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춘향 가고 새 춘향 온다? 춘향 영정 수난사
[이완우 기자]
21일 전북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광한루 정원의 아침은 왕버들 나무의 푸른 생기로 가득하다. 오작교 부근의 연못에는 잉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조선시대 남원부 관아의 누각이었던 광한루는 판소리 춘향가나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널리 알려졌다.
▲ 광한루 누각 |
ⓒ 이완우 |
조선시대 후기 신분제 사회가 동요하고 평민들의 경제력 향상으로 평민 의식이 성장하면서 평민 문학 요소가 강한 판소리 춘향가가 광한루와 오작교를 배경으로 형성되었다. 판소리 춘향가는 춘향의 이 도령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탐관오리인 변 학도의 불의에 대한 춘향의 저항, 암행어사가 된 이 도령의 금의환향과 춘향의 행복한 결말로 흥미롭고 가치 있는 내용이 풍부하다.
▲ 광한루 오작교 자라석 방장정 |
ⓒ 이완우 |
1928년 광한루 재판소가 법원 건물 신축으로 이전하자 남원 권번(일제강점기에 기생들이 기적을 두었던 조합)이 중심 역할을 하여 1929년에 춘향사당 건립운동을 시작하였고 1931년에는 춘향사당까지 건립하고 제1회 춘향제를 개최하였다. 1931년은 전주와 남원 간에 철도가 준공되어 증기기관차가 달리기 시작한 해다. 이때 일제는 만주사변 전쟁을 도발하고 조선총독부는 신사참배를 강화하는 격동의 시대였다.
▲ 광한루 정원 |
ⓒ 이완우 |
1919년 독립 만세 운동에 전국의 여러 권번에서 많은 기생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남원 권번은 일본 헌병이 불러도 응대하지 않았다고 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통로를 열었다. 남원 권번은 일본어 교습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경우로서 철저한 항일의식을 엿볼 수 있다.
춘향사당을 건립할 때 남원 권번을 중심으로 평양, 한성, 진주, 부산 등 전국의 권번에서 성금을 내었고, 1931년에 1회 춘향제는 전국에서 100여 명의 기생들이 모여서 춘향제 제사를 지내고 판소리 경연대회를 열었다. 춘향제는 사실상 독립운동이었으며 항일 의지를 발현한 제향 중심의 축제였다.
▲ 최초 춘향영정, 30대 중반의 어사 부인 모습 |
ⓒ 남원역사연구회 21.12.15 발표 자료 |
1930년대 일제는 우리나라의 얼과 문화의 결정인 춘향전을 하루카로 일본화하여 식민지 문학을 만들었다. 1931년 제1회 춘향제의 춘향영정은 태극 문양으로 옷의 색깔을 입혀 민족의 혼과 얼을 살렸다. 그러나 1939년 제9회 춘향제는 일제의 사주를 받은 친일 화가 김은호의 춘향 그림을 들여와 일제의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을 시도한다.
이렇게 그려진 가부키 춘향 그림은 1939년 제9회 춘향제에 일본 신사 의식인 입혼식을 거행하며 춘향사당을 차지한다. 일제는 춘향사당과 최초 춘향영정의 민족혼을 짓밟고 가부키 춘향 그림을 봉안하여 조선 민족혼을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 친일 춘향 그림, 16세 일본 하루카 미인도 모습 |
ⓒ 남원역사연구회 21.12.15 발표 자료 |
한국전쟁 이후 기생 최봉선은 최초 춘향영정을 춘향사당에 다시 봉안하고 춘향제를 올렸다. 이때부터 1961년 제31회 춘향제까지는 최초 춘향영정의 평화로운 시대였다. 1960년에 친일 화가 김은호는 없어진 춘향 그림을 예전과 같이 친일 색채로 똑같이 다시 그렸다.
이 친일 화가의 춘향그림은 1961년 5·16 군사 쿠테타 이후 내각에 의해 춘향사당에 다시 놓이게 되고 외국 관광객에게 춘향을 예쁜 것으로 보여야 한다며 최초 춘향영정을 치우라고 하였다. 최초 춘향영정은 1962년에 밀려나게 되어 뒷방에 보관되며 세상의 기억에서 잊혔다.
▲ 춘향사당 팔작지붕 |
ⓒ 이완우 |
시민단체에서는 이 최초 춘향영정을 다시 봉안하자고 제안하였으며 남원시도 그렇게 하겠다며 추진했었다. 그간 최초 춘향영정의 작가는 진주 출신의 강주수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강주수는 춘향영정을 그린 화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이때문에 작가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최초 춘향영정을 봉안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작가가 검증된 새 작품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따라 남원시와 남원문화원은 올해 춘향제 전까지 새로 그린 16세 춘향 초상화로 춘향영정을 세우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작가를 선정, 새로운 춘향영정 제작을 진행해 왔다. 남원시와 남원문화원은 제93회 춘향제가 개막되는 오는 25일 이전에 새로운 춘향영정을 봉안할 계획이다.
▲ 춘향사당 |
ⓒ 이완우 |
"예쁜 춘향만 고집하는 것은 남성 중심의 사고이며 꽃 노리개 춘향, 억지 춘향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최초의 춘향 영정에는 남정네들의 꽃 노리개였던 천민인 기녀들이 반상의 차별, 남녀의 차별, 권력에서의 차별을 극복해 낸 춘향의 정신과 항일 독립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나이나 미모가 문제가 아니라 정승 부인도 여염집 아낙과 같다는 정신까지 담겨 있는 것이 최초의 춘향 영정이에요. 미성년자인 16세 춘향 초상화를 춘향사당에 모시고 제93회 춘향제 제향을 지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 춘향사당 입구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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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 강경식, 대한민국 최초의 근현대 지역 축제 춘향제 연구, 남원역사연구회,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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