지 않았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날아가듯 달려갔다. 귀는 펄럭이고 꼬리는 흔들며, 불러도, 불러도 들리지 않는 듯 그 끝에 다다를 것처럼.
동물 향한 편견과 선입견에 금이 가게 만든 책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직접 본 동물은 새와 곤충 종류를 제외하고 마당에 묶여 있는 개, 동물원 속 야생동물, 체험을 위한 가축 동물 염소와 돼지, 성인이 되어 집에 들인 반려동물 개, 고양이 정도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인간이 그은 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역사 속에는 자유를 향해 위험을 무릅쓴 동물이 많았다. 이렇게 말하면 자유, 해방 같은 언어가 어떻게 동물에게 어울리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동물도 자유와 해방의 감각을 느낀다. 다만 철학자의 복잡한 사상이 없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인간은 항상 심오한 척학으로 움직여 행동하는가? 그저 속박의 삶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해서, 불평등에 분노해서 행동할 뿐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자기 삶에서 주체가 되기 위해 울타리를 넘는다." - 남종영의<동물권력>의 일부
<동물권력>은 동물들의 탈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주도 성산항 가두리에서 탈출한 삼팔이와 피츠버그 동물원에서 탈출한 엘피. 삼팔이는 바다로 돌아가고 엘피는 쇠창살 안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만든 쇠창살과 유리 벽 안에서 밖을 욕망하여 탈출한 두 비인간동물은 결국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지만 둘의 처지는 사뭇 달라 보인다.
▲ <동물권력> 남종영 지음 북트리거 출판 |
ⓒ 박지은 |
이제까지 나는 동물을 존재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상대화하여 동정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구나! 내 눈에 '동물은 인간에게 당하는, 수동적 존재'라는 렌즈를 끼고 있었으니, 무조건 동물이 불쌍하기만 하고, 인간은 악당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나와 다른 존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였다. 책의 서문에서 이런 마음과 생각을 재정비하고 읽기 시작하자 책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능동적인 존재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비인간동물과 인간이 함께한 역사는 수렵채집 시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착취와 학대의 역사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식민지 역사 속에 약탈과 치욕의 경험보다 제국주의 일본에 맞선 독립투사의 저항과 투쟁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듯, 저자는 비인간동물의 저항과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다시 씀으로 이 세계에서 자원과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동물의 원래 자리를 찾아주려 노력했다.
개의 세계로 한발짝 들어가기
"카터와 루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역사 속의 행위자였다. 루시는 인간 문화에 '입양된 자'의 삶에서 '주인 된 자'의 삶으로 변화해 갔다. 카터는 반대였다. 인간문화에서 '주인 된 자'였던 그는 섬에서 침팬지에 둘러싸여 살며 침팬지들에게 '입양된 자'가 되어 갔다." - 남종영, <동물권력> 366쪽
침팬지 루시와 인간 카터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인데 미래 어딘가 인간과 동물이 평등한 세상을 얼핏 본 것만 같았다. 비인간동물과 인간이 평등해지는 것. 역사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앙팡의 몸짓을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보는 것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개의 세계로 한 발짝 들어가 길을 다시 보면 흙과 수풀이 많은 쪽으로 걷고 싶다, 젖은 풀의 냄새를 맡고 싶다. 내 안에 힘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드넓은 세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싶다.
'누군가의 권리를 지지한다는 것은 나의 자유를 나누는 것이다.' 한 동물권 활동가가 강연 중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책을 보며 현실 속 동물의 상황에 가슴이 아프고 분노했다면,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 아마도 인간이 아닌 동물의 것까지 다 차지했었을 나의 자유를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내 눈의 렌즈를 빼어 버리고 동물을 동물의 세계로 한 발짝씩 들어가는 움직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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